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업(業)의 불길
내가 기회 있을 때마다 종종 하는 이야기인데,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혜공(惠空) 스님을 내가 모시고 있을 때 일이다.
그 절에 머슴살이하는 사람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집에 두어 봐야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으니까,
절에 데려다 놓고 잔심부름이나 시키고 군불도 좀 때주고 하면서
밥 한 그릇 더 얻어다가 나누어 먹이고 그런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주 박복(薄福)한 아이여서
절에 재나 불공이 들어 떡이나 뭐 먹을 게 생기면 꼭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 참말인가 의심이 돼서 큰 불공이 들었을 때
그놈 몫을 내가 떡이랑 과자를 아무도 모르게 꼭 숨겨 놓았다.
그런데 과연 그놈이 그만 배가 아파서 못 일어난다.
다음날 누가 와서 아이가 배가 아파서 물도 못 먹으니,
누구든지 그 아이 몫으로 떡 받아 놓은 게 없느냐는 것이다.
그래 숨겨 놨던 떡과 과자를 내놓고 여럿이 하는 말이
그대로 두면 죽지도 않고 앓기만 하니 우리가 나누어 먹자고 해서
할 수 없이 그 떡과 과자를 다 먹고 나니 거짓말같이 싹 일어났다.
그때 절에 불공 온 한 신도가 광주 시내에 부자인데
장가를 들어 첫아들을 낳았다고 애 보는 사람 구한다고 하여 그 애를 추천하였다.
얼굴은 괜찮고 해서 부잣집 애 보는 심부름꾼으로 월급도 많이 받기로 하고 갔는데
보름 만에 자다 말고 밤중에 도망을 왔다.
그래서 모두가 「거기 있으면 대학도 다니고 너 팔자 고칠 텐데 왜 왔느냐.」고 물어보니
그 집에 이 애가 가고서부터 아들이 자꾸 아프다는 것이다.
부모가 여러 가지 약을 해도 잘 안 낫고 그래서 그 어머니가 걱정되니까 점을 치게 됐는데
이 집에 박복한 애가 하나 들어와서 그 아들이 자꾸 앓는 것이니 그 애를 내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밤에 내외간에 소근-소근 얘기하는 것을 듣고 부끄러워서 자다가 살그머니 도망쳤다는 것이다.
전생에 남 잘되는 것 미워하고 도둑질이나 하고 협잡이나 하고 그런 사람은
금생(今生)뿐 아니라 내생에도 부모덕도 없고 시집가도 남편 덕도 없고 장가가야 마누라 복도 없고
자식 낳아 봐야 모두 불효하고 명 짧고 박복한 아이만 내 앞에 태어나는데 그것은 하는 수 없다.
그러나 복만 짓고 나면 엎어지나 자빠지나 잘되니 큰돈 번 사람들은 꼭 운수가 있다.
마을 사람(세속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불교에서는 인과(因果)라 한다고 일소(一笑)하지만,
그러나 인과는 알고 보면 과학적인 내용이 다 있다.
운수니, 사주팔자니 하는 것도 들어맞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얼굴도 가령 정치가라든지 큰 사업가라든지 다 업보(業報)로 타고나는 운명이 있다.
누가 돈을 가져가도 그 사람 갚을 건가, 안 갚을 건가가 그 사람 얼굴에 다 나타난다.
볼 줄을 몰라서 그렇지 시간-시간 미래에 관한 관상이 얼굴에 나와 있다.
관상 잘하는 사람은 내일은 뭐가 되고 모래는 뭐가 되고 미래를 다 설명한다.
손금에도 거기 평생이 다 들어 있다.
정말 잘 보는 사람은 피 한 방울만 봐도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 평생을 알 수 있다.
더 잘 보면 전생도 알 수 있고 죽어 내생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수기예언(授記豫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수기(授記)를 주신다.
이를테면 제자에게 미리 예언하시는 것인데,
가령 갑이나 을은 금생(今生)에 죽으면 내생에는 어떤 집에 태어나고
아버지가 뭘 하고 형제간이 어떻고 장가가면 어떤 처녀한테 가고 시집가면 어떤 총각한테 간다.
그렇게 백천만겁 돌아다니며 도를 닦아 가지고 필경 성불하면 어떻게 한다는 것이다.
가령 실달 태자처럼 아버지는 정반왕이고 어머니는 마야부인이고,
유성출가(遊城出家)하여 도망해서 어느 산에 들어가 수도를 해서
몇 살에 네가 마음을 깨쳐 부처가 되겠다고 예언해 주시는 것이 수기(授記)다.
번뇌 망상 아무것도 생각 없는 무아지경에 들어서면 그것이 초차원의 세계인데,
너도나도 없고 나도 남도 아니면서 확실히 나이기는 나다. 그 지경에 가면 조금조금 알게 된다.
그러니 요새 도통(道通)했다 통령(通靈)했다 하는 건
모두 텅 빈 데 들어간 것을 가리키는데 거기도 백 천 가지 차원이 있다.
사차원의 영계(靈界)에 들어가서 점점 차원이 높을수록
자유가 많아지고 아는 게 많아지고 신통도 많아지고 참으로 근심 걱정 없고
의식주가 필요 없는 그리고 생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불보살의 차원에 들어간다.
이때가 되면 세상에 나와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해도 된다.
이렇게 복을 받든지 마음을 깨쳐 성현이 되는 것이 다 자기가 닦은 전생의 인과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우주에 가득 찬 보배를 보시한 그 사람이 복을 많이 받긴 받는데
그러나 그것도 부처님의 마음자리에서 보면 복이 많다는 소리는 작다는 소리가 된다.
크다는 소리는 작은 것을 상대해서 크다는 것이고 작은 거 제해 놓고 크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로 큰 게 아니고 작다는 소리다.
- 청담 스님 -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