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노인복지사업으로 속인 유사수신 사기
공공기관 사칭·고수익 미끼로 현혹
“나라에서 하는 거라니 믿었지. 전 재산을 넣었다가 다 날렸어요.”
강모 씨(67)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후 걱정을 덜었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노인 공동체 사업’에 가입하면 원금도 보장되고, 매달 장려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명의의 서류와 보건복지부 로고가 박힌 홈페이지까지 확인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지급받기로 한 장려금은 한 번도 입금되지 않았고, 문의 전화를 걸자 “조금만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시 확인해 보니 가입했던 사이트는 사기 조직이 만든 가짜였고, 이미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믿고 맡긴 전 재산 5천만 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 씨는 “나라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 돈으로 남은 노후를 버티려고 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공공예탁금’ 미끼로 고수익 보장… 속속 피해 사례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정부 산하의 노인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꾸며 노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불법업체가 등장했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을 사칭해 공공조합원 가입을 유도한 뒤, 예탁금 입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노인들의 노후 자금을 빼돌리고 있었다. 이들 불법업체는 공공기관을 연상시키는 명칭을 사용하며 정부 지원 사업인 것처럼 홍보했다. 특히, ‘공공예탁금’이라는 명목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이를 예금보험공사가 전액 보장한다고 속였다.
가입자에게는 납부액의 월 1.2~1.8%를 ‘장려금’으로 지급한다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예탁하면 매월 120만~18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광고했다. 연이율로 따지면 15~24%에 달하는 고금리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유사수신 사기의 수법으로, 실제로는 투자금만 가로챈 뒤 사라지는 방식이다.
업체들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보건복지부 로고를 도용한 가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KBS·MBC 등 주요 방송사를 사칭한 유튜브 계정을 개설해 가짜 뉴스 영상을 제작했다. 또 인터넷 뉴스와 블로그에 ‘공공조합원 가입 시 일자리 및 지원금 지급’ 등의 허위 기사를 퍼뜨리고, 댓글을 조작해 의심을 피하려는 수법을 썼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약속하는 경우는 없다”며 “이런 투자 제안은 유사수신 사기일 가능성이 높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고령층 노린 금융 사기, 대응책 시급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 사기는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응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유사수신 피해자의 36.5%가 60대 이상이었다. 이는 30대(18.9%)와 50대(1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60대 이상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2022년 673억 원에서 2023년 704억 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노인 대상 금융 사기를 겨냥한 맞춤형 법안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금융 사기 범죄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처벌되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 범죄에 대한 별도의 법률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2018년 ‘고령자 안전법(Senior Safe Act)’을 도입해 금융기관이 사기 의심 거래를 직접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연방수사국(FBI)은 2019년부터 ‘범국가적 노인 사기 신속대응반’을 운영하며 노인 대상 금융 사기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 역시 보이스피싱 피해가 심각해지자,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자동 녹음 기능이 있는 전화기 구입비를 보조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2020년 금융위원회가 ‘고령친화 금융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후 실질적인 법안 마련은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 사기는 단순한 개인 피해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며 “특별법 제정 등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정부 지원을 빙자해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 권유는 대부분 사기”라며, 의심스러운 경우 금융감독원(☎1332)이나 경찰(☎112)에 즉시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