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9월21일
가을을 데리고 오는 비
아침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청승맞게 내리는 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나기처럼 퍼붓는 비도 아니다. 어떠한 잡다한 생각이 없는 화음이 들어가지 않는 ‘파’ 톤의 노래를 부르는 비다. 가을을 데리고 오는 비다.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를 식혀주고 있다. 상주 산골 마을도 하천에 물이 불어서 제법 물 흘러가는 소리가 힘차다. 하천의 폭이 넓어서 물이 우렁차게 흘러가니 마치 강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만 물이 흘러도 마을 풍경이 활기차고 풍성해 보인다. 오래전에 수해로 인해서 물 건너로 이주해서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 시절 어르신들이 한 분씩 세상을 떠나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서 이제는 홀로 남은 어르신이 많다.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배추씨를 뿌린 것도 걱정이고 마당을 뒤덮은 호박도 걱정이 돼서 비 구경하면서 시골집에 다녀왔다. 붉은 고추도 한 소쿠리 따서 반으로 갈라 소쿠리에 널어서 마당 한가운데 놓고 말렸다. 오후부터는 비가 그치고 상냥한 햇살이 온 마당으로 내리쬐니 금방 마당도 뽀송하고 물기젖은 호박잎과 고추와 가지랑 나무들이 윤기가 흐른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좋다.
이제는 에어컨도 끄고 선풍기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부엌에서 밥을 지어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골이 깊은 산골 마을에는 도시보다 먼저 가을이 찾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