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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새는 국민연금, 수익률 4%대… 운용사도 세계 100위내 ‘0’
[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투자전쟁 뒤처진 한국금융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는 소외되면서 국내에서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우물 안 개구리’. 글로벌 금융 중심지를 꿈꾸지만 실상은 연기금과 민간 자산운용사, 시중은행 모두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이 ‘K금융’의 냉정한 현실이다. 기금운용본부를 전북 전주로 옮긴 국민연금은 900조 원이 넘는 운용 자산에도 불구하고 해외 금융사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한국의 은행들은 전체 이익의 대부분을 이자이익에 의존하고 있고, 민간 자산운용사는 단 한 곳도 세계 10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전주 이전 국민연금 ‘우물안 개구리’
인력 年 30명 이탈… 전문성 약화
국내 자본시장 부동산-예금 몰려
삼성자산운용 세계 103위 그쳐
“인천공항에서 택시로 이동해도 고속도로에서 3시간을 허비합니다. 오죽하면 한국까지 와서 국민연금을 안 만나는 자산운용사도 있겠어요.”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아시아 본사(홍콩)에서 한국 기관 마케팅을 담당하는 A 씨의 넋두리다. 한국에 출장 올 때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방문하는데, 전북 전주를 오가는 게 막막하다는 얘기다.
한국이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민 노후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지리적 한계에 따른 인력 유출과 전문성 부족으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모습이다.
● 끝없는 인력 유출…해외에서도 “국민연금 패싱”
국민연금은 운용 자산이 7070억 달러(약 926조 원)로 전 세계에서 큰손 중의 큰손이다. 1조4250억 달러를 굴리는 일본 공적연금(GPIF)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그러나 몸집만 클 뿐 운용 성과는 떨어진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2013∼2022년) 수익률은 4.7%로 캐나다 CPPI(10%), 노르웨이 GPFG(6.7%), 일본 GPIF(5.7%) 등 주요 연기금에 비해 저조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현직들은 2017년 전주로 이전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양질의 투자처를 발굴하려면 시장과 쉼 없이 소통해야 하는데 지리적인 한계로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을 퇴사한 B 씨(42)는 “해외 금융사 사이에서 ‘NPS(국민연금의 영어 약어) 패싱’이란 말이 돌기도 했다”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에 국민연금은 더 이상 금융사들의 최우선 고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이 결여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위원회는 총 20명인데 이 중 노동조합·사용자 대표, 지역 가입자 대표 등 정부 측 인사만 30%(6명)다. 정부 입김에 취약한 데다 자산 운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큰 것이다. 전문성이 뛰어난 운용역들은 국민연금을 계속해서 떠나고 있다. 국민연금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사이 퇴사한 운용역은 137명이었다. 해마다 30명 가까운 인력이 이탈한 셈이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전 세계 연기금들이 대체투자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만큼 운용 조직을 서울로 복귀시켜 입지 매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민간 운용사들도 존재감 미미
민간 자산운용사들의 성장도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풍부한 인력과 자금을 무기로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반면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한국의 금융사들은 아직 국내 경쟁에 머물고 있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다.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 싱킹 어헤드 인스티튜트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500대 자산운용사’에 국내 운용사 9곳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0대 운용사에는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자산운용이 2021년 말 기준 운용자산 2521억 달러로 103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08위였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규모에 비해 자본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데다 투자금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예·적금 상품에 몰려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금융사들이 다양한 해외 투자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탓도 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운용사를 대형화하는 한편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랙록과 같은 글로벌 운용사들은 수십 차례에 걸친 M&A로 몸집을 불렸다”며 “M&A에 인센티브를 주는 지원으로 글로벌 30위권 운용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우석 기자, 박민우 기자
해외 금융사 ‘테크기업’ 변신… 국내선 이자장사 의존
[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JP모건 최근 스타트업 6곳 인수
국내銀 총이익중 이자이익 94%
국내 은행권은 예·적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인 ‘이자 마진’에 수익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의 총이익(이자이익+비이자이익)은 59조300억 원이었고 이 중 이자이익은 94.2%에 달했다. 전년 말(86.8%)에 비해 그 비중이 더 높아졌다. 대다수의 은행이 ‘비이자수익을 높여 은행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아직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이런 국내 은행의 모습은 애플, 월마트 등 핀테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다양한 전략을 모색 중인 글로벌 은행과 상반된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수차례의 인수합병(M&A)을 거쳐 ‘테크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CNBC방송에 따르면 JP모건은 2020년 이후 6곳의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지난해 클라우드 기반 결제업체 레노바이트(Renovite)를 사들인 데 이어 3월 중순에는 데이터 분석회사 아움니(Aumni)도 인수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각종 인터뷰와 주주 서한에서 “은행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발 위협과 어마어마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해 왔다.
월가의 또 다른 대형은행 골드만삭스는 애플과 손잡고 ‘애플카드’를 내놓은 데 이어 애플페이에 기반한 예금계좌 개설도 추진하며 디지털 시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미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사업 다각화에 초점을 맞춰 생존 전략을 짜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이 이자이익 중심으로 성장할 경우 경기에 민감한 수익구조를 갖게 된다”며 “그룹 차원에서 M&A, 전략적 제휴 등으로 비은행 자회사 역량을 강화하고 은행과의 협력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우석 기자, 뉴욕=김현수 특파원
한국 금융사 CEO교체때마다 관치 논란… 美월가선 수년간 후계훈련 리더십 키워
[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국내 금융지주 뚜렷한 대주주 없어
정치권 외풍-낙하산 논란 반복
대부분의 한국 금융지주사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 특성상 정권 교체 때마다 정치적 외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후보에 대한 ‘낙하산’ 시비가 반복되고 주요 경영 판단이 금융 당국의 입김에 휘둘리기도 한다. 반면 해외 주요국의 금융사들은 철저한 검증을 통한 후계 양성 시스템으로 지배구조 투명성을 확보해 금융사 CEO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초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은 관치 논란의 대표적 사례다.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를 받은 손 전 회장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당국에선 언론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퇴진을 압박했다. 작년 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례적으로 주요 금융지주사 이사회 의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면서 금융사 CEO 선임에 관해 당국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런 논란은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금융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신한·KB국민·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는 모두 주주가 분산돼 마땅한 주인이 없고, 금융지주 회장이 사실상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셀프 연임’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 차기 회장 내정 과정이 불과 몇 달 만에 진행되는 점도 선임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부추겼다.
한국 금융사와 달리 미국 월가 이사회는 CEO 검증 절차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인다. ‘후계 계획’ 업무를 통해 CEO 후보군을 꾸준히 주요 요직에 앉혀 수년간 훈련시키는 것이다.
씨티그룹은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을 최소 승계 1년 전에 확정한다. 숏리스트에 포함된 후보들에게 다양한 계열사와 보직을 두루 경험하게 하면서 자질을 평가한다. 2020년 씨티그룹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선임된 제인 프레이저 CEO도 선임 1년 전부터 ‘2인자’ 자리에 올라 훈련과 검증을 받아 왔다. 골드만삭스도 이사회에서 2018년 데이비드 솔로몬 CEO를 선임하기 전 2년 동안 그를 라이벌인 하비 슈워츠와 함께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해 경쟁시키기도 했다.
월가의 승계 과정에서 이사회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씨티그룹의 경우 이사회 내 상설기구인 지배구조위원회가 잠재적 CEO 후보군 물색부터 선임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은행 이사회가 CEO 등의 경영 승계 계획을 마련하고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윤명진 기자, 뉴욕=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