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1-12
한 차례 운집한 군웅들을 둘러본 옥필생이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문주를 옹립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치지 못했다는 것이었소.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인가, 얼마 전 본인은 흑룡보의 눈을 피해 강호를
유랑하고 있던 소문주를 모실 수 있게 되었소이다.』
군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사의에 오연히 앉아 있는 옥풍규에게 향했
다. 그들 속에는 과거 신검문의 문도였던 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던 소문주가 오늘 저렇게 늠
름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는 것에 대한 벅찬 기쁨 때문이었다.
옥필생의 얼굴에도 감격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가 손을 들어 군웅
들의 술렁임을 가라앉히고 다시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소문주께서 강호를 유랑하면서도 의기(義氣)와 생명을 지킬 수 있었
던 것은 여기 계신 철협 강사옥, 강 대협의 전적인 공이라 아니할 수 없
소. 그는 비록 신검문에 몸을 담고 있던 협사는 아니었지만 실로 그 공
이 크고 중하오.』
무리들 중에는 철협 강사옥이 옥풍규의 외숙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
이 많았다. 그것은 평소에 강사옥이 어떤 문파, 어떤 방회와도 어울리지
않고 홀로 독보강호(獨步江湖)하던 호한(好漢)이기 때문이었다. 그 강사
옥이 신검문을 도왔다는 것은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이었다. 군웅들의 사
기가 한 순간에 치솟아 올랐다.
다시 한 번 손을 번쩍 들어 군웅들의 소란을 가라앉힌 옥필생이 정색
을 했다.
『해서, 본인은 오늘 그동안 유지해 왔던 백도 연합을 해체하고, 소문
주를 중심으로 신검문을 다시 일으켜 과거의 강북 무림맹을 부활시키려
하오. 그 동안 강북 무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온 여러 형제들께서
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기꺼이 동참해 주시리라고 믿소이다.』
신검문이 해체된 후 강북의 무림에는 구심점이 없었다. 문파와 방회,
각처의 고수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좇아 많은 수가 흑룡보의 세력 속에
편입해 들어갔다. 하지만 정통을 주장하는 자들은 끝까지 흑룡보에 저항
하며 과거 신검문의 시대를 그리워했다. 그런 자들이 모여 백도 연합을
결성하고 힘을 합하게 된 것은 그 동안 옥필생이 동분서주한 공이 컸다.
지금까지 그들을 이끌어 온 것은 옥필생이었다. 이제 그가 새로운 무
림맹의 탄생을 선언하자 모두의 얼굴에 감격과 굳은 의지가 가득 떠올랐
다. 패도를 지양하는 흑룡보의 그늘에 가려져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그
들이었다. 과거 무림연합의 일원으로 강북 무림을 활보하며 위세를 떨치
던 영화로운 시대가 다시 돌아온 듯 했다.
옥필생은 옥풍규를 신검문주이자 강북 무림맹의 태상(太上)으로 받들
고, 맹주의 직은 철협 강사옥에게 위임하려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군웅들 사이에 작은 소요가 일었다. 옥풍규를 태상으로 모신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으나, 맹주의 위(位)를 놓고는 의견이 둘로 갈라졌던 것이다.
강사옥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고수이고, 그의 협의지심과 공로는 충분히
맹주로 추대될만하다는 쪽과, 신기수사 옥필생이 그동안 백도 연합을 이
끌어 온 이래 그의 뛰어난 지모와 통솔력이 더욱 빛을 발해 오늘날에 이
르렀는데 굳이 맹주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의 쪽이었다.
군웅들이 분분히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느라고 장내는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그것을 보던 강사옥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딱-!
그의 진력이 실린 손뼉 소리가 은은한 뇌성처럼 군웅들의 머리 위에
맴돌며 순식간에 잡다한 소음들을 눌러 버렸다. 이 가벼운 행동 속에서
그의 심오한 내력을 충분히 느낀 군웅들은 저마다 은근한 경외지색을 띄
고 강사옥을 주시했다.
『나는 일개 졸렬한 무부(武夫)에 지나지 않소이다.』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중인들을 다시 한 번 압도했다.
『강호의 외로운 떠돌이였다가 백도 연합에 입적(入籍)한 지 이제 겨
우 몇 달. 내게는 그 동안 아무 공도 없었소. 그런 나에게 맹주의 중임
을 맡으라는 것은 마치 객더러 주인을 쫓고 안방을 차지하라는 것처럼
부당하기 짝이 없소이다.』
신기수사 옥필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그
것을 눈여겨본 사람은 없었다.
『본인은 무림맹의 일개 무사로 만족하오.』
강사옥이 강경하게 사의를 밝히자 양분되었던 군웅들의 웅성거림이 곧
멎었다. 강사옥은 자신의 등장으로 인하여 이제 막 출범한 무림맹이 분
열될 조짐을 보이자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재빨리 그 싹을 제거한 것이다.
군웅들은 다시 옥필생이 맹주의 위에 오르기를 청하였다. 마지못한 듯
옥필생이 나섰다.
