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히 알려 드립니다!
임효림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봉국사 주지직 퇴출사건 전말 !
조계종 개혁의 선봉장, 양심적인 시민운동가이자 시인인 봉국사 주지 효림 스님이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폭거에 의해 봉국사 주지 직에서 전격 퇴출되다!
현 정부의 ‘개혁 승려 뿌리뽑기’ ‘좌파적 불교지도자 숙청’ 라는 의도가
마침내 관철되어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 수신/ 문학인‧문화예술인 선생님께
■ 발신/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홍일선, 사무총장 이승철)
서울 마포구 아현동 437-3 고려아카데미텔 1215호
이승철 사무총장 010-3442-1902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퇴출 사건의 전말>
수경, 도법, 명진 스님 등과 함께 소위 불교계 개혁운동을 주도하고 양심적인 시민사회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효림(曉林) 스님이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직 퇴출(11. 9)에 이어 지난 11월 12일, 성남 봉국사 주지 직에서 전격 퇴출됨으로써 ‘개혁 승려 뿌리뽑기’ ‘좌파적 성향의 불교지도자 숙청’ 이라는 현 정부의 의도가 마침내 관철되었다. 이는 제2의 10.27법난의 재현이며, 조계종 총무원이 이명박 정부의 정권안보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실정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개혁적 성향의 승려를 연이어 퇴출, 숙청하는 폭거를 자행함으로써 그 정치적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효림 스님은 그동안 <실천불교승가회> 대표 스님으로서 개혁불사의 야전사령관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우리사회의 제반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왔으며,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 반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현 정부의 처사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 최근 ‘공정사회’라는 현 정부의 슬로건에 대해서도 그 진정성을 비판하는 대사회적 발언을 함으로써 명진 스님 퇴출사건 이후 자승 총무원장 체제가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직 재임처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7월 직할교구 공공사찰을 대상으로 종단사상 처음으로 주지인사 평가를 시행할 때 서울 학도암, 청룡암, 경국사와 함께 성남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 등 4대 사찰을 대상으로 제1회 인사평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효림 스님이 2007년 3월 8일 성남 봉국사 주지로 취임했을 당시 봉국사는 사고(事故) 사찰로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효림 스님이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수행 가풍을 잘 계승하고 신도들에게도 모범을 보이는 노력하는 스님이 되겠다”고 취임사에 밝힌 바처럼 신도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지난 4년 동안 봉국사를 모범적인 사찰로 만드는 데 헌신해 왔다. (성남 봉국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중창을 한 일도 있으나,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쇠락했던 사찰이다. 회주인 혜성스님이 1968년부터 경내 부지를 새롭게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됐으며 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만해스님의 유일한 법제자로 평생을 무소유정신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춘성스님이 말년에 주석했던 도량이기도하다.)
지난 2007년 3월 8일, 봉국사 심검당에서 열린 효림스님 주지 취임법회에는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 백양사 지선 스님, 춘성문도회 대표 수명스님 등 사부대중 1천여 명이 동참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었다.
효림 주지스님은 봉국사 주지로서 사찰 중창과 함께 불교학교 개설, 금강경 강해, 봉국사 사찰신문 발간, 성남 시민과 함께하는 희망음악회 개최 등으로 성남시민들과 불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조계종 총무원 측의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직 퇴출 사건은 봉국사 신도들과 성남 시민사회, 그리고 효림 스님의 문학운동과 시민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문화예술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2010년 7월부터 행한 주지 재임에 대한 인사고과에서 봉국사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그간 총무원 측으로부터 효림 스님의 주지 재임은 확실하다, 걱정 말라는 언질을 받았으나, 명진 스님 퇴출사건 이후 총무원 측으로부터 아무런 사전, 사후 통보 없이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재임을 전격 철회하는 폭거를 자행했으며, 지난 11월 12일 오전 9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봉국사 신임 주지에 효진(덕현) 스님을 임명함으로써 효림 스님의 주지직 재임철회 사태라는 정치적 배경에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1968년 입산하여 법력 42년에 이른 효림 스님은 개혁승려의 대표적 조직인 <실천불교승가회> 의장을 역임하였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불교신문사> 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후원회 회장,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실천문학사에서 <그늘도 꽃그늘>이라는 시집을 펴낸 중견 문인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 측에 아래와 같은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직 퇴출 사건 의혹에 대해 공개질의하고자 한다.
1.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체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명진, 효림 스님 등 개혁적 승려를 주지 직에서 연이어 퇴출한 사유를 진솔하게 밝혀라!
2. 지난 2007년 3월 대표적인 사고사찰(事故寺刹)의 하나였던 성남 봉국사의 주지로 취임하여 사찰 중흥과 함께 양심적인 시민사회운동을 병행한 효림 스님에 대한 주지 재임 철회사태는 조계종이 현 정권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조계종 총무원이 행한 4대 공공사찰에 대한 객관적인 인사고과 내역을 밝혀라!
