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프로야구에 ‘돌아온 선수’상을 지금 선정한다면 누가 가장 유력한 후보일까요?
아마 십중팔구 삼성의 국민타자 이승엽(38)을 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승엽은 올해 전반기에 타율 0.293, 19홈런 60타점이란 호성적을 거뒀습니다.
타율은 리그 49위이지만, 홈런 공동 7위, 타점 공동 10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0.253 13홈런이란 초라한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감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름값을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입니다. 올스타휴식기에 접어들기 전 이승엽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습니다.
그는 “올 시즌 들어 각종 인터뷰를 모두 거절했다”면서 “지금도 인터뷰를 하는 게 좀 설레발 같아 조심스럽지만, 해도 될만한 때가 온 것같다”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배수의 진을 쳤다”
먼저 그에게 지난해 부진을 거듭하면서 은퇴할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승엽은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주위에서 이제 다된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남들 얘기에 등 떠밀려 그만둬 평생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승엽은 은퇴한 선배들을 보면서 야구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절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부진했을 때도 은퇴란 단어는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올해 지난해 부진을 만회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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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의 호쾌한 타격. 정재근 기자
이승엽은 지난해 실패한 원인으로 컨디션을 너무 빨리 끌어올린 것을 꼽았습니다. 2013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있었습니다. 이승엽은 그 대회가 자신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대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몸을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대표팀은 네덜란드 복병을 만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맛봤습니다.이승엽은 “지난해 훈련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몸을 너무 빨리 끌어올렸다”며 “그러다 보니 체내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승엽은 명성답지 않게 지난해 어이없는 공에 헛스윙을 연발하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그런 그에게 변치않는 신뢰를 보이면서 한국시리즈에도 그를 주전으로 내세웠습니다.하지만 이승엽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별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이승엽은 “너무 창피해 팀이 우승하고도 아예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후부터 그 어떤 인터뷰도 거절하면서 올 시즌을 잔뜩 별렀습니다.이승엽은 4,5월 서서히 타격감을 살리더니 6월부터 ‘라이언 킹’의 본색을 발휘했습니다. 6월 17일 SK 전에서 데뷔 후 첫 한 경기 3홈런을 때리는 등 타율 0.330. 9홈런 23타점을 올렸습니다. 삼성이 단독 선두 질주 체제로 들어간 것도 이승엽의 부활과 맞물립니다.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 후배들에게 중심타선을 내준 그는 ‘공포의 6번 타자’로 맹활약하면서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이승엽은 “작년에는 경기 전부터 주눅이 들었는데, 올해는 어떤 투수가 마운드에 서 있든 자신 있게 타석에 들어선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얘기였습니다.이승엽은 ‘부활’의 배경으로 타격 자세의 변화를 꼽았습니다. 이승엽은 올해 방망이를 그라운드에서 수직으로 세우던 과거 폼을 버리고 방망이를 눕힌 상태에서 타격에 들어갑니다. 그는 “타격을 1~10단계로 나눴을 때 지금 내 스윙은 1~3단계는 생략하고 4단계부터 들어간다”며 “스윙이 작아지면서 내 타이밍에 공을 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윙이 간결해지면서 어이없는 공에 헛스윙을 연발하던 모습도 줄었습니다. 지난해 4~5타수당 1개꼴이었던 삼진이 올해는 7타수당 1개로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이승엽은 또 올해는 스프링캠프부터 안 맞더라도 조바심을 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폼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부진이 길어지면서 폼을 바꾸다 오히려 밸런스를 잃어버렸던 지난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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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11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 KIA의 경기에서 이승엽이 6회 선두타자로 나와 KIA 소사를 상대로 좌중월 솔로포를 날렸다. 송정헌 기자
