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생명과 자연 사이에서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생명의 고동, 그리고 에너지의 흐름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닭의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30년을 살 수 있는 닭이 공장식 양계장 안에서만 평생을 보내다가 태어난 지 50여일을 넘기지 못하고 도살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공장식 양계장에서 서로를 쪼지 못하게 하려고 부화하자마자 부리를 잘라내 버린다는 사실은 또.
본래 풀을 먹고 자라는 소를 빨리 키우기 위해 유전자변형곡물(GMO)과 소, 돼지, 닭의 사체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너른 풀밭 대신 공장안에서 자라나 생기는 병을 막으려고 항생제, 호르몬제를 투약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극악한 축산 환경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란 소의 고기와 우유를 먹은 2살 아기의 젖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4살 여아의 성기에 음모가 돋은 일은 또 얼마나 알려져 있나.
7월의 너른 풀밭엔 제초제를 뿌려대면서 공장 안에 가두어둔 소들에겐 단백질 덩어리 사료를 먹이는 이런 ‘축산 산업’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구제역 파동에 축산 농가를 돕기 위해 고기 소비를 늘리자’는 TV쇼 진행자의 말에서, 게임 상품으로 ‘동물의 살’을 받고 좋아하는 출연자의 웃음에서 이 모든 해악의 주범을 발견했다고 얘기한다면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권리를 존중합니다”
이번 총선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신생정당, 녹색당의 정책엔 다른 정당엔 없는 내용이 있다. ‘생명권’과 ‘동물권’이다. 지난 2일 만난 녹색당 비례대표 장정화 후보는 “인간으로 갖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보호하자는 ‘인권’처럼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자”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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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화 후보 |
“과도한 육식문화, 성장주의, 토건주의로 생명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가축의 열악한 사육환경이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 등 각종 동물 질병 확산의 요인이 되고, 생태계는 물론 시민의 삶까지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권과 함께 생명권의 시대로 나아가는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동물은 식량이 되거나, 실험대상이 되거나, ‘애완’의 대상이 된다. 주체는 ‘인간’이고 동물은 ‘대상’이다. 동물의 권리와 생명가치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배부른 소리’쯤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보호를 하느라 인간의 삶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장정화 후보는 동물권, 생명권이 인권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명권은 인권과 대립되지 않으며, 인권을 더욱 철저히 보장하고 확대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생명권 정책은 보편적 인권 정책을 옹호하면서, 그것을 인간생명과 동식물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생명 보호로 확대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녹색당은 동물이 대상화 되는 일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동물들을 ‘이용’해오던 곳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오늘날 의학 실험이나 화장품 개발에서 동물 실험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당장 모든 실험실에서 동물 실험을 중단한다면 의학 발전이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모든 동물 실험을 그만두자는 것이 아니라 동물권의 개념에서 대체실험을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받는 고통을 최대한 줄이고, 실험 대상 개체수를 줄여야 합니다. 유럽연합이 화학, 화장품, 세제, 의약품, 농업연구, 바이오산업 전문기관들과 합의한 3R이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동물실험 최소한으로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칙입니다. 동물실험에 재검토(Reviser), 감소(Reduire), 다른 수단으로의 대체(Replacer)를 노력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녀는 이어 지금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와 실험들이 정말로 ‘필수적’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시한다.
“의료가 지나치게 상업화 돼 있습니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약품을 개발하고, 암에 특효가 있는 약을 개발합니다. 식품영양제, 노화방지제까지. 이렇게 많은 약품들을 새로 만들고 또 그것들을 위해서 동물실험을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지 다시 한 번 검토해보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약들로 충분하지는 않은지, 다른 실험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처치’보다 ‘예방의학’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태도를 전환하고 식단과 생활습관을 바꾸는 대체의학과 예방의학에 더욱 관심을 둔다면 이렇듯 다른 생명체를 실험중심으로 삼아야만 존속되는 상업화된 처치중심의 의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 이야기의 방향은 ‘산업’과 ‘구조’를 향했다. 그녀와 녹색당의 생명권, 동물권 논의는 동물을 ‘보호’하는 동정심이나 온정의 차원으로는 이해하지 못 할 영역에 닿아있다. 그건 ‘생명’을 상품으로 인식하는 현대사회의 산업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최근들어 이효리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동참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유기동물 보호운동’도 그 궤를 같이한다.