3. 조계종 중앙종회는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재임 철회사건을 건전한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재갈이자, 정치적 탄압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공정한 진상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시인으로서 임효림 스님>
백담사 오현 스님의 추천으로 2002년 『유심』 봄호에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등단한 효림 스님은 그동안 시집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 등과 산문집으로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효림 스님의 뿔뿌리 이야기(채근담 주해)> <자유로 가는 길 도> 등 여러 저서를 출간한 바 있으며,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7월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임효림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은 두 번째 시집 『꽃향기에 취하여』 이후 4년 만의 신작 시집으로 요동하는 사회정치 현실을 향한 비판의 시선과 불국토 구현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승려로서의 일상을 냉철하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내온 전작들의 연장선상에서 더 깊고 넓어진 사유의 세계로 피아의 구분 없는 순리, 화려한 수사가 거두어진 담백하고 구체적인 시의 진경이 펼쳐진다.
승려이자 시인으로, 민중의 벗으로 자비의 눈길을 시심 삼은 8년의 시력(詩歷)이 오롯이 담긴 아름다운 시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말했듯, 시집의 주요한 시적 정서는 ‘그리움’이다. 승려로서, 인간으로서의 ‘번뇌’, 세속과 불가의 접경에서 오는 ‘번뇌’를 열두 발 상모 자락 풀리듯(「열두 발 상모」) 사무친 ‘그리움’으로 풀어내는 가없는 지경의 시심(詩心)이 눈부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불교문예> 편집주간 공광규 시인이 임효림의 시를 두고 “사회정치적 변혁의 상상력을 항상 시에 발휘”한 면이 컸다고 하였듯 효림의 전작에서 두드러졌던 시세계는 잘못된 권력을 표적으로 삼은 역심, 저항의 정서였다.
<효림 스님의 입산과 시민사회운동 참여 계기>
※ 아래 글은 <법보신문> 이학종 편집부장과 행한 계간 <유심>의 인터뷰 기사(2004.3.) 중에서 발췌한 것임. 당시 효림 스님은 파주 보광사 산내암자 수구암에서 주석하면서 시민운동가로 종단개혁가이자, 시인으로 정진하고 있을 때다.
효림스님은 그동안 민주화와 개혁의 역사적 소명 앞에서는 단호하고 철두철미했던 분이기도 하다. 지난 1994년 봄에 조계종 개혁의 선봉장이 되어 떨쳐 일어났을 때, ‘개혁불사의 야전사령관’이라는 별칭을 붙을 정도로 조계종 개혁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은사이신 신소천 스님과의 인연으로 68년 3월, 18살의 나이로 승려가 된 후 범어사 강원을 마친 후 범어사 선방을 위시로 해인사, 봉암사, 상원사, 동화사 등 30대 중반까지 선방 수좌로 살았다. 1980년대 말에 둘도 없는 도반이었던 종태 스님(입적)의 권유로 시민사회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투신했다.
당시 효림 스님은 종단개혁이 끝나면 실천불교승가회를 위시해서 불교계 시민운동의 방향을 세 가지로 설정했다. 통일, 인권, 환경운동인데, 첫째로 개혁종단은 민족통일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인류사 최초의 대인권선언을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인 집단에서 인권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선도해야 하며, 세 번째는 인간의 삶과 자연환경의 공존문제를 연구하고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환경운동을 해야 한다고 믿음으로 여러 실천문동을 전개한 바 있다.
<효림 스님의 문학관>
시를 쓴다는 것, 이것이 시민사회운동과 또 전통적 의미의 선객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거 선사들의 삶은 치열했지요. 또 많은 선지식들이 자신의 삶과 경계를 시를 통해서 남겼습니다.
당·송대(唐宋代) 중국의 여러 선사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불교의 거목이신 서산, 경허, 만해, 만공 스님 등도 뛰어난 선사이자 시인이셨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게송을 보면 그 심오한 경계도 경계이려니와 문학적 관점에서도 참으로 뛰어난 시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선시(禪詩)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날에는 설악산 오현 큰스님의 시를 꼽을 수 있는데, 큰스님의 시 중 달마에 대한 연작시와 심우도 연작시는 서산, 경허에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선시라고 생각합니다. 오현 큰스님의 시는 한문이 아닌 한글로 되어 있어 더 의미가 있고 이런 점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맥을 계승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역량이나 재주가 모자라지만 이런 선지식들의 뒤를 이어 가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선(禪)이고 수행이라고 믿고 시승의 삶을 일궈 가겠다는 것이지요.
시를 본격적으로 쓰다 보니까 시란 지나치게 영감에 의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작은 많은 공부와 치밀한 기획 속에 써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으로 요즘은 공부를 많이 합니다. 부처님 일대기를 다시 새롭게 샅샅이 살펴보고 경전도 다시 읽습니다. 과거에 본 것인데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언젠가는 부처님 일대기와 경전들을 시로 써보고 싶습니다. 만일 이 희망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법을 따르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로서 그 과정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이상입니다. 널리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이승철(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