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막힐 때마다 막노동을 한 적이 있는데 같은 마음으로 노가다 택시
한 지 오늘로 37일 째 입니다. 첫 노가다를 30대 때 건물의 외벽에 반듯한
대리석 붙이는 돌 작업을 했어요. 십장(什長)이 만들어 놓은 단 도리를 시작
으로 맨 아래부터 2층, 3층까지 40-50k g의 무게를 지고 오르내리면 어디
다리만 후덜덜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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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어쩌다 보니 택시를 운전하게 됐어요. 택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
되는 생 노가다입니다. 아무리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지만 택시 만큼 힘든
직업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시라. 오늘도 해브 어 나이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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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괴테'가 가끔은 헤깔리기도 합니다. 내 오늘은 기어히 니체를 넘어갈
작정입니다. 살아보니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글쓰기,
묵상,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회한, 나를 가만있지 못하게 하는
고민 등은 매번 수고롭고 힘듭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침의 햇살도, 계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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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도 저만치 지나가 있어요. 한참 물속에서 헤엄치다가 겨우 잠시 고개를
들고 숨 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대관절 이런 하루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니체는 니힐리즘(nihilism)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페시미즘과 니힐리즘의
차이를 아시나요? 니체의 허무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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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치나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니체는 세계와 삶을 이해 하기
위한 기준으로 보편적 진리를 찾아왔던 이전까지의 서양철학, 유럽 문명을
통렬히 비판합니다. 니체에게 세계의 진실은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끊임
없이 움직이고 부딪히는 힘들의 변화무쌍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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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스스로 '보편 진리'라 주장했던 과거의 가치, 규범, 체제를 붙들거나
그 대체제를 고민하는 대신, 나를 이끌어줄 기준이나 정답을 찾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진실한 삶의 시작이라고 말해요. 이렇게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이나 방법은 뭘까? 아마도 그것들은 나 스스로 바란 게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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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따랐던 어떤 것일 수 있고, 혹은 내가 선택
한 것이라 해도, 그때는 나를 살맛 나게 했지만 지금은 나를 소진 시키는
낡은 그물이 됐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나의 눈을 가리고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던 것을 전부 치웠을 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터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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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냉장고 말입니다. 바로 그 빈터에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세워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니체에게 비어 있음, 사라짐, 없음은 곧 새로운
창조의 신호탄입니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은 세계에 대한 해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자입니다. 만약 제대로 새로운 해석 체계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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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투스(conatus)가 증진되었다는 느낌 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해석 체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같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해석 체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새로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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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를 창조하려면 주변의 질시와 동시에 고독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차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일종의 철학적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남의 해석 체계 로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자신만의 해석 체계'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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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달리' 이후로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책, 옷)마저 탈탈 털리면서 저는 매일
매일 사투를 벌이며 새롭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니체의 니힐리즘은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시작할 존재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체’ 하면 떠오르는 ‘초인(Übermensch)’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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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체제에 붙들리거나 억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놀이하며 즐기는 사람입니다.
아하, '즐기는 공부'가 니체에게서 나왔습니다. 니체는 이를 어린아이가 놀이
하는 마음에 비유해요. 어린아이의 놀이는 칭얼거리다가도 시작되고, 투덕
거리던게 놀이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놀이에서 금세 다른 놀이로 확장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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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요. 이 과정이 놀이로 성립되는 것은, 그 순간 바로 그 활동에 흠뻑 빠져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변화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피할 수 없는 순간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고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아모르파티! 기쁨과
창조의 삶은 혼란도, 문제도 없는 삶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가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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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위험과 상처에 나를 열어두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것입니다.
니체에게 나 자신으로 살며 그 삶을 긍정하는 것은 나의 모든 실패, 되돌릴
수 없는 상처마저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경지가
'운명 애' 혹은 '숙명 애'로 번역되는 ‘아모르 파티’입니다.
낙타-사자-어린아이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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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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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평범한 인간에게 이러한 태도가 가능할까? 예효 어렵네요. 매일 숨차게
사는 듯한 이 삶, 그다지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에 숙명처럼 따라붙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
자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하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멋지지 않습니까?
2023.11.1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