“애완동물 시장이 과도하게 비대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판매를 줄여야 합니다. 마트에서도 강아지며 고양이를 팔아요. 뿐만 아니라 도마뱀같은 파충류나 희귀동물들도 팔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길거리의 펫샵에서도 손쉽게 애완동물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 쉽게 사들였다가 쉽게 버리는거죠”
그녀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비대한 시장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근본적이라고 얘기했다.
“지금은 애완동물을 팔 수 있는 펫샵이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신고만 하면 누구나 동물들을 사고팔 수 있는거죠. 일단 ‘신고제’를 ‘허가, 등록제’로 바꿔야 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동물들을 사고팔 수 있는데 이런 인터넷 거래는 금지시키는 것이 옳겠죠. 외국의 경우 동물보호법에 의해 펫샵에서 기관에 등록을 해야 ‘입양’할 수 있습니다.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나 상황에 대해 등록을 해야만 동물을 들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책임감이 더 들 수밖에 없겠죠. 또 동물들을 ‘입양’했을 때 관리방법, 동물들의 습성, 동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유기동물의 증가는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 점차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수 만 마리의 유기동물을 구호하고 치료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고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유기동물들을 포획해서 불법적인 유통과정을 통해 식용으로 판매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유기동물들의 왕성한 번식활동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기도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여전히 예쁘고 순종적인 ‘애완동물’을 만들고 판매하려는 애완동물 산업과 그 산업을 장려하려는 정부의 태도다.
“재작년 기장군에서는 애완동물번식센터를 만들어서 예쁜 외래종 동물들을 번식시키겠다는 발표를 했다가 동물보호운동단체들의 강력한 항의로 무산됐습니다. 한쪽에선 그렇게 번식만 시키고 또 한쪽에선 유기동물 구조를 했다가 안락사 시키고, 사회의 기본적인 인식자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거죠”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한다면 최대한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녀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반려동물과 식용동물을 애써 구분짓고 그 차이를 나누는 것 역시 그녀는 동물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동물을 애완용과 식용으로 따로 나눠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존하는 또 다른 생명이었고, 이따금 그것들을 먹기도 했죠. 지금처럼 식용과 애완으로 나눠 구분지으며 동물들을 대상화 하는 것은 결국 식품산업이 비대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과도한 식품산업, 특히 축산 산업은 동물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하게하고 과도한 육식을 조장합니다. 우리나라엔 소만 340만 마리나 있습니다. 갓난아기부터 노인 병원의 와상환자까지 다 쳐서 인구 14명당 한 마리가 존재하는 꼴입니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됩니다. 이 소와 돼지들은 공장같은 축사 안에 갇혀서 마땅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항생제로 연명하며 도축될 날만 기다립니다. 도축과정도 비윤리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이들을 먹어야 하는지, 너무 과도하게 먹고있진 않은지, 또 무엇이 이러한 육식을 조장하는지를 떠올려봐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그녀는 채식을 한다. 그녀도 전에는 정기적으로 소나 돼지고기 반찬을 먹었고, 고기안주에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고기를 씹는 것, 술을 연거푸 마셔대는 것,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모두 ‘폭력적’이고 ‘충동적’이고 ‘과도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른 생명을 죽여 먹으면서 살아간다. 그녀도 해산물과 달걀은 먹는 페스코(Pesco)다.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진 열매만을 섭취하는 플루테리언(Fruitarian)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다른 생명을 ‘먹어야’한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다른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되도록 윤리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동물보호법의 경우엔 식용동물들의 사육과 도축과정, 운송과정까지도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사회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동물들이 덜 고통받고 덜 학대받으면서 자라고 생을 마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도한 육식을 자제하자는 것이죠.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고기보단 채소를 주로 섭취했습니다. 예부터 개고기를 통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했다는 얘기도 잘못된 상식이죠. 개고기를 먹기 시작한건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부터입니다. 채식을 주로하며 진화한 몸에 과도한 육식문화가 급작스레 도입되다 보니 현대인들이 변비나 치질, 각종 성인병 같은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죠. 건강을 위해서도, 윤리를 위해서도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는 것이 좋습니다”
