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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득명(146기 자문위원)
오래 전부터 불교 이전에 인도 사상이 어떻게 발전되었고, 그 사상들이 불교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대륜스님이 “인도사상의 변천과 불교(1),(2)”
강의가 2.21. 오전, 오후에 걸쳐 있다는 걸 알았다.
수요일 대륜스님 법문 친견을 위해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 도착하였다.
옥불보전에 불교방송 TV녹화를 위해 이동식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여러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많은 보살님들이 대륜스님의 친견에 설레이는 마음을 갖고서
법당에 좌정하고 있었다.
청법가에 맞추어 대륜스님이 환한 미소를 가득 띄면서 사자좌에 오르시고 삼배 예와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정녕코 기다리던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던가,
1년 동안 수요 불교아카데미 수료하는 동안, 끊임없는 정진에 수고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소중한 인연에 대한 업, 그 업이 자동 쌓여 업식이 되고 그 업식이 좋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알게 모르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격려해주셨다.
불교 이전에 인도 종교에 대하여 알기 쉽게 원론적인 이야기만 언급하기로 하셨다.
유목민 아리아인이 인도에 침입하여 원주민 드라비다인의 전쟁에서 비교적 쉽게 승리하였으며,
정복민족으로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리아인들은 원주민을 노예화하였다.
그리고 수천년동안, 카스트 제도를 시행하면서 아리아인의 우월성이 지속되었으며, 또한
인도에서 신학의 발전은 아리아족이 맹목적으로 신을 믿지 않고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를 하는 민족성에 기인하였다.
인도의 종교의 역사는 자연신으로 부터 시작되고, 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의례가 특징이다.
아리안들은 다양한 신을 숭배했고 구복을 기원하는 상당한 단순한 형태였으며, 자연신에 받친
제물(양,소)들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고서, 태워서 연기를 내어 신에게 바치는데,이때 불의
강함을 인식하였는데,불의 신 아그니(Agni)였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하는 신은 태양신인데, 그러나 태양신은 절대적 권능이 없다는 것을
인도인들은 깨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24시간 동안 약히듸 약한 인간을 지켜주지 목하는 약점이 있고, 태양은 우주에 의하여
창조 되어진 것이므로 절대적 권능의 창조신 보다는 하위의 신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위슈와 카르만(visva - karman)
그들은 절대적 권능을 보유한 창조신을 갈망하게 되었고 드디어 제 1세대 창조신인 위슈와 카르만 (everything karma)을 탄생시킵니다.
창조신인 위슈와 카르만은 우주창조를 목수가 집을 만들듯이 뚝딱 뚝딱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창조신을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하지만, 인도인들은 위슈와 카르만이 우주라는 집을 만들 때 재료는
대체 어디서 가지고 왔으며 그 재료는 누가 가지고 왔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만으로는 창조의 재료와 공간이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이 생기고
문제가 있는 신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인도인들은 확실히 설명이 되는 다른
신을 찾게 됩니다.
프라자 파티(Praja - Pati)
이렇게 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만은 재료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도태가 되고
제 2세대 창조주인 프라자 파티(생주신)가 등장하게 됩니다.
프라자 파티는 우주를 창조할 때 어머니가 자식을 낳듯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산과정에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멘의 창조의 재료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2세대 창조주에게 또 다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창조주가 우주를 낳았다면
그 창조주는 우주 안에 존재했느냐 우주 밖에 존재했느냐의 공간적인 문제점을 도출해내기 시작합니다.
우주를 낳아야 비로소 우주 안이라는 공간이 생기고 그 우주의 밖이 생기는 법인데 안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밖이라는 존재가 가능하냐는 말입니다. 밖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밖은 대체 누가
창조 했으며 그 밖의 밖은 또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합니다.
즉, 창조신인 프라자 파티와 우주를 포함해서 그것을 낳은 그 무엇이 또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인들은 새로운 절대적인 창조신을 찾게되고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절대적 창조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브라흐만(Brahman)
그것이 바로 브라만 또는 브라흐만(Brahman)이라 불리우는 창조신이 제 3세대 창조주로 인도종교의
역사에 장하게 됩니다.
태초에 브라흐만은 안과 바깥이 없도록 스스로 고무풍선을 불듯 불어나서 지,수,화,풍을 만들고
서로가 뭉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물질의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생겨난 모든 물질(해, 별, 달, 강, 사람 등)은 물질적 형태로서의 조각과 같아서 아직까지
정신 내지 생명은 없는 상태의 오로지 물질적 형태로서 존재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기가 만든 세상의 구조물의 숫자 만큼 자기 자신을 쪼게어서 그 구조물 안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이렇게 쪼게어진 브라흐만을 Jiva-Atman(지바아트만)이라고 합니다.
지바의 뜻은 생명, 영혼이고 아트만은 자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바아트만이란 생명력을 지닌 개체자아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여기서 브라흐만의 등장으로 재료의 문제는 지,수,화,풍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브라흐만은 스스로 불어서 우주를 창조했으니 브라흐만은 우주 밖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브라흐만 스스로 자기가 만든 우주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스스로 우주가 되었으므로
안과 밖의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태초의 브라흐만과 나의 아트만(자아)이 동일 하다는 그 유명한 범아일여사상
(梵我一如思想)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운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합니다.도구 등 무생물에게 생명력이 있는 브라흐만(지바아트만)이 존재한다면 왜 외부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고 고정된 채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그런 물질에는 지바아트만이 기나긴 잠에
빠져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브라흐만 신에게도 몇가지 오류가 있음을 인도인들은 또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로 무지의 문제입니다.브라흐만이 쪼개어져서 지바아트만으로 나에게 들어왔는데 나는
왜 내가 브라흐만임을 모르는가? 금은 쪼개어져도 금인데 말입니다.
