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적벽강의 비밀을 풀어 보세요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충남 금산군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
건축가에서 마을 대표로 변신한 사연
“뭐야!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딱 3분만 기다려 봐!”
함께 동행한 일행이 투덜거린다. 진짜 숨어 있는 명소를 소개해 준다는 제안에 쫓아 왔는데 갑자기 음습한 언덕길을 넘어가니 말이 많아진다. 3분 후면 신세계가 열린다고 호언했다.
언덕을 넘었다. 내리막길로 시원한 강이 보인다. 오른편 높은 산이 직벽으로 서 있다. 푸른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수면에는 절벽이 데칼코마니처럼 투영된다.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이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 전경 /사진=김성주
'적벽강 비밀의 섬'은 마을 이름이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일대를 아우르는 별칭이다. 예전부터 오지로 속해서 강을 두 번 건너지 않으면 오가지를 못하는 마을이다. 금산군이지만 정작 무주군에서 직접 연결되는 도로가 없다. 오히려 무주군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적벽강 비밀의 섬'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몇해전 어느 방송국 팀이 마을을 촬영하다가 마을이 가지고 있는 비경과 생태 자원에 반해 이름을 붙여서이다.
이름 그대로 적벽강을 끼고 있는 비밀스러운 마을이다. 적벽강은 금강의 또 다른 명칭으로 무주읍과 금산을 통과하는 지점의 물줄기를 말한다. 적벽은 바위가 붉어서 붙여졌다. 무주읍에서 내도리로 들어가 강변길을 끼고 가다가 염재(鹽岾)를 넘어 들어서면 마을이 펼쳐진다.
강변의 전망 좋은 터라고만 하기에는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을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저기에 보물들이 숨어 있다. 강과 습지와 늪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을 안의 ‘장자늪’은 조선 중기의 화가 ‘최북’이 풍경에 매료되어 죽게 되면 이곳이라고 선언한 곳이다. 60년대 만들어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쌀’을 촬영하였다. 언덕 너머 둠벙(웅덩이)은 이름이 ‘오누이 둠벙’이다. 오누이의 아름다운 사연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들어 보니 무지막지한 19금이다. 차마 지면에 실을 수 없는 내용이니 독자들은 알아서 검색하기 바란다.
진짜 비밀은 생태 자원에 있다. 포유류, 식물, 곤충, 파충류 등의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물에 무수한 물고기가 살고, 물고기를 노리는 새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초가을에는 마을 강변길이 반딧불 가로로 변한다. 늦반디가 깨어나 요정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는다. 무주 반딧불 축제 장소보다 마을 길이 더 핫하다.
전망좋은 언덕에 ‘지코센터’가 있다. 지코센터는 마을 회관이자 생태 안내센터이자 펜션이자 식당이다. 복층으로 된 7개의 객실이 주말마다 예약이 차 있고 여름방학 기간에는 매일 매일 숙박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전망좋은 언덕에 ‘지코센터’가 있다. 지코센터는 마을 회관이자 생태 안내센터이자 펜션이자 식당이다. 복층으로 된 7개의 객실이 주말마다 예약이 차 있고 여름방학 기간에는 매일 매일 숙박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김성주
이 마을을 이인성 대표(59)가 지키고 있다. 그는 고향이 제천이다. 젊은 시절 건축 사업을 대전에서 하였다. 지금은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도시에서 귀농인이 마을의 리더이다. 마을의 공익 사업과 수익 사업을 추진하고, 마을 전체를 생태 공원으로 지정하는 생태 보전 사업을 맡고 있다. 또 지코 센터를 담당하여 숙박 손님을 치르고 객실 청소를 하고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농어촌공사에서 의뢰한 ‘맞춤형 마을 자문 사업’에 참여하면서 '적벽강 비밀의 섬'을 맡게 되어 방문하게 되었다. 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고 홍보 마케팅을 도와주는 일이다. 봄부터 마을을 방문하고 분석했다. 마을의 숨은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연고도 없는 도시 사업가가 마을 대표로 변신하고,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얻었는지 궁금하였다.
이인성 대표는 부인인 박미현 씨와 20년 전에 마을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목조 주택 전문가인 이 대표는 지인이 전원주택 부지를 소개해달라고 하여 이리저리 답사를 하다가 방우리라는 곳이 명당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다가 오히려 본인이 매료되어 정착을 준비하게 되었단다. 마침 큰 수술을 하여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이참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휴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 짓는 것은 선수이니 금방 짓고 눌러 있으니 마을의 숨겨진 비밀이 보이더란다.
도시에서 사업하는 것보다 마을에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고 고백한다. 몸을 추스르던 때라 먹는 것과 쉬는 것에 집중하였더니 치유가 되더란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어났다.
용담댐이 수문을 여는 바람에 강물이 불어나 마을이 잠겼다. 길이 무너지고 논과 밭이 쓸려 나갔다. 당시 폭우가 내려 급하게 수위 조절하느라 수문을 열었던 모양이다. 피해가 무지막지해졌다. 방우리뿐만 아니라 진안, 무주, 금산 지역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이인성 대표가 앞서서 나섰다. 피해 복구를 위한 작업에 매달렸다.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당해도 어떻게 보상받고 대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섰다고 한다. 목소리를 크게 좀 냈더니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한다. 목소리 크다고 일이 되나. 그가 서류 작업을 잘 처리하고 관련 기관을 쫓아다니고 피해 보상을 조리있게 설득했으니 된 것이다.
이 마을을 이인성 대표(59)가 지키고 있다. 그는 고향이 제천이다. 젊은 시절 건축 사업을 대전에서 하였다. 지금은 '적벽강 비밀의 섬' 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도시에서 귀농인이 마을의 리더이다. /사진=김성주
그 이후로 마을에서 그를 믿고 마을 사업 추진에 대한 권한을 주었다. 그도 마을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마을을 지키는 일이 나를 지키는 것이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부인도 적극 찬성하여 사무장 역할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개인적 영역으로만 한정하여 넉넉한 농지에서 텃밭 일구고 예쁜 주택에서 사는 것으로 인식한다. 또한 귀농귀촌을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하여 개인의 활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일과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다.
이인성 대표는 귀농귀촌 생활을 마을의 가치와 환경 보전에 중점을 두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기에 오늘도 수려한 적벽강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출처 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