녹색당 사람, 장정화
채식주의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동물보호단체 <카라> 동물보호무크지 ‘숨’ 기자, 초록정치연대 홍보기획자. 그녀의 이력은 생명권 옹호와 생태주의, 그리고 녹색당 창당을 위한 것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녹색’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처음엔 여성학을 전공한 ‘우먼타임즈’의 기자였습니다. 정치부 소속이라 유명 여성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들, 여성 기업인들을 많이 만났죠.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법제화도 생각보다는 잘돼있는 편이구요. 만났던 분들도 훌륭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다만 그 정책들과 그 저명한 여성들의 삶이 사회 전반에, 평범한 곳에 위치한 여성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성들의 삶을 위해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더욱 넓은 곳으로 나가 시야를 넓히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었는데, 그 즈음에 취재차 초록정치연대를 만났습니다. 당시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던 ‘에코페미니즘’과도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한것이 지금까지 오게됐습니다”
에코페미니즘 |
생태적 여성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확실한 연구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이뤄지는 여성에 대한 수탈과, 인간중심으로 자연에게 이뤄지는 수탈을 동시에 집중한다. 여성들이 주도한 인도의 ‘칩코운동’이나 미국의 러브카날 화학폐기물 반대운동이 에코 페미니즘의 기반이 됐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서구 자본주의와 개발정책의 첫 번째 희생자가 여성과 원주민들임을 인식하고 그것이 남성중심 가부장제 문화와 개발중심주의에 기인한 것임을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스, 이본느 게바라 등이 있다. |
몇 년 전 초록정치연대가 초록당 건설에 실패하고 모였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그녀는 초록당 사람들의 ‘나홀로 상근’ 4년을 시작하며 오늘의 녹색당 창당을 주도했다. 그녀는 자신의 공을 한사코 부인했지만, 그녀가 비례대표 후보로 경선에 참여한 것도 이런 그녀의 ‘녹색당 사랑’을 지켜봐 온 평당원들의 추천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환경운동을 해오셨던 분들이 많이 있었고, 과천 의왕지역에서 생태주의 운동을 지속해오면서 소기의 성과를 내셨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전국당 사무처장이신 하승수 사무처장도 그렇구요.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로 이러한 지역의 운동뿐 아니라 중앙정치에 정책적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 정치구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신 그분들과 초록정치연대, 그리고 녹색정치에 희망을 갖고 계셨던 많은 분들이 모여서 녹색당 창당에 이르게 됐습니다”
“다른 정당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는 등대정당이 되고 싶습니다”
정당법상 지지율 2%가 넘지 못하면 녹색당은 해산해야 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지지율 여론조사에 끼워주지도 않는 녹색당으로서는 2%의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초록정치연대부터 오늘까지, 녹색당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녀에게 당의 진로를 어렵게 물었을 때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정당법상 등록이 취소되는 것이지 해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가입을 한 당원들이 태반인 녹색당이고, 당원들 스스로 당헌과 강령, 정책을 만들고 발전시켜온 녹색당입니다. 등록이 취소됐다고 어렵사리 모인 7천명의 당원들이 흩어지는 해산은 아닙니다. 다시 등록해서 우리의 활동을 이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당 등록이 취소돼도 다시 등록하고 더욱 열심히 활동하면 된다는 그녀는 “우리는 풀뿌리 지역정당을 지향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지자체 선거가 우리의 본무대가 될 것” 이라는 비전까지 제시했다.
“집권이나 다수당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의회정치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 모든 녹색당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 ‘반(反) 정당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이야기와 바람이 다른 정치인들, 정당들의 ‘등대’와 ‘지표’가 되는 등대정당을 꿈꾸고 있습니다. 녹색가치가 의회에서 우리사회에서 실현되게 하는데 녹색당의 역할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표를 더 받아 어떻게든 당의 해산을 막겠다는 결기 보다, 한 마디라도 더 가치를 전달 하고 싶은 바람을 남기고 그녀는 ‘녹색당 평화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도 메머드급 정당들은 이 사회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당선’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당선보다 ‘가치’에 방점을 찍는 녹색당 후보들의 행보가 어쩌면 우리 사회를 지키고 변혁해줄 가장 근본적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