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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
젊은이들을 위한 선방을 만든 준한스님!
글 전현자 (본지 한국 취재기자)
저에게 산(山)은 극락입니다.
산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제 삶도 그저 자연(自然)의 일부였지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산조차도 산의 고요함에 집착하는 순간 큰 병(病)이 되는 것입니다.
홍대선원을 만들려고 했을 때 산을 좋아하는 마음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상에 나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 자 인터뷰 허락에 감사드립니다.
스 님 와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기 자 홍대선원은 한국 젊은이와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대단한 선원을 만들어 오셨는지 놀랍습니다.
스 님 부처님의 공덕입니다. 저는 부처님께 귀의한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부처님의 공덕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했는데 대
단한 것이라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부처님을 직접 뵌 적도, 가르침을 육성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2700여년이나 지난 이 시대에 제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에의 감사함도 무한합니다.
불자의 기본 토대는 불, 법, 승 삼보(三寶)에의 귀의입니다. 삼보에의 귀의라는 위대한 것은 제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입니다. 저는 부처님께 온전히 귀의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전히 귀의했습니다. 저는 승가에 온전히 귀의했습니다.
부처님이 계셨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그 가르침이 스님들께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성숙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인연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원력이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 자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감동입니다.
스 님 부처님께서는 열반, 해탈을 이루셨기에 스스로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
님께서는 45년 동안 평생을 법을 설하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뜻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산속에서 16년 공부했고 그 중 마지막 3년은 울타리를 치고 산 밖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제 삶의 문제들도 공(空)한 것임에 사무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세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꿈인 것을 일깨워 줘야겠다는 한 생각을 일으킨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큰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다시 나오는 것을 결심할 때는 아주 큰마음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산이 너무 좋았습니다. 소백산에서 예불하고 농사짓고, 오가는 사람은 단지 인연에 맡기며 사는 삶! 그것을 놓고 도심 속에 들어가 포교를 해야 한다 생각하니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기 자 그러셨음에도 나오셔서 고맙습니다.
스 님 이제는 도심 속 홍대선원을 더욱 귀한 수행처로 삼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다, 내가 했
다는 생각 없이, 일어나고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펼쳐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기 자 공(空)함에서 비롯된 스님의 원력(願力)은 무엇이었는지요?
스 님 첫째는 제가 공을 진정으로 체득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깨달은 바를 더 깊게 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저에게 산(山)은 극락입니다.
(웃음) 산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제 삶도 그저 자연(自然)의 일부였지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산조차도 산의 고요함에 집착하는 순간 큰 병(病)이 되는 것입니다. 홍대선원을 만들려고 했을때 산을 좋아하는 마음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상에 나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과(因果)법이 보일수록 인과에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파장이 일어나서 어떻게 벌어질지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산에서는 돈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습니다.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지요. 세금을 낼 일도, 월세나 각종 유지비가 드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기 자 그래도 건강을 유지 할 만큼의 음식은 있어야지요?
스 님 주는 대로 먹으면 되고 생활비도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홍대선원은 공익사업입니다. 처음에 이 건물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과의 일부터 리모델링을 위해 건축가와의 계약과 여러 일들을 비롯해 엄청난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파도가 몰아칠 것을 알고도 파도 속으로 들어 온 것이지요. 제게는 이 세상 속에서의 생활은 어렵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먼저 견성(見性)하고, 중생교화(衆生敎化)하라는 말이 얼마나 엄중한 말인지 모릅니다.
중생 교화하는 마음이 곧 견성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견성(見性), 즉 제 마음 공부하려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홍대선원도 제 수행하려고 만들었습니다.
가장 이기적(利己的)인 것이 곧 가장 이타적(利他的)이라는 말처럼 첫째는 나, 내 마음만 보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있는가? 자비심을 유지하고 있는가? 세상사에 흔들 릴 때 제자리로 잘 돌아오는가? 스스로에 질문하며 삽니다. Just Be가 항상 되는 것이 아닌 것도 알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Just Be가 된다는 것도 압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현상세계를 통찰 한 것에서였습니다. 즉, 한류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갈 때 타이밍을 포착한 것입니다. 한류로 오게 되는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그리고 한국불교를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의 깊은 문화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불교를 통해 천년고찰의 깊은 멋을, 한국의 진정한 멋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한 생각으로 플랫폼을 만든 것입니다.
