2025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17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질기게 산 생명 건강하게 살아야
한국전쟁이 발발할 당시 지금도 기억에 무섭게 남아 있는 것은 비행기가 낮게 떠서 공습하는 귓가에 쟁쟁한 총소리와 사람들이 죽었다고 슬피 우는 소리,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누렇게 뜬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의욕이나 핏기 없는 얼굴에 웃음기조차 없이 바쁘게 바구니를 들고 독사 풀씨를 받고 자운영 뜯으러 논으로 급히 나가던 어린 시절에는 하얀 쌀밥을 원 없이 먹어보고, 고기 국을 실컷 먹어 보았으면 하는 지독한 가난입니다.
내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었는데 친구를 땅에 묻던 날, 어른들이 극구 말리는 데도 산 밑까지 아이들이 따라갔습니다. 그 당시 기생충 약을 먹었는데 그 친구는 회충을 100여 마리나 쏟았고 얼굴빛이 늘 노랬는데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데 왜 기생충이 그리도 덤벼들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 때는 회충을 쏟아보지 않은 아이가 없고, 머리에 생기는 피부병(그 당시는 기계충이라고 했답니다.)으로 고생하지 않은 아이가 없고, 천연두로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장티브스와 디프테리아, 파상풍, 콜레라, 뇌염 등으로 많이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연탄을 때면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연탄가스로 많은 친구들이 유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나도 심장병, 결핵, 황달과 간염, 영양실조, 고혈압, 심근경색, 늑막염 등 안 걸려 본 병이 없는 사람처럼 많이도 앓아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속을 정말 많이도 태웠습니다. 그리고 암으로 11년이나 투병을 하였고 4년 전에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여러 번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나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릴 뿐이랍니다.
지금도 불치의 병으로 많은 분들이 주님의 곁으로 가고 있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암으로 투병하다가 지칠 대로 지쳐 환자나 가족 모두 맥이 빠져서 마지막 삶을 정리하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 그의 차례가 곧 나의 차례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실의에 빠진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들의 치료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서로 찾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자주 가는 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과 성모병원 케어 센터(Care center)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전문적으로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들과 봉사자들이 잘 준비시켜 주고 있습니다. 소중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생명을 소중히 할 수 있도록 정말 적은 비용으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더 많은 지원과 시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지쳐서 쓰러져 숨진 의료진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한답니다.
다시 돌아보건 데 정말 지긋 지긋한 가난과 모진 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산위를 고요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심호흡하는 자신에게 오늘 복음 말씀이 더욱 가슴깊이 파고듭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말하면 나는 불행하고, 하늘나라는 구경도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조금은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이 사실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대충 생각해 보아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사람들이 나를 좋게만 말한다면 나는 언제나 그 사람들을 의식해서 그렇게 우쭐대며 살 것이지만 그것이 곧 악마의 함정일 것이며 악마의 간교한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그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온 심혈을 다 기울여 아무도 모르게 착한 일을 한다고 하면 정말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언제나 자랑하면서 산다면 아무런 공적도 없는 빈껍데기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한 말은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옳은 사람은 짧게 살아도 하느님의 품에서 오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래 살기 위해서는 이름도 천박하게 짓고, 대접도 아주 모질게 대접해야 한다고 한 것은 저승사자를 속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가난에 몸서리치고 찌들었던 어른들과 친구들의 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래도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서 그런 모든 병을 기적처럼 이겨나갈 수 있었고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고, 치료를 잘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월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고,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의해서 약을 조석으로 많이 복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침, 저녁, 취침 전에 복용하는 약을 모두 손바닥에 쏟아서 놓고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렇게 많은 약을 먹으면서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질기게 산 생명 잘 지키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내 건강을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0여 년 전 루르드에 성지 순례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기적 수’라고 플라스틱 작은 병에 물을 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책상 귀퉁이에 그 물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아들인 내가 위급할 때 마시게 하려고 내 놓으신 물병입니다. 어머니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제 내가 언제 눈을 감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매일 느끼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