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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uropa Universalis 원문보기 글쓴이: Lucius Verus
<1. 베르시니키아 전투>
(한눈으로 보는 어마어마한 불가르의 침공...)
지중해의 무더위가 이어지는 6월, 아드리아노플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베르시니키아 평야에 어마어마 수의 두 군대가 서로를 마주한 채로 힘든 신경전을 벌이며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런 대치도 벌써 2주를 넘어가기 시작했고, 무더위에 픽픽 쓰러지는 양측의 병사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니 병사와 지휘관들의 불만이 커져만 갔는데, 특히나 비잔티움 측 진영에서는 불만은 매우 컸다. 마케도니아의 사령관 요한네스 아플라케스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친정을 나온 황제에게 건의했다.
"폐하, 저희의 군대는 이미 저 이교도(크룸과 불가르군)들보다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그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허비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당장이라도 군대를 휘몰아서 저들에게 로마제국의 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 말에 충동된 황제 미카일 랑가베는 심히 고뇌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군대를 이렇게나 수동적으로 군대를 운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상대 측의 군대를 이끄는 불가리아의 왕, 크룸에게 각인된 공포가 어마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룸은 미카일 1세의 선선대 황제인 니케 포루스 황제를 무참히 살해하고 그의 두개골로 잔을 만들어 제국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으며, 미카일 1세 치세 때도 크룸은 그리스 전역을 휩쓸고 다니며 무수히 많은 제국 군을 전멸 시키고 수많은 신민들과 주교들을 순교 시켰으며 미카일 자신 또한 죽을뻔했으니 이만한 악명을 알리는 자에게서 공포를 떠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 이후로 로마의 황제에게 굴욕을 선사한 크룸, 비잔티움에게는 악몽이지만 불가리아에게는 대왕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그의 이번 친정은 그가 내켜서 간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는 전쟁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실적을 보여왔고 이는 곧 신민들에게 불만을 쌓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성상 파괴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치솟는 수준이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황제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었기에 이번 전투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친정을 해서라도 이겨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크룸이라는 죽음 공포는 이 긴급한 사태에서도 강하게 작용하는 바람에 이러한 상황이 나오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5월에 출발 했음에도 한 달이나 트라키아에서 망설이다가 크룸의 군대가 6월 초순에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에 겨우 이렇게 군대를 이끌고 크룸을 맞이한 것이다.
황제는 이렇게나 공포에 떨었지만 실상 제국군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괜히 요한네스가 제국군을 높게 평가하며 선공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때마침 사라센에선 내전으로 인해서 연례행사처럼 하던 아시아 침공이 사라진 탓에 아시아에서 꽤나 많은 수의 장병들을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질적, 양적으로 불가르군에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수일간 고뇌하던 미카일 1세는 결국 6월 21일, 드디어 공포 속에서 결단을 내리고 만다. 그리고 이튿날 제국군의 선제공격으로 2주 가까이 지속되던 지루한 대치를 끝내고 전투가 개시 되었다.
자신들의 승리에 '너무' 고무되버린 불가르군은 나약한 제국군(그들의 생각) 따위가 자신들에게 선제공격하지 못할거라며 방심하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큰 혼란에 빠졌다. 진형도 제대로 못 갖추고 전투가 개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패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이대로만 간다면 제국은 이제까지 불가르에게 받아온 치욕을 한꺼번에 되돌려줄 수 있으며, 황제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성상 파괴자들을 억누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한순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익을 레오라는 아르메니아의 지휘관이 자기 휘하의 아나톨리콘의 군대를 후퇴, 아니 패주 시킨 것이었다! 이 어이없고 놀라운 광경은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특히 크룸은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한 듯이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신이 준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어지고 말았다. 초반에 제국군이 기세를 올려서 전투를 했음에도 이제는 중과부적이 되고만 것이었다. 결국 제국군은 대패를 하고 말았으며 주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인으로 구성된 병사들이 대거 전사하고 황제는 단신으로 겨우 전장을 빠져나갔다.
