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방우(雪中訪友)
가장 아름다운 우정 하나, 설중방우(雪中訪友)

조영석 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
가장 아름다운 우정 하나, 설중방우(雪中訪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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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중방우'의 출처, 왕휘지의 흥(興)
'설중방우'라는 사자성어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두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한 사람은 왕휘지(王徽之·336∼386)로 서예가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이며 그 역시 저명한 서예가였다. 또 다른 사람은 왕휘지의 벗 대규(戴逵·326∼396)로 금을 잘 연주하고 그림도 그렸으며 박학다식했는데 한사코 출사하지 않았다. 송대에 간행된 '세설신어'에 그들의 설중방우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왕휘지가 산음(지금의 저장성 사오싱·紹興)에 머물 때였다. 밤에 큰 눈이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왕휘지가 술 한 잔에 시 한 수 노래하노라니, 문득 대규가 생각났다. 대규는 섬계(지금의 저장성 사오저우·紹州)에 살고 있었다. 왕휘지는 작은 배로 밤새 가서 대규의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왕휘지는 대규 집 문 앞에서 배를 돌려 왔다.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니, 그의 답이 이러했다.
吾本乘興而來, 興盡而返. 何必見戴
오본승흥이래, 흥진이반. 하필견대
내가 원래 흥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노라.
어찌 반드시 대규를 보아야 하겠는가
눈 내리는 날이면 옛 문사들이 섬계의 흥취를 반드시 떠올렸고 그들의 설중방우를 기억하며 시문을 거듭 지었다. '설야방대도(雪夜訪戴圖·눈 내린 밤 대규를 찾아가다)'라는 그림 또한 중국과 한국에서 거듭 그려졌다. 중국에 전하는 그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조선에서도 16세기 초 정수강이, 17세기 초 신흠이 모두 '설야방대도'를 감상했노라고 제화시를 남겼다.
흥에 겨워 밤새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다는 이 이야기는 무엇을 뜻할까. 그들의 시절은 위진남북조시대라, 한나라 이후의 정치적 혼란기였다. 예술과 개인적 자유에의 각성이 일던 시절이다. 내 흥대로 하노라니 그것이 가치라는 풍조가 엿보인다. 조선의 학자들은 유학자의 체통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 선생 이이는 '설중방우'의 뜻을 묻는 과거시험에서 한때의 즐거움일 뿐이라고 일축해 답했고, 그의 답안은 최고로 뽑혔다. 그림으로 감상한 신흠은 말했다. '정신으로 사귐이라 형체를 잊은 것이라.' 그 후 신위의 말도 비슷했다. '좋은 벗은 마음에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얼굴을 봐야겠는가.' 이러한 조선 선비들의 반응 속에서는 흥겨운 공감보다는 의미에 대한 수양적 성찰태도가 드러난다.
생각해 보라. 보고 싶어 밤새 갔다 보지 않고 되돌아오다니. 범상치 않은 화두다. 한편 흥도 좋고 내면도 좋지만 어이없음도 사실이다. 차라리 매천 선생 황현이 툭 트듯 읊조린 시구가 정곡을 찌르는 양 시원하다. '섬곡에서 배 돌린 일은 너무 썰렁한 이야기라네!' 왕휘지에게 왜 그냥 돌아가느냐 다그친 사람은 밤새 노를 저어 갔던 그의 시종이 아니었을까.

이인문 설중방우(雪中訪友)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송유수첩' 중에 '설중방우'가 실려 있다. 고송유수(古松流水)는 화가 이인문(1745∼1821)의 호다. 이인문의 '설중방우'를 보면, 눈 쌓인 날 두 선비가 방안에 마주 앉았다. 한 사람은 주인이고 한 사람은 방문객이다. 방문한 벗은 흥이 다하지 않아 돌아가지 않은 것일까. 두 벗이 만났으니 그림을 보는 이도 흡족할 뿐이다.
조선초기 정도전의 시 '설중방우'가 이 그림 같았다. 정도전은 눈 속에 친구 한 씨를 찾아갔다. '문 앞에 당도해도 눈이 아직 개지 않았네!' 왕휘지의 흥은 집 앞에서 끝났지만 정도전의 흥은 계속 내리는 눈과 함께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니 흥으로 치자면 정도전이 왕휘지보다 낫다고 자부해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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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 속에 벗을 찾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두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은 왕휘지(王徽之 336 -386)인데 중국 최고 서예가, 또 다른 사람은 그의 벗 대규(戴逵 326-396)로 거문고를 잘 연주하고 그림에 뛰어난 문인화가다.
왕휘지가 산음(저장성 사오싱)에 머물 때였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밤 마음이 심란해진 그는 술을 내오라 해 큰 잔에 가득 따라 붓고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는데, 문득 섬계에 사는 벗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졌다. 섬계는 중국 저장성에 있는 조아강 상류에 있는 마을로 산음과는 100리가 떨어진 먼 길일 뿐만 아니라 배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험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휘지는 친구를 보고 싶은 벅찬 마음을 이기지 못해 눈이 펄펄 내리는 한밤중에 다짜고짜 작은 배를 띄워 밤새 섬계로 배를 저어 갔다.
아침에야 겨우 배가 대규의 집 앞에 이르러 반갑게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왕휘지는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르지 않고 그곳에서 발길을 되돌려 버렸다.
왕휘지(王徽之 336 -386)
吾本乘興而來, 興盡而返 何必見戴,
오본승흥이래 흥진이반 하필견대
“내가 원래 흥을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온 것이니 어찌 꼭 벗 대규를 볼 필요가 있겠소”
왕휘지는 또 한나절을 배를 저어 집으로 돌아왔다. 범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왕휘지의 설중방우야말로 만남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만남이다. 대규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한밤중에 자기를 찾아와 줄 친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결국 두 친구가 추구한 것은 내면의 진심과 자유, 그리고 진정한 소통이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조선의 옛 문사들도 설중방우의 흥취를 떠올리면서 시문을 짓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 중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고 설계한 삼봉 정도전의 ‘설중방우(雪中訪友)’가 유명하다.
눈 속에 말을 타고 한생을 찾아가니 (雪中騎馬訪韓生, 설중기마방한생)
문 앞에 당도해도 눈은 아직 개질 않네 (直到門前尙未晴, 직도문전상미청)
돌아가는 길에도 남은 흥을 타고 가리니 (返路也乘餘興去, 반로야승여흥거)
풍류에 굳이 섬계의 옛일을 들먹이겠는가 (風流何必剡溪行, 풍류하필섬계행)
누구나 눈이 오면 술도 한잔하고 쌓였던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땐 훌쩍 찾아가 회포를 푸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일상이다.
그런데 그냥 보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멀리서 친구나 연인을 바라보면 더 애틋한 맛이 있지 않을까.
만약 왕휘지가 눈 내리는 밤 100리 길을 가서 친구 집의 문을 밀고 들어갔더라면 이런 애잔한 고사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친구 간에는 때론 왕휘지처럼 눈앞의 만남을 마음에 간직하고 떠나는 여유와 운치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