내 공부 하려는 마음이 지극하니까 항상 나를 보고 하심하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내 공부 할 일이라 생각하며 하니까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들어오고 선원의 위상 내지 일도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가능성은 부처님의 원력을 바탕에 두고 부처님 제자로써 따르려는 제 원력이 합해진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 자 출가는 언제 하셨는지요?
스 님 28살에 했습니다.
기 자 스님께는 젊은이들이 많이 따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 님 젊은이들이 따른다는 생각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공부중이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과 같이 살 때 저는 말을 최대한 안합니다. 그들과 차 마시고 정보를 나누어주고 남성들과는 허그(hug)도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저를 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스님이라는 생각이 없다보니 가르쳐야 한다거나 스승이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배우고자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수행자(修行者)라고 생각합니다.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가르치는 일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가르치는 일은 최대한 줄이려고 합니다.
제가 홍대선원 주지 이다보니 법문이나 강의를 할 수 있으나 하지 않았습니다. 선원을 만들고 1년 넘게 그냥 같이 살기만 했습니다. 예불하고, 설거지, 청소들을 그냥 함께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공동체 생활은 굉장히 어려워요. 선원(禪院)이 생긴지 1년 즈음 지나고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법문을 요청하였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대간(世代間)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이 매우 성숙해져 있는 것과 엄청난 정보력으로 이미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원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헌데 어른들은 “나 때는 말이야~~”하면서 가르치고 지적하려하시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고 단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른들의 마음도 100프로 이해합니다. 어른들께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셔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어른들의 삶을 눈으로 직접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른들의 말씀이 잔소리, 훈계로 받아드려 질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뼈 빠지게 고생해서 이루진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세대간(世代間)의 소통의 어려움의 또 다른 원인인 것 같습니다.
기 자 스님! 출가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스 님 보살님 만나려고요!
기 자 네.
스 님 왜 그런지 아세요? 출가는 도(道)를 깨치려!, 부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부처란 무엇이
고 도란 무엇이냐면 지금, 이 순간입니다. ‘돈오(頓悟)’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순간순간을 산다는 것으로, 출가의 목적이나 태어난 이유를 묻는다면 이 순간을 살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 자 실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스 님 맞습니다.
기 자 스님! 미국에 사셨다고요?
스 님 미국에 간 것은 이모가 미국에 살고 계셔서 어렸을 때 가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78
년생인데 우리 때만해도 미국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었습니다. 중 2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는데 저는 엄마와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에 대한 무상(無常)을 봤어요. 사랑, 결혼? 이게 뭐지? 하면서 나는 내 갈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사업가셨는데 저하고는 친구 같은 사이였습니다. 어머니께 “저 미국가고 싶으니 보내주세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부탁드렸는데 안보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서포트(support) 해준다 하셨는데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허락해 주실 것이지를 다시 여쭈었더니, “중학교 졸업 할 때 전교 10등 안에 들면 보내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년간 최선을 다해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때에 “그래 내가 10년간 투자를 하겠다. 내 고귀한 삶의 10년을 너에게 바치겠다.”고 엄마가 말씀하셨고, 저는 미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기 자 그럼 미국에서 대학도 다니셨겠네요?
스 님 네
기 자 어떤 계기로 출가하셨는지요?
스 님 대학생 때 교통사고가 나서 생사(生死)문제에 걸렸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출가(出家)’를 했습니다. 즉 발심(發心)을 한 것이지요. 그러고 있는 중에 인연복이 많아서 숭산큰스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고, 현각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괴로움, 윤회를 벗어나려면 내가 스스로 깨달아야겠구나! 그래서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들어와 화계사에 갔습니다. 첫 안거(安居)를 시작한 것이지요. 그 때의 화계사는 출가(出家), 재가(在家)를 받아주었습니다. 출가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마음의 출가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지요. 괴로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캐야겠다고 생각했고 숭산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 자 수행은 잘 되었는지요?
스 님 사실 운전사고 때 제가 운전을 했는데 같이 있던 친구가 코마상태 (coma state)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있는 아주 어려운 감정으로 저는 2개를 꼽습니다. 그중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란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저는 부처님이 왜 출가를 했는가? 의 이유를 부처님께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것으로 유추해보기도 했습니다. 의도는 없었지만 부처님의 탄생으로 인하여 어머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의 태어남이 곧 어머님의 죽음이었다는 죄책감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저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친구의 상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괴롭고 분하셨을까요? 아들을 미국에 보냈는데... 식물인간이 되었으니까요. 그 친구는 매일, 매일이 생(生)과 사(死)의 갈림에 있었고 저는 지옥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한국학생회 회장이었는데 보도가 매일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옥의 끝까지 가본 것 같습니다.
