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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반도체 산단에 2500개社 입주, 年매출 23조원
[첨단 산단이 산업지도 바꾼다] 〈1〉 獨 반도체 심장 ‘실리콘 작소니’
글로벌 경쟁 기업들 대규모 투자
첨단산단, 기술 전쟁의 전진기지로
로봇이 반도체 생산공정 관리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반도체 생산공장에 배치된 로봇. 첨단산업단지 공장 곳곳에 자리 잡은 로봇은 자동화 수준을 높여 생산 속도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제공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의 반도체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 외곽.
독일 최대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의 반도체 생산시설 앞 공터는 흙을 파내고 싣는 굴착기와 트럭 등 중장비들의 굉음으로 가득했다. 이 회사의 디아나 카세러 홍보 매니저는 “300mm 웨이퍼(반도체 기판) 클린룸이 2026년 가을부터 가동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 핵심산업인 전기차용 반도체 생산기지여선지 공터를 철조망이 둘러싸고 곳곳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등 삼엄한 경계 장면도 눈에 들어왔다.
글로벌 첨단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놓고 미국 한국 대만 일본 중국의 각축전이 치열한 가운데 유럽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3개 중 1개를 생산하는 실리콘 작소니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 2500여 곳은 시너지를 통해 연매출 약 23조 원을 올린다.
공사 현장에는 3년 뒤 축구장 3개 넓이(2만 ㎡) 규모의 클린룸이 추가로 들어선다. 기존 생산시설(약 4만 ㎡)이 1.5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글로벌 1위인 인피니언은 클린룸 증설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50억 유로(약 7조 원)를 투입하고 있다. 보쉬도 올해 생산시설 증설에 1억 유로(약 14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아르민 레이스 작센경제개발공사 정보통신기술(ICT) 책임자는 “유럽연합(EU)이 회원국 투자 기업에 대규모 지원금을 주는 ‘유럽반도체법’ 시행 방침을 밝힌 후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늘었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공대(MIT) 옆 켄들스퀘어의 바이오텍 클러스터에는 최근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10대 바이오 제약사 중 9곳이 이곳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다. 한미약품, LG화학 등 국내 기업들도 보스턴에 거점을 마련하는 추세다.
이처럼 기술 선진국들은 매년 수십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단지가 글로벌 기술 전쟁의 전진 기지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저마다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글로벌 반도체 4社, ‘실리콘 작소니’ 모여 정보 공유…‘적과의 동침’
로봇 수십대, 웨이퍼 싣고 날라… 클린룸엔 관리직원 2, 3명뿐
정부지원 업고 공정 100% 자동화, 신생 스타트업엔 ‘3중 지원금’
입주 2500곳 연매출 23조원
《최근 전 세계 기술 선진국 사이에선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 역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 15곳을 선정한 데 이어 상반기(1∼6월) 중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할 계획이다. 글로벌 기술 전쟁의 전진 기지인 첨단산단을 둘러싼 국내외의 치열한 각축전 현장을 돌아봤다.》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의 반도체 첨단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에 있는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의 클린룸. 인피니언은 약 7조 원을 투자해 2026년 300mm 웨이퍼 생산을 위한 클린룸 2만 ㎡를 추가 가동할 방침이다. 신규 클린룸이 완공되면 기존 생산시설이 1.5배로 늘어난다.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제공
‘위이이잉∼.’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반도체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공장 클린룸에선 지하철이 출발할 때 나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유아용 전동차 크기 로봇 수십 대가 총연장 약 13km인 천장 레일에 매달려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각 로봇은 300mm 웨이퍼(반도체 기판) 25장씩을 넣은 플라스틱 용기들을 싣고 달리다가 예정된 구간에 닿으면 승객을 내려주듯 웨이퍼 용기를 분리시켰다. 클린룸에선 방진복을 입고 기계를 관리하는 직원 두세 명만 가끔 눈에 띄었다. 라이크 브레트슈나이더 인피니언 부회장은 “공정이 100% 자동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 반도체 거인 4개사 ‘적과의 동침’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전기차와 인공지능(AI) 장비 등에 쓰이는 300mm 웨이퍼 생산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리콘 작소니 입주 기업들은 자동화를 무기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독일 정부 ‘인더스트리 4.0’ 정책에 따라 일찍부터 자동화 수준을 높인 결과다.
또 유럽을 대표하는 첨단산단인 실리콘 작소니에는 반도체 기업과 관계사, 고객사 등이 모여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피니언을 비롯해 글로벌파운드리, 보쉬, 엑스팹 등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 4개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슈테판 울리히 실리콘 작소니 프로젝트 매니저는 “반도체 강자인 네 기업이 한꺼번에 입주한 산단은 보기 드물다”며 “이런 강점을 토대로 유럽 반도체 산업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다가 2016년 드레스덴에 나노테크디지털을 세운 정유엽 대표는 “한국에선 삼성과 LG가 협업하기 힘들지만 여기선 경쟁사 구매 담당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좋은 거래처를 공유한다”고 했다.