『강대협의 대의가 그러하고, 여러 형제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부족하
나마 소생이 당분간 중임을 감당하겠소이다. 그러나 강대협이야말로 누
구나 흠모해 마지않는 의협이시며 천하제일의 고수. 그에 마땅한 예우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외다.』
그는 의미 있는 눈으로 강사옥과 군웅들을 한 차례 돌아보았다.
『해서 본인은 강대협을 본 맹을 통솔하여 군령을 세우고 감독, 집행
하는 통령에 추대하는 바올시다. 여러 형제들의 뜻은 어떠신지?』
옥필생의 말에 모두는 환성으로써 환영의 뜻을 밝혔다.
무당의 청송자가 새로이 무당을 대표하여 가입함으로써 청성과 공동,
개방, 아미의 존장들이 맡았던 사대호법은 한 자리를 더 늘려 오대호법
으로 재편되었다. 그들이 새로 가입한 자들에게 알맞은 직위를 베풀고,
공석인 향주의 자리에 적당한 인물을 임명하는 등, 한동안 부산한 의식
절차를 끝냈을 때는 멀리서부터 새벽 여명이 은은히 밝아오고 있었다.
새롭게 결성된 무림맹의 군웅들은 각자 준비해 온 건량과 술등을 꺼내
어 서로 먹고 마시며 즐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우유빛 새벽 안개에 잠겨 있는 숲 속에서 작은 소요가 일었다. 그러나
한창 흥이 오른 군웅들은 누구도 그 일에 신경을 기울이는 자가 없었다.
숲 속에는 경비를 맡은 산서분타 소속 오십 여 명의 고수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펴고 있는 터였다. 여간한 담력을 지닌 자가 아니고는 감히 무림
맹의 총회 장소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울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숲 속의 소란은 점점 번져갔다. 드디어
흉포한 고함 소리와 함께 병장기 부딪는 날카로운 소음까지 들려오기 시
작했다.
옥필생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감히 겁도 없이 무림맹 총회
의 모임을 넘본단 말인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숲속에서 한
인물이 재빠르게 신형을 날려 왔다. 개방의 걸인이었다. 허리띠에 다섯
개의 매듭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방 내에서도 꽤 배분이 높은 자임
이 분명했다.
『맹주!』
그가 옥필생 앞에 궁신했다.
『분향주, 무슨 일이요?』
『일단의 흑룡보 무사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본 맹의 모임
에 참관인 자격으로 입회하게 해줄 것을 요구하며 소란을 부리고 있습니
다.』
『무엇이? 흑룡보의 무사?』
옥필생과 군웅들이 깜짝 놀라 분분히 일어섰다.
지극히 은밀하게 계획된 그들의 모임이었다. 한데 흑룡보의 무사들이
어떻게 알고 몰려왔단 말인가? 옥필생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맹주!』
강사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 자들이 찾아와 참관을 원한다면 그것은 큰 적의를 가지고 온 것
은 아닐 터. 차라리 불러들여 본 맹의 위용을 과시하고 그들에게 뜨거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본 맹이 도적의 집단이 아닌데 무
엇이 두려워 숨겠소? 떳떳하게 대응합시다.』
그의 사나이다운 호방한 기상에 군웅들이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옥
필생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명을 내렸다.
『분향주, 가서 타주에게 그들을 들여보내라고 전하시오.』
군웅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숲 속을 지켜보았다.
『하하하..... 진작에 이와 같았더라면 서로간에 낯을 붉히는 일은 없
어도 되었을 것이 아니오이까.』
걸걸한 웃음소리와 함께 숲 속에서 십여 명의 인물들이 걸어 나왔다.
흑룡보의 무사 복장을 한 인물 여섯과, 괴화상 삼인, 그리고 홍의가사를
걸치고 묵빛 염주를 늘어뜨렸으며, 검은 피부에 깡마른 노화상이 한 명
이었다. 그 곁에서 조용히 웃으며 옥빛 섭선을 가볍게 부치고 있는 미서
생이 돋보였다.
도합 십 일인의 불청객들이었다. 그들을 가운데 두고 둘러싼 군웅들의
시선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화상이 합장을 하
며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소승은 흑룡보주의 청에 따라 멀리 천산(天山)을 넘어 처음 중원에
발을 디딘 미가불(彌加佛)이라 하오. 오늘 우연히 항산의 절경을 구경하
러 왔다가 귀 맹의 모임을 보게된 바, 이러한 기회도 드물 터인지라 서
로 인사나 나누자는 생각에 찾아왔소이다. 무림맹의 여러 영웅들을 대면
하니 감회가 새롭소이다.』
말을 멈춘 노승이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사당 앞에 늘어선 강사옥 일
행을 하나 하나 살폈다. 그의 눈길이 태사의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옥
풍규에게 한동안 머물렀다가 강사옥과 옥필생을 차례로 살폈다.
『어느 분이 맹주이신지? 소승의 안목을 높여 주시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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