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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길에서 돌이키면 삽니다 |에스겔 33:10~20
오늘의 말씀요약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의인이 공의에서 떠나 죄를 지으면 그것으로 인해 죽지만, 악인이 돌이켜 정의와 공의로 행하면 그가 이전에 행한 모든 죄는 기억되지 않고 그는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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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능히 살리요?" 절망보다 큰 하나님의 긍휼 에스겔 33장 10~11절
10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법을 어김과 죄가 우리 위에 있어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쇠약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11 그러니 그들에게 말하여라.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자기의 행동으로부터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이키라! 너희의 악한 행동으로부터 돌이켜 떠나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으려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이다.’
- 포로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회복의 가능성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체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절망을 끊으시며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이며, 멸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을 향해 "돌이키라"라고 부르십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안기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용서보다 내 죄를 더 크게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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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오늘의 선택을 보십니다 에스겔 33장 12~20절
12 그러므로 너 사람아, 너는 네 백성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의인의 의로움은 그가 죄를 짓는 날에는 그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악이라도 그가 그의 악에서 돌이키는 날에는 그 돌이킴으로 인해 그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의인이라도 그가 죄를 짓는 날에는 그 죄로 인해 그가 살지 못하리라.’
13 만약 내가 의인에게 그가 반드시 살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자기의 의로움을 믿고 불법을 행한다면 그의 모든 의로움은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가 행한 불법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
14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내가 악인에게 말할 때 그가 자기 죄에서 돌이켜 정의와 의로움을 행해
15 악한 사람이 담보를 돌려주고 약탈한 것을 되돌려주며 생명을 주는 법령을 따르고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살 것이고 죽지 않을 것이다.
16 그가 저지른 죄들 가운데 어느 것도 그에게 나쁘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정의와 의로움을 행했으니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17 그래도 너희 백성의 자손들은 말한다. ‘주의 방식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행동이다.
18 만약 의인이 그의 의로움으로부터 떠나서 불법을 행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19 그러나 악인이 그의 악으로부터 떠나서 정의와 의로움을 행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살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주의 방식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를 각각 자기의 행동에 따라 심판할 것이다.”
-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행한 대로 판단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의가 현재의 죄를 덮어 주지 못하고, 과거의 죄도 현재의 회개를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새 출발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사람은 과거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두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 돌아가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방향을 보고 계십니다.
나는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오늘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바꾸어야 할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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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지옥을 선택하겠는가?
지옥은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받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이다. 또한 지옥은 하나님을 차단하려는 죄인의 바람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No!”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 뜻을 받아들이신다. C. S.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주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말하기를 한사코 거부하면 끝내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뜻이 이루어지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지옥에 가는 이들은 “내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라는 사탄의 반역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지옥은 그분을 상대로 우주적 전쟁을 벌인 사탄과 그 졸개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하나님 없는 삶을 원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살던 방식이 그대로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이 지옥이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수동적 차원과 능동적 차원이 있다. 수동적 진노는 우리가 죄의 선택으로 인해 맞이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그대로 당하도록 놔두시는 것이다. 능동적 진노는 우리의 선택에 그분의 벌을 더하시는 것이다. 능동적 진노는 대개 수동적 진노의 연장 혹은 증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통해 사랑을 제시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 뜻과 죄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뜻에 항복하고 예수님을 선택할 것인가?
♧ 한 절 묵상
33장 11절 |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심은 멸망이 아니라 돌이켜 사는 것입니다. “돌이키고 돌이키라.”라는 호소에는 죽음으로 치닫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로 인해 심판받지 않고, 돌이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호흡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입술로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넘어, 전 존재를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회개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고,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 없다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멸망으로 끝날 제 인생에 소생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찬양합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회개와 회복에 이르게 하소서.
에스겔 33장 10~20절은 심판 가운데서도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포로들은 자신의 죄와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찌 능히 살리요"라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이켜 생명을 얻기를 기뻐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어 하나님은 사람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선택에 따라 판단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의인도 죄를 고집하면 생명을 잃고, 악인도 회개하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회개의 문을 끝까지 열어 두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과거에 묶여 절망할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께 돌아가는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돌이키는 자를 언제나 새롭게 하십니다.
