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 글 올린 날이 언제였는지 찾아보니 11월 15일이네.
보름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내가 무얼하고 지냈는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다.
대부분 학교 일때문이다.
오늘 약간 틈이 생기긴 했으나, 겨울방학 시작할 때까지, 계속 정신 없을 것 같다.
그 사이에 친구들 많은 일이 있었구나.
태기, 상수, 명희,...
나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다해 돌아보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모두 나의 못남때문이다.
용서를 구하며...
바쁜 와중에도, 신앙과 관련된 내 삶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김남준 목사님을 뵌 것이다.
아내와 수시로 반복되는 냉전을 끝없이 지속할 수 없어, 1달 전쯤 아내와 약속한 일이 있다.
11월말까지만 새길교회 다니고, 12월 첫주부터 열린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가정의 평화이다. 물론 신앙이 가정 평화보다 하위의 개념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새길교회의 방문자 생활을 석달여 해 본 경험이나, 나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시작한 윤태 형의 조언을 참작해, ‘어느 교회에 출석하느냐?’가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게다가 열린 교회의 순수한 섬김의 자세(특히 교인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향한)나 김남준 목사님의 리더십 등을 생각할 때, 열린교회는 보수 교단의 어느 교회와 비교할 때, 가장 모범적인 교회라는 내 생각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따라서, 내가 지금 가진 회의를 열린교회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나 예전과 다른 나의 모습 때문에 혹이나 느낄 수 있는 실망 또는 실족에 대해서 내가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어쨌건 그 약속을 받아낸 뒤 아내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교회에서도 교구 목사님께 그렇게 전했던가 보다.
그러다 한 2주 전 교회에서 김남준 목사님이 우연히 아내를 만났을 때, 다정다감하게 웃으며, ‘(이영종 집사) 언제부터 온다고 했어? 으, 그래? 내가 한번 심방 갈께.’ 하더란다.
그 말을 들은 아내와 나는 관심의 표시라 생각하고, 크게 마음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아내를 만난 교구 담당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의 심방이 있을텐데 무슨 요일이 좋으냐고 물어서, 목요일 정도면 괜찮다고 했더니, 바로 다음 날, 목요일 저녁에 직접 오시기로 확정되었다고 통보가 왔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앞이 깜깜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어떤 태도로 말씀을 들을 것인가?
차라리 진지한 1:1의 대화라면 또 모르지만, 집에서 식사까지 같이하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속에 과연 무슨 의미있는 심방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지난 8월 23일 이후 처음으로 교구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석달만에 듣는 나의 목소리에 교구 목사님도 흥분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말했다. 차라리 내가 직접 담임 목사님을 찾아뵙겠다고.
그 다음, 담임 목사님과 협의 끝에 돌아 온 응답은 아내와 함께 같이 오라는 것이었다.
그럼 아이들은? 그랬더니 아내가 민첩하게 처제와 연락을 해서 처제의 도움을 받기로 함으로써 간단히 해결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11월 27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아이들은 처제가 와서 봐주고, 나와 아내가 목사님 방에 함께 가서 뵈었다.
많이 긴장되었다. 그 전날부터 그랬고, 당일 오전 학교에서 수업하는 중에도 줄곧 그랬다.
왜 그리 부담스러웠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김남준목사님을 비롯한 열린교회의 모든 식구) 또는
내게 좋은 감정을 갖고 지켜봐주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 생각과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을 때 그들이 느낄 감정에 대해 내가 본능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인간적 미안함이 가장 주된 이유이다.
사실이 그랬다.
목사님은 따뜻하게 우리 부부를 맞아 주셨다.
저녁 6시 30분경부터 1시간이 넘도록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되었다.
핵심은 이것이었다.
나도 형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성경에 대해 회의해 보았다.
성경의 정경설에 대한 논증은 두가지가 있다.
외증과 내증이 그것이다.
외증은 성경 바깥에서 고고학을 비롯한 다양한 주변 학문과 연계하여 성경의 ‘계시성’을 밝히는 것이다. 거기에도 주목할만한 학문적 성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언제나 또 다른 비판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내증이 필수적이다. 내증이란 성경 그 자체가 성경임을 증명한다는 것으로서 그것에 대한 믿음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은혜 체험에 달려있다.
십자가에 대해,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끊임없이 현재적 체험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계시성을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내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메말라버린 사람에게 시험이 찾아온다. 그 시험 가운데 치명적인 것이 성경의 계시성에 대한 의심이다.
그러므로, 은혜 안에 잠기는 삶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
내 옆에서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도 최대한 목사님께 예의를 갖추려 한다. 지금까지의 고민에서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논의이지만 대꾸하거나 논쟁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일단 모든 것을 내 속에 담아 두고, 내 몸은 열린교회의 예배 속에 세워놓겠다는 결심을 하였기 때문 아닌가?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느낀 점 몇가지.
김남준 목사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특히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신다.
신학 이외의 다방면에 교양도 풍부하시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탁월한 역량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를 특별히 서재로 안내해서, 존 오웬에 대한 최근 당신의 연구 과정을 소개해주셨는데, 치열한 학자 정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정말 형편없이 저급한 수준이다.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
말씀이 끝난 후, 산마리노(?)인가 뭔가 하는 정통 이태리 음식점으로 안내하셧다. 식사에는 교구목사님과 전도사님도 함께 갔다.
백운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다.이름도 모르는 요리를 풀코스로 시키셔서 코스마다 목사님이 직접 2차 가공을 하시고 우리들에게 배분해 주셨다. 어린양 고기라던가 뭐라던가.
내 적성에는 전혀 안맞는 느끼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는데, 분위기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다음에 우리 식구끼리 온다해도 먹는 방법을 몰라 못올 것 같은 어려운 식당이었다. 아내는 몹시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우리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께 직접 이런 저녁 대접을 받아본다는 것이 흔치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결혼하고 지원이 낳은 후로 우리 부부가 이 정도 분위기 있는 곳에서 인간답게 식사한번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어쨌거나, 11월의 마지막 날 나는 열린교회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새길교회는 그 날이 한완상 총장의 설교하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설교였으나,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지하교회 때부터 같이 지냈던 어느 권사님은 오랫동안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시며 각별한 감정을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