(탈탈 털리로 도주하는 황제,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더 이상 이 엄청난 공포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미카일 1세는 전장에서 뛰쳐나오자마자 그대로 총대주교인 니케포루스를 찾아가서는 자신의 제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차지한 제위와 니케포루스 가문의 비극 때문에 자신에게 신이 노했으니 이제라도 제위에서 물러나서 참회하겠다며 제위를 포기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 황당무계한 말을 들은 총대주교가 그의 말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쨌건 총대주교는 황제의 결정을 승인했다.
권력욕이 있었던 황후 프로코피아는 황제의 그러한 결정에 크게 반발하며 남편에게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된다며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유스티아누스가 아니었다. 이미 이 상황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미카일은 총대주교에게 자신의 목숨을 지켜달라며 간청하고는 자신의 아내와 다섯 아이들과 함께 수도승으로 변장한 후에 파로스 성모 성당으로 피신해서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은둔했다.
새로이 등극한 신황제는 구황제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었으나 후일 미카일의 아들들이 장성한 뒤에 계승권 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하면서 미카일의 세 아들을 거세시키고 수도서원 시켰다. 미카일의 아내인 포로코피나와 두 딸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으며 미카일 자신도 아나타시우스라는 성직자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프린기포라는 섬의 수도원에서 수도승으로써 은거하며 32년을 더 살다 공교롭게도 선대 황제인 스타에라키스의 기일인 1월 11일에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 디오클레타니우스 황제 이후 스스로 은퇴한 로마의 황제는 미카일 1세가 처음일 것이다.
그럼 자비를 베풀어주고 새로운 황제가 된 자는 누구인 것일까? 놀랍게도 금문을 통해서 당당히 수도로 진입해서는 바실레오스가 된 자는 바로 도망자 레오였다!
(레오 5세의 동전, 과연 그는 어떻게 황제가 됬을까. )
아시아의 군대만한 용맹을 떨치는 제국군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센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아시아의 군대는 경험도 풍부하고 노련한 베테랑들로 가득찬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전세는 제국군에게 기운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군대가 그런 상황에서 군인으로써 가장 비열한 행동인 전투 도중에 전우들을 버리고 패주를 선택한 것일까? 사실 이 전투는 의문점이 매우 많은 편이다. 첫번째가 아시아군의 이유없는 패주이며 두번째는 크룸의 전략이었다. 크룸은 원래 산지 같은 험지에서 적을 유인해서 싸우는 전술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군대보다 강력한 적을 상대로 개활지에서 전면전을 하려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패주한 군대는 적군에게서 추격을 받지 않고 멀쩡히 살아남아서는 아무런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이 점들을 보아했을때 매우 레오와 휘하 병사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레오가 어떤 인물인가도 상세히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레오라는 자는 이미 배신을 해본 전과자였기 때문이다. 몇년전의 바르다네스 투르쿠스라는 반란때도 그가 깊게 관여한 적이 있었으며 그의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었다. 이러한 점들을 정리하고 레오가 일부러 제위를 노리고 전장에서 이탈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으며 또한 이 모략에는 크룸도 가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는 미제로 남은 것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추측일뿐 어떠한 자료에서도 그가 모략을 꾸몄다는 의문을 품은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아마 찾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정녕 이자가 짐의 친구란 말인가!>
어쨌건 레오는 성대한 대관식을 열고 미카일 1세의 뒤를 잇는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이때 대관식에서 계단을 오르는 황제의 뒤를 따르며 당당히 계단을 걷다가 그만 실수로 황제의 망토를 밝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카일이라고 프리지아의 아모리움에서 태어났으며 바르다네스 투르쿠스 반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한 동료 장교였으며, 이번 음모에서도 레오를 도우며 공을 세웠고(?) 이번 대관식에선 당당히 그의 뒤에서 걸어갈 수 있는 영예를 얻었다가 이런 참사를 범하고만 것이었다. 만약 황제가 원한다면 그에게 엄한 벌을 내릴 수도 있었으나 레오 5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대관식에서 그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시금 우정을 확인하고 황궁의 경비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나는 듯했다.
