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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스크랩 *****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 예술과 역사를 미술로 만나다 <명성황후전>
백서연 쌍둥맘 추천 0 조회 36 13.08.29 15: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30824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 예술과 역사를 미술로 만나다

<명성황후전>

 

 

 

 

조선의 마지막 황후, '명성황후'
'명성황후전' 은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행보를 보여준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조선말기 국정운영을
 주도한 여인, 명성황후에 대한 전시입니다.
 
티켓팅 하고 인증사진 남기기

 

 

  

이렇게 미술로 재생산된 역사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학습' 을,
 어른들에게는 이제껏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고찰의 시간을, 그리고 역사적인 지식이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조선시대' 간접체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어린시절의 자영

명성황후의 어렸을 때 이름은 자영이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꽤 내노라하는 집안에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지만

8살에 아버지를 여윈 이후 어머니와 외볼게 지냈다고 추정된다.

 

 

 

 

 배경이 업어 오를수 있었던 왕비자리

외척을 무척이나 경계하던 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은

명성황후의 친정이 단출한것을 주변에 힘이 될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되어 며느리로 점찍고 있었고 결국 그 이후로 왕비로 간택된다.

 

 

 

대원군과의 갈등

 

하지만 남편인 고종은 후궁에 빠져있었으며 

대원군은 신분적으로나 가문적으로 나약한 후궁이 낳은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 하였으며 대원군의 완화군에 대한 성급한 세자 책봉 시도는

 결국 이뤄 지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명성황후는 시아버지 대원군의

의중을 알아보았고 자칫 자신은 허울만 좋은 찬밥 신세 왕비로 전락할수 있음을 간파했다

 

이후 고종의 사랑을 회복하 명성황후는 아들을 두명이나 낳았지만 모두 요절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원군의 원자에 대한 무리한 약 처방이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국정부터 앙가의 가정생활까지 간섭하며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두려 했던

대원군의 독단저긴 태도느 결국 명성황후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고종 또한 더이상 아버지의 간섭 없이 스스로 나라를 다스려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둘이 힘을 합쳐 고종의 친인척과 외척력까지

 고종의편으로 끌어들여 세력을 확대시켰다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고종이 스스로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풀고

 일본과 수교하였고 이후 차례로 서양의 열강들과 수교를 맺어 나갔다

그러나 이전의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미처 외국의 세력에 대해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개방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원군과의 대립과 기존 세력과의 갈등이,

국외적으로는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는 일본과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종과 명성화후는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하면서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국을 운영하였다.

 

임오군란 그 이후..

그 와중에  1882년 신식군대에 대한 구식군대의 불만이 표출된 임오군란이터져

명성황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기경에 이르러 그녀는 궁궐을 탈출하여 숨어지냈다

정권을 되찾은 대원군은 명성황후가 죽었다고 선포하고 장례를 치르려고 하였지만

명성황후는 청의 도움으로 궁궐로 돌아 왔고 대원군은 청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이후 청나라의 개입은 더 심해졌으며, 사리판단이 명확했던 명성황후였지만

목숨마저 위협받은 환란을 겪은 후 권력에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굿을 하거나 치성을 하는 등 나랏돈을 낭비하느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살해당한 왕비, 훼손된 국격

일본은 자신들이 조선을 국권을 침탈하는데 가장 방해요소로 왕비였던

명성황후를 지목하고 제거하고자 하였다.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의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는 난입해 들어온 일본 낭인들의 손에 처참하게 시해당했다

이것이 바로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이다.

 

 

외세에 의한 왕비살해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내에서는 일본에 왕비 살해의 원한을 갚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을미의병이 일어났고

국제적으로는 일본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드 높아졌다.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으로 인해 조선은 국격을 훼손당하고

망국으로 가는 길을 한발 더 내딛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작품과 함께 볼수 있어서

명성황후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게  됩니다

 

명성황후에 관한 색다른 작품들로 기품있는 명성황후를 만나 봅니다

 

같은 주제 다른 느낌의 작품들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요

 

색다른 작품의 장치로 아이들은 호기심과 재미를 더할수 있습니다.

여러겹의 흰천에 투사된 영상속으로 빠져드는건

어른이나 아이나 같은 모양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는군요

 

몽환적인 미래의 모습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런 어려운 많은 시련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오늘날 이렇게 멋지게 성공해내었습니다  

 

현재의 궁궐의 모습일까요?

  

같은 주제 다른 느낌의 작품들

 

 

 

그리고 그림이 아닌 명성황후상들 

 

 

같은 주제로 시작됐지만 작가고유의 개성을 담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작가의 시선을 체험하고 감성을 공유하는 공유할수 있었던 자리입니다.

 

 



입체 설치 미디어 아트전
'명성황후전' 은 평면 뿐만 아니라 입체, 설치, 미디어 아트 등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열린 작품들로 정말로 아이도
어른들로 따스한 공간이었습니다. 
 
 


[참여작가]
김민규, 김민주, 김성재, 김진경, 문종선, 박상화
박세라, 배수영, 신상철, 신제남, 신정미, 안혜경, 윤선영
임정기, 정경희, 정규호, 정양희, 이혜민, 정종미
조정화, 한 호

[체험교실]
- 체험교실 각 만원 (*입장료와 별도)
- 현장접수
- 정시마다 시작 (변동가능)

체험 1.
자개공예-손거울 : 손거울 뒷면을 자개로 장식하는 작업

체험 2.

석고부조작품-색칠하기 : 입체 석고부조를 물감으로 색칠하는 작업

 

 

 

오랜시간아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건
아이들이 재현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룬 공연을
어린이 배우들이 직접연기해서 틀어주었는데요
한참이나 진지하게 바라봐주었답니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상영관에서
애니로 만들어진 명성황후를 오랫동안 보았답니다. 

 

뼈아픈 과거로 무너지지 않고 굳건한 현재를 만들어온

우리 선조들의 굳은 의지를 이녀석들이 이어서

더욱 강건한 나라로 만들어 갈꺼라 믿습니다.

 

가슴 아픈 과거의 사실을 눈으로 보면서 젖었던 눈시울

 사뭇 진지했던 녀석들 눈빛때문에  마음의 위안을

 얻을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현재 : 6,000원에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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