"너희는 돌이키고 돌이키라" 에스겔 33장 11절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하나님의 간절한 외침입니다. "돌이키고 돌이키라." 이 말씀에는 심판자의 차가운 명령이 아니라 아버지의 애타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밀어내시는 분이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너는 이미 늦었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떠났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느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붙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손을 내미시며 생명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회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2026년 7월 30일 오늘의 말씀 명언 에스겔 33장 10~20절
눈물 없는 회개는 있을 수 있지만,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 - 찰스 스펄전
참된 회개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의 전환이다. - 존 칼빈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없이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 어거스틴
회개는 한 번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 오스왈드 챔버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미래를 주신다. - 빌리 그레이엄
예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부르시지만, 그대로 머물게 두지 않으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기쁜 소식이다. - 존 스토트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기쁨으로 맞아 주신다. - 삶을 노래하다
7월29일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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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에스겔 33:11)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마음과 삶의 방향을 보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죄인이라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면 살 것이고, 의인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면 그 의를 의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공로나 실패가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지를 물으십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과거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잘못했던 일 때문에 스스로를 정죄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전의 신앙과 섬김에 안주하며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네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신앙은 과거의 영광을 붙드는 것도,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라, 오늘 다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후회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잘못을 바로잡았듯이, 회개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가장 큰 절망은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며, 가장 큰 소망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과거보다 크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실패보다 깊습니다.
오늘도 제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기 원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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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심판 예언이 현실로 확인된 이후, 포로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 예언에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문제를 제기 합니다.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면 자신들에게 미래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1) 허물과 죄로 멸망한 이스라엘의 구원 가능성(10-11)
에스겔의 심판 예언에 따라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유다가 멸망한 후 바벨론 유배민은 절망의 심연에 떨어졌습니다. 성전과 다윗왕조가 자리한 예루살렘이 바벨론 점령군에 의해 잿더미가 된 것은 언약관계의 완전한 파기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출발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멸망했기에 유배민은 언약관계의 회복과 같은 심판 이후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유배민의 눈에는 절망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가 초래한 심판의 영향 아래 살다가 유배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뿐이었습니다.
미래의 소망을 잃고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진 유배민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포로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포기적인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어조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자기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여호와의 성품이 유배민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과거의 죗값은 현재의 결단에 따라 극복될 수 있습니다.
(2) 범죄한 의인과 회개한 악인(12-16)
12절은 타락한 의인의 멸망과 죄악에서 돌이킨 악인의 구원을 선언적으로 진술하고, 13절은 다시 타락한 의인의 경우를, 14-16절은 회개한 악인의 경우를 다룹니다. 의인의 이전 의와 악인의 이전 죄가 이들의 미래를 결정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의인이 있을지라도 자기 의를 믿고 악을 행한다면 지은 죄로 인하여 죽게 되고, 하나님께 죽음을 선고 받았을지라도 죄에서 떠나 의를 행하면 행한 의로 인하여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는 결정적 기준은 과거 행위(업적)가 아니라 현재의 삶입니다.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어두웠던 과거가 극복될 수도, 자랑스럽던 과거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사는 것을 기뻐하시기에 이스라엘이 과거의 무거운 짐을 운명의 굴레처럼 지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의 삶에 책임을 지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에서 떠남’은 물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담보로 받은 것을 돌려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을 배상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율법을 따라 불의를 저지르지 말아야합니다. 이처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면서 살면 과거에 저지른 죄악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3) 미래를 결정하는 현재의 삶(17-20)
유배민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길을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며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율법적으로, 곧 악인을 심판하는 공의로 이해하는 자들에 맞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앞의 주장(12-16)을 반복하십니다. 의인이 공의를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 죄악 때문에 죽게 되고, 악인이 악에서 돌아서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것들 때문에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미래는 현 세대가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지, 조상들의 과거 의로움이나 신학적 전통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유배민은 절망에 빠져 한탄하지 말고(10) 하나님께서 내미신 손을 잡고 구원의 미래로 나가야 합니다. 악인을 살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 길로 가는 자들은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경고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시며, 책임 있는 전파자의 역할을 강조하십니다. 죄인을 경고하지 않으면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이 전파자에게 돌아간다고 경고하십니다. 또한,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임함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경고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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