아마 레오 5세는 자신과 미카일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듯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밝혀진다. 대략 820년 초가을이 되면서 미카일은 무슨 생각으로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오 5세가 황제가 된 것은 오로지 자신의 공이며 레오 5세는 한 게 없다며 비방하고 소요를 선동했다. 이 사실은 급속도로 퍼져서는 황궁에도 들어가게 된다. 당연히 미카일과의 우정에 금이 갔을 리가 없다고 장담하던 레오 5세는 믿지 않았으나 점점 그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괴로워했다. 그래도 황제는 작은 희망을 품고 요한네스 헥사불리오스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는 한편 그를 통해서 경솔한 행동은 화를 불러온다며 주의하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미카일은 오히려 더 삐뚤어졌는데, 아예 그는 추종세력을 모아서 모반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만다.
황제는 이 사실을 알고 한숨과 탄식을 내뱉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한밤중에 레오 5세는 미카일을 불러다 지금까지 레오 5세가 밝혀낸 미카일의 죄들과 그 증거들을 미카일에게 보여주며 죄를 추궁했다. 아마도 이때까지도 레오 5세는 간절히 이 사실이 거짓이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정확한 증거들을 부정할 수가 없었는지 미카일은 죄를 이실직고하고 만다. 레오 5세는 그대로 폭발하고 만다. 수십년을 같이한 동료에게,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자 이성을 잃고만 것이었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미하일을 펄펄 끓는 아궁이에 집어 넣으라고 명렁했다. 이 소식을 들은 테오도시아 황후는 깜짝 놀란 나머지 신발도 신지 않은채로 다급하게 황제에게 뛰어가 그런 잔인한 행동을 극구만류 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곧 신성한 크리스마스가 되고 미사에 참석해야하는데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다면 신을 볼 면목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레오 5세는 이성을 되찾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미카일을 수갑으로 묶게 하고는 황궁 구석진 방에 가두게 했다.
그리고 레오 5세는 내일을 위해서 침대에 드러누웠으나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필 그는 얼마 전 본 예언서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죽음을 불러온다고 봤기에 괜히 황후의 말을 들었나 하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별에 별생각을 다하다가 문뜩 죄수가 살아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더니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단신으로 오로지 촛불만을 든 채로 어두컴컴한 밤중에 구불구불한 황궁의 복도를 걸어 죄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죄수의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장치들을 오로지 황제의 '근력'만으로 다 부숴버리고 죄수 앞에 섰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간수와 죄수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혹시나 미카일이 감방에서 나와서 자신을 죽일까 봐 걱정한 레오 5세는 너무나도 잘 자는 미카일의 모습을 믿을 수 없어서 손을 미카일의 가슴에 대보았다. 미카일의 맥박이 고르다는 사실을 알아낸 레오 5세는 흡족하다는 듯이 감방에서 나와 다시 자신 침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황제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왔다간 사실을 자신뿐만이 아니라 제 3자가 보고 있었다는 것을... 미카일은 감방에 들어면서 어찌어찌해서 자신을 잘 따르는 환관 하나를 같이 데려왔었다. 이 환관은 밤을 눈을 뜬채로 지세우며 자신과 자신의 주인이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들이 부셔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키작은 황제가 나타났다! 환관은 매우 놀라서는 황급히 죄수의 침대 밑으로 숨었는데 황제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침대밑에서 이 놀라운 사실을 안 환관은 미카일과 간수를 깨워다 알려주었다. 환관의 말 너무 놀란 간수는 죄수를 도와주기로 했다. 미카일도 이렇게만 있을순 없다며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3. 크리스마스의 비극>
미카일은 일단 자신의 추종세력부터 재규합해야 했다. 그래서 간수에게 하인을 명목상으로는 자신의 죄를 고해하기 위한 사제를 찾아야 한다고 부탁했다. 물론 하인의 진짜 목적을 자신의 음모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계획은 완성되어 거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길거리에 나와 합창대가 부르는 노래를 같이 따라부른다고 한다. 이때 황제는 황궁의 상아 대문에서 성 스테파누스 예배당까지 아침 예배를 들이며 가는 것이 관례였다. 레오 5세는 너무나도 추운나머지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황제들과 별반 다른거 없이 수도승들과 귀족들을 이끌고 예배당까지 쭉뻗은 가도를 걸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올렸다. 어느정도 걷자 성 스테파누스 예배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오 5세는 어제밤 일로 마음이 심란했으나 성탄절을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을 다시 잡고 성 스테파누스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레오 5세가 들어가자마자 예배당은 합창단의 찬송가의 가득찼다. 황제도 예배를 드리려고 온 사람들처럼 맨 앞 줄 중앙에 앉아서 찬송가를 합창했다. 뜬금없지만 어느 기록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고 한다. 그렇게 찬송가는 절정을 향해서 가기 시작했다.