글로벌 메이커들이 협업하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실리콘 작소니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실리콘 작소니는 기본적으로 민간 회사들의 협의체다. 2000년 15개 업체가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회비를 걷어 투자 유치 행사를 열거나 정보를 교류한 것이 모태가 됐다. 서로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익히면서 23년 만에 급성장해 현재 고용 인원만 7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2500곳이 입주해 연매출이 23조 원에 이른다.
● 지방정부, 인건비 5년간 절반 지원
지방정부는 민간 협의체를 측면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작센주에 처음 투자하는 기업은 고용 인원, 급여 상한 등의 요건을 갖출 경우 인건비 절반을 약 5년간 지원 받거나 설비 투자비용의 25∼3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작센주는 또 공장 신설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업 애로 사항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브레트슈나이더 인피니언 부회장은 “에너지와 물이 탄탄하게 공급돼야 생산이 안정화된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에너지와 물) 관련 기업들이 이 지역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줬다”고 말했다.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작센주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 유럽연합(EU)으로부터 ‘3중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핀클라우드시스템스는 지난달 초 EU 지원금 250만 유로(약 35억 원)를 받았다. 독일 연방정부 2개 부처도 지난해 각각 25만 유로(약 3억5000만 원), 50만 유로(약 7억 원)를 지원했다.
숙련된 인력이 산단 입주 기업들과 긴밀한 교류 속에 배출된다는 점도 강점이다.
산단에 있는 ‘드레스덴 칩 아카데미’는 입주 기업의 공동 교육 플랫폼이다. 기업이 교육비를 내면 아카데미가 해당 업체 직원들을 교육해 준다. 정식 입사 전에도 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이곳에서 실무를 배울 수 있다. 김홍균 주독일 한국대사는 “실리콘 작소니 인근 라이프치히에 자동차 기업이 모여 있어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풍부하고 프라운호퍼연구소나 드레스덴공대가 기업과 협력하는 점 등도 국내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조은아 특파원, 보스턴=김현수 특파원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 MIT 등 세계 최고 산학연 한자리에
[첨단 산단이 산업지도 바꾼다] 〈1〉
바이오기업들 몰리는 美보스턴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인근 켄들스퀘어는 대학 연구소와 글로벌 바이오 제약사, 스타트업 연구개발(R&D) 센터, 벤처캐피털(VC)이 밀집돼 있어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보스턴=김현수 특파원
“이 건물은 MIT(매사추세츠 공대) 소유이고 이웃 사무실에는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 아래층에는 바이오 벤처캐피탈(VC)이 입주해 있습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바이오텍 클러스터 LG화학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에서 만난 노지혜 상무는 “대학-기업-금융이 결합한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의 특징을 이 건물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LG화학은 2019년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로 보스톤에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웠는데 이후에도 유수의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이 보스톤에 속속 진출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바이오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강조되면서 보스턴 중심지인 ‘켄달스퀘어’를 넘어 시 외곽까지 첨단 연구소가 들어서고 있다. 이를 두고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로 몰려갔던 것을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온다.
보스턴 바이오테크 클러스터의 최대 장점은 하버드대와 MIT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산학연이 모두 모여있다는 것이다. 클러스터 중심부인 켄달스퀘어는 대학 연구소와 기업이 울타리 없이 섞여 있다. MIT 항암센터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모더나, 바이오젠, 암젠 같은 글로벌 바이오 기업을 만날 수 있다.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원조’ 격인 바이오젠의 숀 제문덴 수석 매니저는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에선 대기업, 스타트업, 대학이 끊임없이 도움을 주고받는다. 바이오젠 역시 기후변화 관련해 최근 하버드대 및 MIT 연구소와 각각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했다.
바이오젠이 MIT 옆 공터에 설립된 배경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규제 완화가 있었다. 1970년대 지자체 차원에서 윤리 논란이 일던 DNA 실험을 허용하자 노벨상 수상자 필립 샤프 MIT 교수 등이 1978년 바이오젠을 공동 창업하면서 생명공학 기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1980년 제정된 ‘베이-돌 법’으로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경우에도 연구자가 특허를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산학 공동 창업 붐이 일었다. 지금도 미 국립보건원(NIH)은 매년 30억 달러(약 4조 원)를 보스턴 기반 바이오 연구에 쏟아 붓고 있다.
정신건강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센소리움의 김진우 수석 컴퓨테이셔널 생물학자는 “보스턴은 워낙 다양한 스타트업이 많아 미생물 분야 전공에서 데이터분석 같은 정보기술(IT) 분야를 접목해 가며 원하는 연구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한국계 박사들도 보스턴으로 몰린다”고 말했다.
바이오산업에 특화된 벤처캐피털(VC)도 클러스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문가들은 실패 확률이 비교적 높은 바이오 산업에 긴 안목을 갖고 투자하는 환경과 문화가 보스턴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1년 방문해 유명해진 VC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의 경우 창업 전 단계부터 성장을 돕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코로나19 백신으로 주목받은 모더나도 이 곳에서 탄생했다. 로버트 부데리 MIT 테크 리뷰 전 편집장은 “학생, 창업자, VC 등이 ‘멘토십’을 통해 교류하며 시너지를 내는 게 보스턴 바이오 혁신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