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다시 수리산역. 금요일이라 한산하다. 김경자여사가 무거운 떡보따리를 낑낑
거리며 들고 온다. 서방님이 서해로 낚시하러 가버려 혼자 오면서도 대원들 아침
거리는 꼭 챙겨오는 정성이 갸륵하다. 간식으로 풋대추도 나눠주는데 임종홍님이
이렇게 단 대추는 생전 처음 먹어본다 한다. 임총장은 1년에 한 번 모이는 낚시
모임에 몇 해 빠졌더니 이번에도 빠지면 회장시킨다 해서 할수없이 가셨단다.
하도 감투 쓴 곳이 많으니 회장시킨다는 협박이 먹히게도 생겼다. 그 새를 못 참아
아침부터 마나님한테 전화해 두 양반이 콧소리를 내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양이
신혼부부 저리가라다. 40년 넘게 산 부부가 아직도 그렇게 죽고못사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배정운 회장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모두들 반가워하는데 산악회에 동참하고 싶다는
소망을 간곡하게 카페에 올리셨던 최택만님은 안 나타나서 의아해한다. 김회장은
무릎이 아파 근처에서 산책이나 하다 하산 모임에만 참석하시겠다면서 장변호사님
한테 “아빠, 말 많이 하지 말고 뒤돌아 보지마세요” 애교가 가득 담긴 작별인사를
한다.
9시 15분, 수리산역 출발. 철쭉동산을 거쳐 정상인 太乙峯에 올랐다 산본역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코스모스꽃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야트막한 동산을 하나 넘으
면서 어릴 때 시골서 자란 장변호사님이 길가 밭에 심어놓은 콩, 팥, 호박, 토란을
일일이 가르쳐준다. 대기에 가을 기운이 완연하고 완만한 흙길의 등산로는 편안
하다. 上然寺 앞에서 기자가 화장실에 들렀다 가려고 절 마당으로 들어섰다 화장
실을 못 찾아 그냥 앞서 간 일행과 합류했는데 한참 가다보니 통신병이 안 보인다.
상연사에서 노기자 기다리는 것 같더라는 젬마보이의 말에 김고문이 다시
상연사로 내려간다. 김고문과 함께 올라온 통신병에게 일행이 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해서 사단을 내느냐 놀려댄다.
마나님의 혹독한(?) 언론탄압에 시달리다 모처럼 언론자유를 만끽하게 된 장변호사
님이 소송과 관련한 황당한 얘기와 대한민국 가족법의 모순점 등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태을봉 아래 600m 거리의 깔딱고개를 언제 올랐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모두 ‘張辯해방구’ 탄생을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12시, 태을봉에서 기념사진 찍고
피크닉 테이블에 둘러 앉아 점심도 먹는다. 김경자여사의 점심보따리를 대신 지고
올라와준 보답으로 화려한 한정식상을 받은 현총무의 입이 함박만 해진다. 아침에
마나님 드시라고 불고기까지 구워놓고 나왔다는 애처가가 정작 자기 점심은 다른
아줌마한테 얻어먹는 아이러니! 12시 30분, 하산 시작. 산본역까지 1시간이면 충분
하다.
젬마보이가 하도 웃겨 하산길도 순식간이다. 젬마여사의 대여섯살 후배가 혼자
됐는데 젬마보이가 자기 친구들 소개해주겠다 했더니 후배 말이 그런 할아버지들
데리고 뭐하냐 그랬다는 것이다. “날더러 할아버지라니 기분 나빠 못 살겠다.”
젬마보이가 아직도 화를 못 삭여 씩씩거린다. 1시 30분, 궁내동. 4시간 넘는 산행
을 하고 나니 다리가 뻐근하다. 오이도 두 정거장 전에 신길온천이란 역이 있던데
가서 온천하고 회 먹으러 가자. 수리산역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회장을
태우고 가다 신길온천에서 내린다. 역무원에게 온천이 어디 있느냐 물으니
무슨 온천? 한다. 신길온천에는 온천이 없다. 그럼 역이름을 바꾸던지 했어야지
이거 사기 아냐. 고발해야겠다.
할수없이 다음 정거장인 정왕역에 내린다. 시화공단 바로 옆이라 시가지가 번화하다.
멀리 보이는 해수탕 간판을 바라보고 걷는다. 건널목에 ‘남성수술’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있다. 현총무가 저게 뭐냐고 묻는다. 임한석고문이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니 현총무 왈, 아, 불량무기를 우량무기로 만들어 주는 거구나 해서 모두
한바탕 웃는다. 지난번 오이도역 앞에서 명함 나눠준 독도횟집이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한 기억이 나는데 아무도 전화번호를 못 외운다. 통신병이 그때 명함 챙긴 강영구님
한테 전화로 물어보니 용케 아직 명함을 보관하고 있다. 전화 걸어 1시간 후 목욕탕
앞에 차 대기시키고 느긋하게 목욕한다.
