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7. 목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의 불우한 이전 배경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누가복음 2장
어제 오후 3시쯤 울산에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3일 동안 집회를 하면서 나는 거의 새벽 2시에 일어났다. 그러니 매일 잠을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 셈이다.
나는 원래 낮잠을 잘 자는 성격이 아니다. 잠깐의 낮잠이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쪽잠을 자는 편이 아니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통잠을 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감사하다.
2시에 일어나도, 3시간을 자도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거의 잘 해내니 이것 또한 젊은 날부터 살아온 습관이라 감사할 뿐이다.
이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보고 이제는 잠을 많이 자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살아온 습관은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 12시쯤 잠드는 패턴이었다.
그러니 하루 4시간 자고도 거뜬히 해야 하는 일들을 감당하지 못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 많은 분이 “제발 잠 좀 더 자야 한다”라고, “이제 좀 쉬셔야 한다”라고 말해주시는데 그 모든 말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주변에서 아무리 염려의 말을 해 주어도 그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 멘토링 방에 요즘 새로운 단어가 하나 생겼다.
바로 “지영 모드”
내 멘티 지영이는 아프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말거나, 어렵거나 말거나 해야 할 일들을 꿋꿋하게 잘 해낸다.
그래서 우리가 그 멘티에게 붙여준 칭찬이 ‘지영 모드’가 된 것이다.
요즘 멘티들끼리도 서로 “요즘 어때?”라고 하면 “지영 모드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하하.
나도 내 멘티들이 내 안부를 개인적으로 물어 오면 간단하게
"지영 모드"야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그 말을 다들 잘 이해한다. ㅎㅎ
아프거나 말거나, 피곤하거나 말거나 아직까지는 다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렇게 힘든 것도 없다.
나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말은 하지만 요즘은 진통제를 먹지 않는다.
먹지 않아도 잘 견딘다.
이전엔 사역할 때 진통제를 꼭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역하다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미리 먹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사실 나는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묵상에 간헐적으로 쓰긴 하지만, 설교할 때 허리가 아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제 오후 3시에 집에 들어와 보니, 아무래도 잠을 좀 자야 체력이 보강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 4시 20분에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선한목자교회 남자 성도님들만 참석하는 새벽 기도회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 새벽 5시 20분까지 가야 하니, 적어도 4시 20분에는 떠나야 1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QT까지 하고 떠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는가?
역시 지난 3일과 동일하게
새벽 2시에는 적어도 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날이면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에 새벽 설교 오라고 하면 못 간다고 해야겠다…”
하하하.
그래도 괜찮다.
어제 잠을 좀 일찍 청했기 때문에
새벽 두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났다.
남편에게 어제 방송된 롬팔이팔 방송을 보내줬더니 남편이 나보고 더 젊어졌다고 한다. 자기 안에 나에 대한 사랑이 옛날 사랑까지 다 돌아오는 것 같다고 농담하길래 나도 남편을 칭찬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젊어지고 예뻐지는 첫 번째 비결은 당연 하나님의 은혜이고,
두 번째 비결은 남편이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덕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이 오늘 남자 성도님들만 나오는 새벽기도 설교 잘하고 오라고 격려해 주길래,
“어머 당신 내 QT 읽어?”
라고 하니, 남편이
“당연하지!
내가 사랑스러운 나의 소녀의 글을 왜 안 읽겠어?”라고 한다.
영어 표현을 " My girl"이라고 남편이 말한 것을 내가 "소녀"라고 번역한다.
(참 내 남편은 미국 사람이다. ^^)
내 묵상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나가고, 케냐 현지 동역자들이 그 묵상을 읽는다.
남편이 그걸 읽는지는 몰랐는데 어제는 읽는다고 해서 감사 감사!!
나는 내가 인터뷰한 것이라던가 내 설교 동영상을 가끔 남편에게 보내 주는데
남편이 한국말 설교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내 얼굴을 보라고 보내 주는 것이다. ㅎㅎㅎㅎ
내가 남편하고 헤어져 지내는 동안 내 얼굴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내가 배려해 주는 것이다. ㅎㅎㅎㅎ
나는 나의 사역 동선을 느을 내 묵상에 올리니 어떤 분들은
나의 건강 그리고 내가 ‘번아웃 (burn out)을 겪을 것을 염려해 주신다.
한국말로 이것을 ‘탈진’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탈진은 피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곤은 차고 넘치고 막중한 일과 책임의 무게로 인하여
하는 일에서 도망가고 싶고
의욕이 상실되고 우울해지는 상태가 아닐까?
나는 피곤한 적은 많지만,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이 싫어진 적은 없다.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없다.
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생각도 사실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일을 더 잘해야 하는데 잘 못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려울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일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적도 별로 없다. ㅎㅎㅎ
잘해서가 아니라, 못하는 걸 알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이라 그렇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부르셨을까?
어떻게 내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가?
어떻게 내 설교 한 편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가?
나는 아직도 그게 신기하고,
아직도 감동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못하니까 그만해야겠다”
는 생각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잘해서가 절대로 아니라는 강조를 여기서 하고 싶다.
주님 나를 불러 주심!
그 자체가 은혜인 것을 잊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은혜고,
또 은혜고,
또 은혜다.
누가복음 2장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로마 황제의 호구 조사가 명령되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아 구유에 뉘어 놓는다. 여관에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 누가복음 2장
5.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6. 그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해산할 때가 돼
7.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고는 아기를 천으로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에서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여관방도 아니고 말 구유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세상에서는 부모의 배경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부모님을 수저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금처럼 화려할 수도 있고, 은이나 흙처럼 평범하거나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우리는 금수저 은수저가 아니라 하늘 수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말 구유였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방’이 아니라 말 구유였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 “속사람의 치유”를 말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 가정 배경, 불우한 환경 때문에 생긴 마음의 문제들을 예수님 안에서 다루는 것이다.
나 역시 상담학을 전공했고, 속사람의 치유에 대해 많이 가르쳤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이 회복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인도받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속사람의 치유가 필요하긴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길에는 ‘지름길’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단순하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내 과거가 어떠했든지, 어떤 상처를 받았든지, 어릴 때 환경이 어떠했든지,
예수님 안에서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단순한 믿음으로 우리의 생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 앞에서,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과연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 누구보다도 심한 고통과 억울함과 수치를 당하셨다.
가시 면류관, 모욕, 채찍,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만큼 억울하고 아프게 죽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치와 과거의 고통, 불우했던 배경, 인간적인 어려움을 다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풍성한 삶"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제가 주님 안에서 거듭난 나의 새 생명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과거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과거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이 계획되었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믿습니다.
저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났든지,
그 모든 것을 복음 안에서 덮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그 경험조차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새 소망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선한목자교회 남자 성도님들만 오는 새벽 기도회에서 설교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야 하지만, 일찍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잘 감당하게 하시고, 오늘 이어지는 모든 만남 사역 속에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이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우면 좋은 말씀
개역개정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5. 11. 27.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나의 딸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너는 나의 아들이라.
너는 나의 딸이라.
이것이 너의
새로운 정체성이라.
너의 부모
너의 가족
형제자매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겠느냐?
나는 너를 나의 딸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음이라.
자랑스러워야 할 것이니라.
기뻐야 할 것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하늘나라
아버지가 되심이라.
너는 나의 소중하고
또 소중하고
또 소중한 아들
그리고 딸이라.”
사랑하는 그대여
힘차게 당당하게 기쁘게
오늘 하루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