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효과
나 일어서지 못하겠어, 라고 말하더니 의자가 되어버렸다. 이제
누울 수도, 잠에 빠질 수도 없으리라. 슬픔이 곧바로 그 등을 검
게 칠했다. 그때부터 창밖은 영원히 한낮이다.
⸺ 잇시키 마코토, 「상실」 중에서
최지은
그의 역할이 끝났다
그는 찬물에 체한 역을 맡은 사람
채 녹지 않은 얼음을 남기고
화면 밖으로
사라져버린 사람
나는 얼음을 쥐고 서 있다
얼음은 녹을 것이고
물이 될 것이고
그마저도 마르고 나면
무대는 사라지고
두 발이 지워지고
감성은 투명해질까
그것과는 무관하게
마지막 숨은 어딘가를 떠돌겠지
그럼에도 무심하게
누군가는 그 숨 때문에 다시 숨 쉬게 될 것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연한 잎이 숲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숨
그것은 투명하게 있다
가끔은 사라진 그가 어딘가에서 얼굴을 내비칠 것 같다는 투명한 마음도
투명하게 있다
얼굴이 아니면 뒷모습 그게 아니면 발자국
그 또한 아니면 그가 자주 앉아있던 한낮의 공원 벤치 위에서
더듬는 온기로
나는 걸어가는 역할을 맡은 사람
테두리를 잃어버린 넓고 높고 깊은 공원 속으로
투명한 것이 범람하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숨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죽은 냄새를 맡게 될 것
바람은 불었다
몸 안으로 얼음의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냄새가
⸻계간 《시와 사상》 2018년 봄호
-------------
최지은 / 1986년생. 세종대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과 졸업. 2017년 《창작과비평》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