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화
서윤후
기후위기에서 구해주세요 팻말에 그려진
북극곰 이마 위로 반짝이 별 스티커를 붙이고 돌아서는
중학생의 운동화 코
회전축 하나가 내 안경에 빗금을 긋고 지나갈 때
목이 말라 숨길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약속한 적 없이 하늘에 대해 떠든다
기어코 고개를 들어 올려보다가
교회 첨탑 십자가 밑으로 지어진 새 둥지를 발견한다
살기로 약속한 적도 없이
슬리퍼는 언제 버리지?
그곳을 떠날 때만
느낌과 기분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치명적이야
내가 회사를 그만두던 날 네가 해준 말
목이 말라서 아무 대꾸도 없이
붉은 종아리들이 죽은 신발을 타고 걸으며
언젠가 시침질해둔
여름을 뜯으며 걷는 여름이었다
이젠 차가운 구름 솜을 덮어야겠구나
북서 태평양에 사는 틀링기족은
빙하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는대
그 위에 서서 험담이나 거짓말은 하지 않는대
얼음은 진실에 가깝대
사람은 녹아갈 때마다 넘어지곤 해
맞아, 사실 지어낸 말이야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 말리며 하던 이야기
차가운 농담이 이름에 박혀 시려오면
눈동자 위를 하염없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흐리게 보일 정도로만 닦는 눈물
부축할 수 있을 정도로만 넘어짐
나의 열기를 주고 너의 냉랭함을 받는다
꼭 돌려받아야만 했던 일처럼
불이 꺼지지 않아서 내려올 수 없는 열기구 타고
작별을 근사하게 말하는 법 모르고
서로의 이마를 부딪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있어
한쪽 안경에 빗금을 마저 긋고 싶어
갈증의 터울을 헤아리며 걸어갈 때
내가 탔어야 했던 버스에
목발 쥔 학생이 절뚝이며 올라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