오이도 가는 차 안에서 김고문이 남탕에는 정력탕이란 게 있었다는 말을 한다.
어떻더냐 물으니 깜짝 놀랄 정도로 물이 차더라는 얘기만 한다. 효과는? 그건 오늘
밤 돼봐야 안단다. 창밖으로 지난번 올랐던 옥구봉이 보인다.
해발 100m도 안 되는 저기 올라가고 옥구봉 등산 운운 떠들었어?(배회장)
원래 이 사람들 과장이 심하잖아.(김구라)
그 과장 누구한테 배운 건데? (김윤기)
오늘 회는 배회장이 쏘신다. 생선 고르기는 역시 임고문 담당. 이층 방에 올라가
서서히 물이 들어오고 있는 개펄을 바라보며 삶은 게와 광어회, 우럭회, 구운
전어로 포식한다. 주중이라 그런지 쯔끼다시도 푸짐하다. 현총무는 전어구이를
세 마리나 먹었다며 좋아하고 한영구님은 또 산악회 칭찬을 시작한다. 이제 산악
회원이 됐는데 그렇게 자꾸 자화자찬하면 남들이 웃습니다. 그래도 계속한다.
우선 산악회원들의 유머감각이 특히 탁월하단다. 다른 모임에 가면 유머가 주로
다른 데서 퍼온 것인데 반해 산악회원들 유머는 fundamental 이 다르단다.
게다가 한 사람이 시작하면 줄줄이 받아치기가 그치지 않아 전대원이 기쁨조다.
백두대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말씀까지 하니 이제 그야말로 골수
당원이 됐다.
매운탕까지 배를 두드리며 먹고 나자 김고문이 중대발표를 한다. 지난 봄 첫 茶會
때 약속한 달빛 다회를 10월 16일(금)에 개최한다. 이번에는 국립국악원 남도창 팀
까지 초청해 더욱 격조 높은 다회가 될 것이다. 희망하시는 분은 노래나 一筆揮之도
환영한다. 단 일필휘지 하실 분은 지필묵을 준비해오시기 부탁한다. 우리 집이
2개동(재동과 가회동)에 걸쳐있을 만큼 넓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소 관계상 백두
대간 1회 이상 참가자에 한해 초대한다. 그날이 보름이 아니라 그믐이어서 달빛은
크게 기대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어두워야 더 좋다(현총무).
알고보니 김고문의 칠순잔치를 겸하는 행사란다. 앞으로 칠순잔치하실 분들 걱정
좀 되겠다. 한영구님은 산악회 칭찬할 일 또 생겼네. 다회 참석 희망자는 미리
스케줄 체크 하십시오. 배회장이 나도 백두대간 한 번 참가했으니 자격 있네
하시자 박2대장이 이 참에 산행기 발간 때 1회 이상 참가자 명단에 배회장 이름
빠뜨린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그런데 귀가길 지하철에서 현총무가 김경자여사에게 한 이 말은 여기 옮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경자씨, 임총장 없어 오늘 혼자 자겠네요. 밤에 너무 외로우면 전화
하세요.”
근사한 저녁 사주신 배회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참가자(12명): 김경자, 김숭자(장원찬), 김윤기, 김종남, 박정수(노순옥), 배정운,
임종홍, 임한석, 한영구, 현해수 (노순옥 기록)
뱀다리: 박2대장이 하산회식자리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번째 금요일로
잡혀 있는 현행 산행 일정이 대중교통으로 산에 갈 때에는 불편하다는 것.
아침 러시아워에 붐비는 출근 인파와 경쟁하면서 버스, 전철로 출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직장나가느라고 바쁜데 백수가 하필이면 그런
시간에 등산백 짊어지고 비좁은 차 안을 헤매는 것이 남보기에도 민망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세버스로 갈 때에는 4금이 문제 없으나 대중교통으로 갈
때에는 4금 아닌 4토로 바꾸자는 얘기였다. 회원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첫댓글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사진을 열심히 찍는 것이었다. 산악회 참여는 지난번 밝힌바 있지만, 오늘 깨달은 것은 산악회에 나와 회원들이 주고받는 유머가 넘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땀 흘려 등산하고, 목욕탕에서 한 시간 가까이 목욕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니 정말 즐겁고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 이 4가지 요건이 충족 되는 날이 만약 매일 지속 되면 아마 빨리 가장 행복한 천당으로 갈 것이므로 2주에 한 번이 제격이다.
새로운 회원의 경이로운 탄생을 지켜보면서 악우들의 흐뭇함은 비길 데 없습니다. 브라보, 한영구!!!
나는 왔누나 온곳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나는 죽으리라 때도 모르면서,나는 떠나리라 갈곳도 모르면서,아!신비하도다 이 즐거운 삶.- 칼 야스퍼스
현공, 좋은시 감사힙니다.
10월 16일이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