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디지털 후진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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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4 22:48:46 수정 : 2022-10-14 22: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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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2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관저에 설치된 모니터 양편으로 내외신 기자 20여명이 늘어섰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재택근무 중인 기시다 총리의 원격 기자회견 때문이다. 일반 기업의 화상회의처럼 각자 컴퓨터를 연결하는 질의응답을 기대했던 언론은 황당했다. 각료·관료 보고나 정치인 면담도 형식만 비대면이었지 일일이 관저를 찾아와야만 가능했다. 외신은 트위터를 통해 ‘코미디’라고 비꼬았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에는 늘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코로나19는 일본의 디지털 낙후성을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터넷보다는 팩스를, 전자결재보다는 도장 날인을 우선시했다. 그러다 보니 재택근무는 언감생심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탄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코로나19 확진자 집계도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전자문서 대신 수기로 작성해 팩스로 집계하다 보니 누락·중복이 속출했다. 재난지원금도 우편 신청을 받고 일일이 개인정보를 확인하느라 지급까지 반년이나 걸렸다. 한국에선 흔한 ‘터치패드’,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는 일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평가 대상 63개국 중 지난해보다 4계단 오른 8위를 기록했다. 인구 2000만명 이상 27개국 중 미국에 이은 2위다. 일본은 29위로 한 단계 떨어졌다. 인구 2000만명 이상 국가 가운데 일본 밑에는 이탈리아(39위)뿐이다. 아날로그적 인프라로 유지되는 사회 시스템은 국가 차원의 위기 대응을 어렵게 한다.
일본이 ‘탈(脫)도장’에 이어 스마트폰을 통한 ‘60초 행정’을 목표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총리부 직속으로 디지털청을 발족해 여러 부처에 분산된 디지털 관련 업무를 일원화했다. 고노 다로 일본 디지털담당상은 최근 트위터에 “플로피디스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War on floppy disks)”고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용도 폐기된 플로피디스크 얘기에 귀를 의심했다. 일본 정부는 그제 2024년 가을까지 주민증과 의료보험증 통합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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