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8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과거·현재·미래 Song 》
시 85:1~13
〈 1 뺏긴 것과 내 준 것의 차이 〉
얼마 전 천안의 독립기념관 관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광복은 2차대전 연합군 승리에 따른 선물’이라고 한 발언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연합군의 승리로 나라를 되찾게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과거는 해석의 대상입니다.
이미 흘러간 물처럼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 그것은 해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천양지차로 나뉘기도 합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의 한 마디, 명대사가 있습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
구한말 일본의 야욕 앞에 조정대신 중에는 일본에 갖다 바치려는 친일파가 득실거렸습니다.
그냥 내 주었다가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다행히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이 있었습니다.
의병이 있었기에 ‘한일 합방’은 나라를 내어준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입니다.
이후로도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되찾기 위한 노력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45년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의병’ ‘독립군’ ‘임시정부’가 없었더라면 연합군이 승리했어도 되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
시인 이상화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시는 일본이 조선을 빼앗아 갔다고 피를 토하는 노래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고종은 무기력하게 일본에게 나라를 내주었다는 해석도 없지 않습니다.
그 해석을 따르니, 8.15광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거저 받은 선물이라는 발언이 나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 과거·현재·미래 Song 》입니다.
마침 시편 85장이 과거 현재 미래의 3시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강건하면 80이요, 잘 하면 100세 인생입니다.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가집니다.
이러한 인생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 함께 은혜를 찾아 누리고자 합니다!
〈 2 과거 - 추억은 아름다워 〉
사람들은 과거를 어떻게 말합니까? ~ “추억은 아름답다!”
추억은 과거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 이것도 실은 해석입니다.
나라나, 개인이나, 과거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85편에 1~2절에서 시인 고라 자손도 지난날을 회상하며 해석합니다.
(1~3절)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되돌아 온 역사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노래합니다.
포로가 된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는데, 하나님이 죄악을 사하시고 분노를 거두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다 백성은 주전 586년 바빌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70년 만에 조국으로 되돌아와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역사나 유다의 역사나, 또한 세계의 역사에는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 과거를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나간 세월,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노래하십니까?
“추억은 아름답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성경과 매우 부합합니다.
과거를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은, 오늘 시편 85장에도 드러납니다.
시편 85장을 쓴 ‘고라 자손’ 그들은 자기네의 역사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노래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나라가 회복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를 해석하는 열쇠 말은요,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추억은 아름답다!”라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해석해야 합니다.
‘과거는 나를 옥죄는 자물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열 수 있는 자물쇠’입니다.
성도는, 지난날 무엇을 잃었는가 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남겨 두셨는가에 집중합니다.
☞ 기억하십시오! 《 과거·현재·미래 Song 》에서 ‘과거 Song’은 “감사”입니다.
〈 3 현재- 인내하며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
과거의 노래는 ‘감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현재의 노래는 무엇인가를 볼 차례입니다.
시편은 연을 나누지 않고 서술형식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읽을 때 혼선이 오기도 합니다. 3절과 4절을 연달아 읽어보겠습니다.
(3~4절)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3절에서 하나님이 분노를 거두시고 진노를 돌이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합니다. 이상합니다.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3절까지는 과거를 노래한 첫 번째 연이고, 4절부터 현재를 노래하는 두 번째 연입니다.
현재의 노래는 4절부터 7절까지 이어집니다.
현재의 노래는 어떨까요?
사람들은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면서, 현재는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시편 85장에서도 “추억은 아름다웠는데(1~3절),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4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는 아름다운데, 왜 현재는 고통스럽습니까?
지난 날,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품어주셨음을 떠올렸기 때문에 추억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당장, 오늘날의 현실을 보니 녹록치 않습니다.
오늘은, 당장 힘이 들고 고통스럽습니다.
☞ 이것이 ‘과거와 현재’ 사이 그 간극에서 오는 긴장입니다.
☞ 과거는 해석의 시간이고, 현재는 감당하는 시간입니다.
과거는 해석의 대상이지만, 현재는 당장 뭔가를 해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 살아내야 합니다. 기왕에 살아내는 것,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현재는 빠르게 과거로 흘러가 버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살아야, 오늘이 어제가 되었을 때 아름다울까요?
‘과거의 노래는 감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들은 현재의 노래는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는 결론을 내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현재는 당장 살아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은 무엇으로 견디고 계십니까?
우리 믿는 이들에게 현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인내하는 것이 현재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노래는 “기도”입니다!’
☞ “하나님 지금 나에게 힘을 주옵소서!” ‘기도’가 현재의 노래입니다.
〈 4 미래 - 소망으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
☞ 과거는 감사, 현재는 기도입니다. 이제 미래의 노래를 부를 차례입니다.
‘앞날’은 우리에게 어떤 날일까요?
시편 85편 1~3절은 ‘과거’ 4~7절은 ‘현재’의 노래입니다.
이어서 8절로 13절은 ‘미래’의 노래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2절)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리로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한다면, ‘소망’입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막연한 낙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세상 학문의 잣대로는 ‘저 사람은 낙관적이다’ 혹은 ‘비관적이다’ 합니다.
그 사람의 성질, 성격, 기질을 살펴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는 그렇게 나뉘지 않습니다.
성도의 미래에 대한 자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입니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2절 말씀이 그대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미래’를 바라보는 겁니다.
막연하게 낙관하는 것도 아니고, 웬지 불안하여 비관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래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할렐루야~
《 과거·현재·미래 Song 》에서,
과거는 감사, 현재는 기도, 미래는 소망입니다.
과거는 감사함으로 해석하고, 현재는 기도로 견디며, 미래는 소망으로 기다립니다.
과거는 감사, 현재는 기도, 미래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 제목 《 과거·현재·미래 Song 》입니다. “과·감/현·기/미·소”입니다.
〈 5 소망의 항구 천국 〉
시편 85편은 지난 주 설교한 84편처럼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지난 주 설교 제목이?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였습니다.
조상 고라는 하나님 앞에 거역하여 땅이 갈라져 묻혀버리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고라는 땅에 묻혔지만,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조상 고라의 죄를 변명하거나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 고라가 지은 그 죄의 굴레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상을 심판하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성전 문지기라도 좋사오니”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는 순례자로 살았습니다.
고라 자손에게 ‘옛날’은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은 인내의 시간입니다. 견뎌야 하는데, 기도로 버티어냈습니다.
‘앞날’은 소망이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도 동일합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감사, 기도, 소망이 우리 인생의 싸이클입니다.
“과·감/현·기/미·소”를 꼭 기억하십시오!
누구나 한평생 살고 나면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미래는 끝이 납니다. 끝이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 안 믿는 이들 중 더러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미래는 죽음이후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무덤 저편에 진정한 미래, 소망의 항구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이 진정한 미래입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과거는 감사, 현재는 기도, 미래는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듯 해도 믿음의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망의 항구 천국이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의 미래로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 소망의 항구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