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라불교 초전지마을은 미완의
성지이다.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일까? 신라에 불법(佛法)의 씨앗이 최초로 떨어진 ‘모례(毛禮)의 집’은 역사적인 불교 성지이지만 퇴락한 채
가을 햇살에 잠겨 있다.
이차돈의 순교로 불국토를 이룬 신라에 불교를 영접한 첫 신도이자 해동불교의
첫 가람인 선산 도리사 건립비를 보시한 모례가 살던 부근이 신라불교초전지에 걸맞게 도량화 될 날은 언제쯤일까?
◇ 고 신라 땅의 첫
신도
신라불교 초전지의 주인공은 당연히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와서 불교를 전한
아도 화상과 토속 신앙에 젖어있던 고신라 땅에서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포교승을 숨겨주어 불법을 홍포할 수 있게 한 신도
‘모례’이다.
모례에 대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눌지왕 때에 묵호자(=아도화상)가 신라
일선군(선산) ‘모례 장자’의 집에 왔는데, ‘모례 장자’는 집에 굴을 만들어 편히 지내게 했다」고 쓰여 있다.
‘모례 장자’(毛禮 長者). ‘장자’는 큰 부자를 일컫는다. 모례는 당시
엄청난 규모(소 천마리 등)로 가축을 치는 부자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던지 불교전파를 위해 내려온 고구려 승 아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약관도 되지 않은 19세의 젊은 고구려 승려 아도와 선산의 토박이 부자
모례가 맺은 성속(聖俗)의 인연으로 신라 불교는 움트기 시작했다. 아도화상은 낮에는 모례의 집에서 가축치는 일을 돕고, 밤에는 지하 토굴에서
불법을 홍포했다.
◇ 아도의 어머니가 신라로
보내
모례가 아도화상을 통해 불가와 연을 맺은 것은 아도의 어머니 고도령
덕분이었다.
고도령은 그 시절, 이미 372년에 불교를 받아들였던 고구려 여성으로 그곳에
온 중국 사신 아굴마(위나라 사람)와 정을 맺어 아도를 낳았다.
아도는 다섯살에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출가했다. 총명한 아도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16세에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아버지의 나라로 떠났다.
중국에서 아버지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 문하에 들어간 아도는
3년간 불도를 더 닦은 뒤 고구려로 되돌아왔다.
고도령은 이번에는 아도를 신라로 보냈다.
“지금부터 3천 달(250 년)이 지나면 신라에 성스런 왕이 나타나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신라 땅에는 천경림(흥륜사) 삼천기(영흥사) 용궁 남쪽(황룡사) 용궁 북쪽(분황사) 신유림(천왕사) 사천미(영묘사) 등
일곱 군데 큰 가람터가 있다. 너는 그곳으로 가서 불법을 전해라.”
◇ 신라 첫 신도, 모례의
도리사 시주
승려가 된 아도를 미지의 나라 신라로 내려와서 인연을 따라 모례를 만났다.
낮에는 가축을 치고, 밤에는 설법하던 아도가 어느날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떠나면서 모례에게 말했다. “나를 만나려면, 칡순을 따라 오라.”
어느 엄동설한에 모례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남기고 떠난 아도화상을
그리워하는데 집에서 칡순이 돋아났다. 그 칡순을 따라가니 과연 아도화상이 거기 있었다.
지금 도리사가 있는 태조산 기슭이었다. 모례를 만난 아도화상은 망태기를
내어놓고 시주를 권했다. 반갑게 승낙한 아도가 집으로 내려와 망태기에 곡식을 부었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망태기는 2말을 다 넣고, 2섬을
들이부어도 차지 않았다. 그때 모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가진 재산을 다 시주하여 아도화상이 머무는 태조산 기슭에 절을 지으라고
시주했는데, 그게 지금의 도리사다.
◇ 탐욕 버려 신라불교의
기초 놓다
반야경은 ‘보시란 사(捨)’라고 가르치고 있다.
흔히들 보시란 불사 때 내는 기부금을 떠올리지만 보시의 본래 의미는 불사에
대한 사례(財施)에 한정되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비바람에서도 끄지지 않은 가난한 여인의 빈자일등(貧者一燈)처럼 보시를
하는 그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
신라불교 초전지의 주인공 모례의 보시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성서에도 나와있지만 대개 부자들은 재물쌓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일선군의 부자 모례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끊고, 가진 재산을 부처님 전에 바치는 보시를 행함으로써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가 불교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주고도 뽐내지 않고, 받고도 비굴하지 않고, 주고 받은 것에 얽매이지 않은
모례와 아도의 삼륜청정(三輪淸淨)의 정신이 살아있는 신라불교 초전지마을이 성지로 깔끔하게 마무리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초전지마을을 찾아가는 길
신라불교 천년을 품에 안은 신라불교초전지마을(위원장
김경환, 문의 054-472-5318)은 구미 끝 마을로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구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곳(25번
국도)이다.
옛날 소를 방목하면 3개 군, 면의 풀을 모두 뜯어먹는다고할 정도로 가깝고
청화산과 냉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이 흘러간다
가는 길(그림 참조)은 경부고속도로 구미IC에서 내려서 위회전하자말자
좌회전하여 선산방면 국도를 타고 고아쪽으로 20여분 달려 오른쪽으로 에덴아파트를 지나 감천교를 지나 갈림길에서 상주방면(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상주 방면으로 5분쯤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도개면 표지판이 보이고, 거기서
일선교를 지나고 고가도로를 지나서 군위 소보쪽으로 300미터 와서 왼쪽 마을로 들어가면 된다.
중앙고속도로로는 구미,가산IC에서 내려 오른쪽(안동,상주방면)으로 나와
300m 앞에 상주방면으로 빠지는 길을 따라 상주방면으로 30분(25km) 달린다. 중간에 철새도래지 해평들판을 보고, 도리사와 낙산고분군,
일선고택 문화재단지를 지나자말자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아도화상은 신자가 늘어나면서 사찰 건립지를 찾던 중 냉산 눈속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핀 것을 보고 절을
지어 도리사라 했고, 금오산과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리사 서대에 올라 저기에 절을 지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직지사가
들어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