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온다.
범재등 텃밭의 작물들이 기쁘겠다.
발을 적시며 건너가 비에 처진 대추나무를 묶어주다가 가지를 부러뜨린다.
며칠 전에 고추 두둑을 넘다가 다 자란 고춧대를 부러뜨렸다.
나의 농사는 이런 정도다.
바보는 직장의 일 때문에 나가고 나도 늦으막이 우산을 챙겨 차를 끌고 도양으로 간다.
갑장인 도양의 유선생이 자기가 자란 고향마을이라고 이장을 통해
36년생 어른 한분을 교섭해 두었다.
지난번에 혼자 봤던 관하마을 주차장에 내려 우산을 들고 그 분 집에 가니
순천에 산다는 딸이 들렀다 가는 중이고 변 어르신도 외출했다 막 오신 길이다.
마루에 앉아 조심스럽게 소개를 하고 질문을 드린다.
남자는 나 혼자여서 오히려 그 분은 날 보고 대답을 하신다.
20대 때 마을 이장도 하시고 활력있게 사셨다는 어르신은 이제 사람이 없으니
아무 일일 없다고 하신다.
회관에는 여자 셋만 모인다고 한다.
질문도 체계가 없고 우리가 바라는 마을의 변화(쇠락)에 대해서도 관점이 없다.
그래도 우리말을 성심껏 들어주시며 답해 주신다.
고관절이 아프시다는 부인도 거든다.
녹동가서 차 한잔 하자는 제안을 서로 바쁘다며 헤어진다.
늙으신 어르신의 삶과 마을의 이야기를 난 어떻게 정리해 갈까?
그냥 이 팀에서는 사진이나 찍고 들어주기만 하자.
실은 질문을 내가 가장 많이 한 듯하다.
여수 활동을 마치고 바쁘게 온 바보와 짐을 챙겨 조성으로 간다.
장모님이 병원에 계시어 위문 온 부산 형제는 고모네 이모네를 들러 늦게 오시는데
고기를 사 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