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비골의 두견이 소리
김 선 구
삼인삼색(三人三色)이란 말이 있다. 일본에서 무인들이 천하쟁패를 가름하던 시대에 두각을 나타냈던 영웅 세 사람의 처세를 말한다.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오다 노부나가가 먼저 대답했다. “당장 목을 치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도록 만들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성정이 급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통일을 목전에 두고 부하의 배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야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하고도 더 큰 야욕을 부려 임진왜란까지 일으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일처리에 주도면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란을 평정하고 에도막부시대를 열었다. 그 결과 27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두견새가 울음소리를 되찾아 노래한 셈이었다. 최후의 승리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비유로 보인다.
오늘 달구벌수필문학회에서 야외수업에 나섰다. 목적지는 대구 달서구 도원동 달비골이었다. 대구에 있는 앞산과 청룡산 두 산줄기가 만들어 낸 계곡이다. 골이 깊어서 달이 높이 떠서야 그 빛이 계곡을 비친다하여 불리어진 이름이었다. 지역 명 월배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하니 지하철 1호선 월배 역이 지닌 의미를 새삼 돼 새겨 보는 기회였다.
집행부의 안내 데로 월배 전역인 상인 역에서 버스를 타고 달서구 청소년 수령관 앞에서 하차하니 300m 앞에 달비골 입구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판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 곳 지리에 정통한 이○○ 님의 설명과 안내로 산행을 시작했다.
먼저 임휴사라는 절에 들렸다. 앞산을 등지고 청룡산을 향하여 서 있는 임휴사는 고려 왕건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다. 팔공산 동수전투에서 견훤 군에게 패한 후 우여곡절 끝에 몸을 피하여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왕건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절치부심,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고, 암담한 장래를 염려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두견새가 울 날을 고대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왕건의 발자취는 대구 곳곳에 남겨져 있다. 그 중에서도 앞산에 있는 네 개의 절과 더 인연이 깊었다고 전한다. 적군에 포위되어 퇴로가 막힌 가운데 신숭겸의 기지와 김락 장군의 도움으로 왕건은 간신히 적진을 탈출한다. 그렇지만 헐헐 단신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보니 뚜렸한 목적지도 방향감각도 없이 적의 경계를 피하여 헤매었다. 반야월을 거쳐 안심에까지 이르러서야 방향을 돌려 수성구 고모동을 지나 앞산 북쪽 산 기슭로 잠적한다. 그리고는 앞산 은적사 동굴에 숨어서 추적군을 따돌린 다음 이웃 안일사에서 잠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다음 방향을 서쪽으로 잡아 안지랑골을 거쳐 임휴사에 도착한다. 일설에는 앞산 남쪽 산기슭 원기사에 이르러 기력을 회복한 후 임휴사로 거쳐를 옮겼다고도 한다.
달비골은 깊은 산골짜기였지만 길이 평탄 하여 걷기에 편했다. 오월의 청명한 날씨가 하늘을 더 푸르게 했고, 연초록 잎 새들의 하늘거림이 설익은 어린이들의 재롱처럼 보였다. 오월은 축복받은 계절이다.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도 상쾌했다. 얼마 가지 않아 조그만 못이 나타났다. 월곡지라 했다. 6.25때 미국이 보내준 밀가루를 품삯으로 받으며 주민들이 만들어낸 못으로 일명 밀가루 못이라고도 불리었다. 지금은 개구리, 도룡뇽 등 양서류 생태 학습장으로 활용된단다.
좀 더 들어가니 석정(石井)이라는 샘으로 가는 안내표시를 맞이했다. 커다란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모여 동굴 속에 샘을 만들었다. 돌샘이라고도 부르며, 등산객들에게 감로수가 되어준다고 한다. 왕건도 이 물을 마시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임휴사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는 동안 그도 이 달비골 길을 걸었을 것이다. 패전의 쓰라림을 안고 걷는 그의 발길은 무겁기만 했고, 그의 심중을 헤아린 달빛만이 그의 등을 비쳤으니 얼마나 처량한 신세였을까! 이 때의 정황을 고려하여 마을 이름이 월배(月背)로 바뀐 것은 아니었을까.
임휴사에서 휴식을 마친 왕건은 군사들을 재정비하여 개성으로 퇴각 한다. 북상 하던 날 주변을 둘러보니 그래도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어, 패전의 쓰라림은 안고 떠나는 병사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도원(桃園)동이란 또 하나의 지역 명 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한다. 이때 왕 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후일을 다짐하는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훗날 고창전투에서 승리를 계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로써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선보이게 하는 토대를 이룬 셈이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기분은 복잡하고 다난하다. 지난날의 여러 정황들을 되새기며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재해석 해보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패전의 쓰라림을 딛고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발걸음을 옮겨 한참 더 들어가니 “평안동산”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평안도민들 친목단체인 평안도민회의 사유지지라고 했다. 6.25때 자유를 찾아 월남한 평안도 실향민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환경이 잘 정비되었고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곳 휴식공간에 둘러 앉아 노래 한마당을 펼쳤다. 소리꾼 김○○와 가수 김○○가 출연하여 음 율을 펼치니 두견새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탐방객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분위기에 합류했다. 국악한마당은 왕 건이 이룬 왕업을 축하는 메시지였고, 가요의 은은한 멜로디는 실향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아리아였다. 왕건이 기다렸던 두견이 울음소리가 천년이 지난 오늘에야 되살아 난 듯 굵직한 리듬을 토해냈다. 두 마리의 두견이가 펼치는 곡조와 그 장단에 맞추어 손뼉을 치는 소리가 어울려 달비골 골짜기를 누비었다. 왕건의 혼백이 놀래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2023. 05. 15.)
첫댓글 달비골의 옛날과 오늘날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그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모여 역사가 되고
후세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달비골의 모습이 다시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