딱 찬송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황제의 바로 뒤에서 합창하던 수도승 여럿이 널찍해서 물건따위를 숨기기 좋던 수도승의 옷에서 검 따위의 무기를 빼들더니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사람의 목을 그대로 쳐버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이 암살에 다들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거나 소리를 지르는 둥 예배당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카일은 추종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아침에 황제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아침 예배에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탄 것이었다. 추종자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잘라진 머리를 들어서 모자를 벗겼다. 놀랍게도 머리는 황제가 아니었다! 그날 공교롭게도 미사를 주최하며 황제의 옆자리 앉고 있었던 사제도 황제와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자를 벗기자마자 보인 것은 대머리 사제였던 것이었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채고는 다시 칼을 움켜잡고 진짜 황제에게 칼을 휘둘렀다.
추종자들이 흠칫하는 그 짧은 틈을 타서 레오 5세는 제단에서 남정네 혼자는 들기 힘든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휘두르며 완강히 저항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칼날은 레오 5세의 오른쪽 팔과 어깨를 분리 시켰다. 이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기도 전에 레오 5세는 다른 칼에 의해서 목이 잘려나갔다. 이렇게 전우들을 배신을 하며 황제가 된 레오 5세는 820년 성탄절 약 새벽 4시에 끔찍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레오 5세의 시체는 공동변소에 처박아졌다가 미카일에 의해서 꺼내져서는 전차 경기장에서 전 신민들에 기 공개된 채 전차에 묶인 채 시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끌려다녔다고 한다.
임무를 완수한 추종자들은 곧바로 미카일에게 달려가서 그를 구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추종자들중에선 아무도 미카일의 수갑을 풀 줄을 몰랐고 결국 미카일은 바실레오스로 추대면서도 수갑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최초로 수갑에 묶인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카일 2세, 친구를 버리고 황제가 된 냉혹한 자이다만 그의 치세때를 거쳐서 아들 테오필루스 치세때는 부흥기를 맞이 한다)
미카일은 레오 5세과의 옛정을 생각해서 누더기가 된 레오 5세의 시신과 그의 아내 테오도시아는 네 명의 아들과 함께 프린키포 섬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전에 레오 5세가 미카일 1세에게 한거 처럼 미카일 -공교롭게도 둘다 이름이 미카일이다 - 계승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레오 5세의 어린 네 아들들을 거세시키고 수도서원시켰다. 거세된 아들 중 하나인 그레고리우스는 시라쿠사의 대주교가 되었지만 운이 없었던 막내 테오도시우스 수술 도중 사망해 레오 5세의 옆에 묻혔다고 한다.
(현재는 휴양지로 남아있는 그리스들의 섬. 하지만 한때 저런 외곽진 섬들에서 곶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는 테오도시아와 그녀 자식들이 똑같은 꼴을 당하고 유배당한 미카일 랑가베를 만났을 때 어땠을지가 몹시도 궁금하나 안타깝게도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를 않았다.
「참조 - 비잔티움 연대기, 저자:존 줄리어스 노리치. BYZANTIUM:THE APOGEE by John Julius Norwich」
첫댓글 ㅎㄷㄷ 하군요 잘봣습니다^^
감사합니다.
크킹을 너무해서 그런가 거세에 눈이....
허헣
그래도 이때는 제3의 전성기가 올 때쯤이라 잘 버텼는데 만지케르트 이후엔 크헉... ㅜㅜ
미카일 2세를 거쳐 테오필루스 치세때 부흥기를 맞이하니.... 기다려랴 제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