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이 사장감이라고
1973년 3월달 이었지요 국내에 수출용 자전거 공장을 세우는데 필요한 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신문 하단에 큼지막하게 났습니다 당시 기아산업에서 만드는 삼천리 자전거가 있었으나 주로 쌀집에서 쌀가마를 배달하는 운반용 자전거로 등치가 크고 무거웠으며 종류도 한두가지였지요 사원 모집 공고 내용을 잘 살펴 보면,다양한 종류를 생산할수 있는 공장을 만들고 수출을 목적으로 하면서 국내 자전거 산업을 육성시키고저 했었던것 같습니다 총 12명을 선발했고 4명은 자전거 생산 그리고 8명은 조립부문으로 2팀으로 나뉘어 6개월간 일본어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스탄이(수곡)자전거 공장에서 3개월간 생산 라인에 투입돼 일본인과 똑같이 일을 했지요 일반용, 스포츠형 등등 자전거 종류가 한 50여가지는 되는듯 싶어 보였지요 국내에서 기아산업제의 검은색의 짐차만 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좀 부끄럽기도 했지요 쉬는 일요일날 우리들은 자전거를 한대씩 타고 도로를 주행했습니다 가볍고 아주 잘나갑니다 앞 친구들이 타고가는 자전거 표면의 색갈은 아주 밝고 마치 유리를 입힌듯 햇빛에 반사될때 마다 번쩍번쩍 거립니다 처음 접해보는 드롶프형 스포츠 자전거를 허리를 잔득 구부리고 패달을 밟으면 몸에 와닿는 바람의 세기로보아 속도가 아주 좋은듯 싶었지요 이대로 가볍게 내 달린다면 십리길도 단숨에 갈것 같았지요 공장으로 돌아와 하는 얘기들인즉 자전거가 맘에 든다고 기분 좋은 눈치들 이었지요 특히 오늘 탄 자전거들은 그동안 우리들이 만든 자전거 였기에 감회가 깊었답니다 각자 자기들이 만든 자전거중 한대를 골라 타고 나간것이지요 일본인들은 보는 사람마다 모두가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고 돼지 같이 살이찐 사람도 가끔 보게 되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선 뚱뚱한 사람을 보면 사장감이라고 했고 대부분 모두가 오동통하게 살찐이 아주 보기 드물었답니다 대부분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하루 두끼로 때우는 집들이 허다했지요 하루 세끼조차도 제대로 못먹든 시대였으니 모두가 날씬한 사람들뿐이었답니다 우리들 한달 급여가 3만원 이었는데 일본인들은 말단 사원이 이십만엔을 받았지요 자주 전철 내달리는 소리가 들리지요 동경 시내에는 버스가 아애 안 다니고 지하철이 밤 늦게까지 다니고 있었습니다 (작성: 201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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