인내심은 결실을 거뒀습니다. 잡동작을 줄이고 스윙 스팟에 공을 맞히는 데 주력한 이승엽은 시즌 초반 타격감을 잡은 이후 임팩트 순간 힘을 가하는 요령이 생기면서 홈런포를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김한수 삼성 타격코치는 “이승엽이 타석에서 힘을 모으는 준비동작을 줄였지만, 현재 자세로도 허리 회전과 힙턴을 예전처럼 힘있게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이승엽은 “올해도 초반 부진했다면 내 야구 인생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즌 도중 은퇴라는 극단적인 결단을 하지 않았겠지만, 시즌 후 은퇴 여부를 놓고 고민했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이승엽은 이제 삼성 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의 올 시즌에 ‘은퇴’라는 단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400홈런 내년에 이루겠다”이승엽은 올 시즌 20홈런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쾌조의 상승세를 보이면서 전반기에 19개를 쳤습니다. 목표에 불과 1개만을 남겼습니다. 목표를 이제 상향조정해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의외로 이승엽의 꿈은 ‘소박’했습니다. 그는 다음 목표는 30개 아니냐는 질문에 “20개를 넘기면 25개, 25개를 달성하면 30개를 목표로 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몸이 젊은 후배들 같지 않다. 괜히 목표를 높게 잡고 무리를 하게 되면 오히려 스윙이 망가진다”며 “목표를 소박하게 잡고 한 계단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갈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이승엽은 국내 리그에서는 아무도 밟지 못한 400홈런 고지에도 가장 가깝게 가 있습니다. 이승엽은 1995년 프로에 데뷔해 올해까지 국내리그에서 377개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일본 무대에서 8시즌을 뛰었는데도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이승엽은 “국내에선 400홈런을 날린 선수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30년을 갓 넘긴 한국 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내가 장식하는 영광을 맛보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목표 달성 시기에 대해 “올해 페이스를 이어가면 내년엔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그는 또 2000안타에 대해서도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20일 현재 1637개의 안타를 때렸습니다. 목표에 263개 남겼습니다. 국내프로야구에서 2000안타를 때린 선수는 양준혁, 장성호, 전준호, 이병규 등 네 명뿐입니다.현역생활을 하면서 그는 홈런에 관한 한 각종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이승엽으로서도 평생 이뤄내지 못할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이클링 히트입니다. 타자가 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때려야 하는 진기록입니다. 이승엽은 “정말 하고 싶은데 이제는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사이클링 히트에서 가장 나오기 어려운 게 바로 3루타입니다. 3루타를 때리려면 빠른 발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 신은 이승엽에게 천부적인 타격 재능과 힘은 선사했지만, 빠른 발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승엽이 국내리그 12시즌 동안 기록한 도루는 46개에 불과합니다. 두자릿수 도루는 1996년 10개, 한 차례뿐입니다. 3루타도 20개밖에는 되지 않습니다.“병호야 내 기록을 반드시 깨라”국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이승엽이 2003년 세운 56개입니다. 올해 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넥센의 박병호(28)입니다. 한때 신기록 페이스를 이어가던 그는 전반기에 30개의 대포를 터뜨렸습니다. 한때 이승엽의 신기록을 넘는 홈런 페이스를 기록하다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잠시 주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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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타자 이승엽(오른쪽)이 2014년 6월 10일 프로야구 넥센과의 경기에서 3회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넥센 1루수 박병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이승엽은 “박병호는 파워뿐 아니라 강한 정신력도 갖추고 있어 충분히 기록을 깰 능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승엽은 “박병호가 목동야구장에서 장외로 홈런 날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서 “당시 타격을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괴력을 지니고 있더라”면서 “이미 2년 연속홈런왕을 차지한 만큼 정신력에서도 절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넥센과 맞대결하면서 1루에서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병호에게 ‘반드시 내 기록을 깨라’고 했습니다. 또 단순한 홈런왕을 목표로 하지 말고 60개 이상을 때린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서라고 당부했습니다. 목표를 높게 잡아야 이루는 것도 많잖아요? 저는 이제 나이가 먹어 목표를 소박하게 잡고 있지만, 병호 정도면 얼마든지 목표를 크게 잡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이승엽은 “항상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찾아올 때 잡아야 한다”며 “박병호 선수가 내 홈런 기록을 깰 때 국내프로야구가 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이제 22일부터 후반기 시즌이 재개됐습니다. 이승엽이 과연 어떤 성적을 거두면서 올 시즌을 마무리할지 기대가 됩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