두번째로 고통의 문제입니다.나는 왜 죽음을 비롯한 괴로움을 느껴야되는가?
세번째로 죄악의 문제입니다. 나는 왜 죄를 짓는가?
이 세가지 지적은 인도인 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든 종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들 입니다.
창조유일신은 전지전능 지선해야 하는데 죄악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유신론이 쇠퇴하고 신이
없는 세계 유물론이 탄생한다.
여기서 인도인들은 3천년전에 신의 모순과 한계를 발견한 후에 신을 포기하게 되고 상업이
발달한 도시를 중심으로 무신론적인 사상인 사문사상(Sramanism)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러 사문의 일원으로 불교의 석가모니, 자이나교의 마하비라 등 슈퍼스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기원전 5, 6세기의 인도 사회는 무사,귀족계급인 크샤트리아의 권위가 브라만보다 격상되었으며
상공업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 속에 장자라 불리우는 바이샤 상인계급이 급부상 합니다.
왕족과 장자들의 지지를 받던 사문(沙門)들의 등장은 그때까지 유일한 종교이며 철학으로써
인도사회를 지배해왔던 전통 브라만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중국의 춘추시대와 버금가는 새롭고
다양하며 혁신적인 종교와 철학사상이 등장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 사문들은 출가하여 고행을 실천하며 다양하고 새로운 종교사상을 펼 수 있는 자유로운
사상풍토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사문사상을 대표적으로 몇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로카이카(Lokayata) 사상
이들은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사람의 인생은 지,수,화,풍 4대의 집합과 흩어짐에 불과하며, 원소들이 이합집산 하면서 이루어진
물질덩어리 뿐이라고 이는 깨어지고 없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도 죽으면 지,수,화,풍으로 흩어지는
존재일뿐. 죽기전에 잘 먹고 잘 노는 현실적 쾌락을 즐기라고 가르칩니다. 유물론적 쾌락주의자
아지카 캐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무인론적 감각론자 파쿠다 캇차야나(pakucha Kaccayana),
도덕 부정론자 푸라나 카사파(purana kassapa) 가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아지비카(Ajivika) 사상.
사람이 막 살려고 하면서도 내가 잘 살려는 감성이 되살아난다. 감성이 되살아 정신적인 면을
알게된다. 물질인 지,수,화,풍과 같이 비물질인 즐거움과 괴로움이란 정신적인 요소도 존재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지수화풍과 더불어 흩어지지만 이것들이 다시 모이면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고 이들 중 고와 락의 비율에 따라 명과 결합하여 귀족, 또는 노예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은 이미 과거에 결정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상당한 영향을 가진 사상가로
숙명적 자연론자 막칼라 고살라(Makkhali Gosala)가 있다.
산자야 벨라디풋다 (Sanjaya Belatthiputta)의 회의론
산자야는 내세의 유무를 “내가 만일 내세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세가 있다고 대답할것이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그 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제각기 제대로의 소신대로
말하면 그것이 곧 진리라고 한다. 그는 절대적 숙명론자 같다. 특히 우리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개인의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것이다.진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일종의 회의론, 불가지론을 주장하였다. 곧 궁극적인 진리란 알기가 어렵고
표현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후에 붓다의 뛰어난 제자가
되는사리불과 목련자도 처음에는 산자야의 제자였다고 한다.
자이나교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īva)과 물질(ajīva, rūpa)의 이원론과 극단적인 고행과 불상생을 주장한
니간타 나타풋타의 교조이다.
물질인 몸(푸드갈라, Pudgala)에도 의지적 활동성이 있다고 합니다.
영혼(지바, Jiva)의 의지적 활동성은 상향성을 띄고있고 푸드갈라(몸)의 의지적 활동성은 하향성을
띄고있다고 말합니다.
영혼과 몸이 결합하면 각자의 습성 때문에 영혼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몸은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등 서로 대립적 활동관계에 놓이고 서로의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업이라고한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다른 푸드갈라(몸)와 결합하는 지바(영혼)는 수 없는 전생 동안 결합했던 자이나교의
수행방법은 엄격한데, 예를 들면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논이나 밭을 갈때 작은 곤충이나 작은 벌레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게됩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고 현재 인도의 자본은 90% 이상 거의 자이나교도들이
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교조 마하비라도 벗은 몸으로 걸식을 하다가 조롱과 돌팔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답니다.
이들은 공의파라고 불리웠으며 불교에서는 그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대단한 사상인 자이나교도 모순점은 존재합니다.
그들이 해탈을 하기 위해 고행하는 것도 전생의 숙업에 의해 결정된것인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현생의 모든것은 전생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그들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나타나는 것도 전생에 결정된 업이 나타낸 결과라면 자유로운 의지가 아니다라는
반문도 생깁니다.
2.21 (수) 오전, 그리고 저녁에 걸쳐 법문하신 “인도사상의 변천과 불교 (1),(2)”의 강의 내용을
2차례에 걸쳐 글로 적고자 합니다. 법문 내용을 녹취하지 않고 듣고 필기한 내용만으로 스님의 말씀을
게재하였습니다. 고대 인도 사상의 심오한 내용을 왜곡하거나 빠드리지 않았나 하고 걱정이 앞서지만,
너무나 유익하고 좋은 말씀으로 강의 한 내용들이라서 게재 하오니 이점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라며,
혹시 틀린 내용은 통보하여 주시면 정정 내지 수정하겠습니다.
첫댓글 관세음보살 ()()()
수고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