그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숭산큰스님의 ‘선의 나침반’(compass of zen)을 읽었습니다. 운전 사고는 1999년 11월 6일이었고 선의 나침반은 2000년 2월 정도에 나왔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다! 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선의 나침반을 읽으며, 이것이다! 는 앎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생부터 수행을 해왔던 것으로, 때가 왔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행의 DNA가 제안에 있는 것이라 몸이 반응한 것이겠지요.
기 자 그 친구는 코마상태에서 회복되었는지요?
스 님 네, 나아졌습니다.
기 자 다행입니다. 긴 세월 수행해오셨는데 Just Be가 온전히 되십니까?
스 님 온전히 된다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기 자 마음의 출가에서 모습의 출가까지 하신 동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스 님 마음의 출가로 수행을 하는 중에 나름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 모든 것이 꿈이구나!
사실 안거(安居) 3주째에 지옥의 끝까지 갔습니다.
좌선을 하는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 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선을 나침반을 읽고 미국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 생의 첫 도반(道伴)이 생겼습니다. 미국인친구였는데 “화계사가서 같이 안거 할래. 나도 생사문제 해결해야겠어.”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 전 날 배신을 했습니다. 그 배신이 저에게는 너무 컸습니다.
저에게 두 가지 제일 큰 감정의 2번째가 배신입니다. 미국을 떠나기 전날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친구가 “한국 불교는 혖이크(fake)고 숭산스님도 혖이크(fake)야.” 하면서 안거에 못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 것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숭산큰스님은 지옥 같은 어두운 제 삶의 유일한 빛이었고, 긴 시간을 함께 공부했던 제 삶의 첫 도반인 친구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반이 한국에서 안거하는 것이 두려워하는 못가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와 숭산큰스님을 Fake라하니...그 날 밤 배신의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 안거 중인데도 좌선(坐禪)때마다 이 배신을 어떻게 갚을까하는 한 생각에 꽂혔습니다. 복수를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멋지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도(道)를 깨친 다음 그 친구를 껴안아 줄까? 아니면 화두를 던져 꼼짝 못 하게 해줄까?
기 자 아주 힘드셨군요! 그 친구의 어떤 태도가 그렇게 힘드셨나요?
스 님 부처님께서 “도반(道伴)이 전부다!”라고 하신 것처럼 제게도 도반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처절한 상황에서 깨달음의 길을 가려했는데 그 길을 같이 가겠다는 동반자가 생겼다는 것은 제게는 너무 큰 의미였는데 그것이 배신과 거짓으로 무너진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째 앉기만 하면 그 생각에 빠졌습니다.
몸과 마음은 만산창이가 된 상태에서 안거를 하다 보니 더 어려웠습니다. 상기(上氣)가 되면서 그
생각을 더 이상 안하고 싶은 방법으로 화계사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벼락이 쳤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Sudden Enlightenment) 다 꿈이구나! 모두 꿈속의 일이구나! 전부 자기 생각에 걸려 스스로 괴롭히며 살고 있구나! 이 괴로움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구나! 주저앉은 다음 깊은 지관삼매(止觀三昧)에 들어갔습니다.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클리어(clear)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전도망상이란 꿈에서 깨어난 것이었죠. 그러나 꿈인 것을 확실히 본 것이지 체득(體得)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가 진짜 수행이었습니다. 체득하기 위한 수행을 하려 나를 두려움 속에, 호랑이 소굴에 들어가는 수행을 했습니다.
기 자 체득의 중요성은 무엇인지요?
스 님 강도가 칼을 들이댄다면 그 때도 편안한가?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100미터 번지점프 앞에
서보면 심장박동수가 달라집니다. 다리가 후둘 거렸습니다. 다시 올라가 해보니 훨씬 나았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3번째에서는 환희심으로 세상에 절을 하고 뛰어 내렸습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두려움이 공(空)한 것이며 실체가 없다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요. 다들 글이나, 말로 식(識) 놀음을 하고 있어요. 체득하러 산(山)에서 세상(世上)으로 나온 것입니다. 사실 별것 아닌데도 코로나라는 시기라는 것에 관심이 커졌다고 봅니다.
대단한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휘청거리는 상황에 홍대 앞이라는 젊은이들의 거리에 세운 Just Be를 세워 나누는 것이 잇슈(Issue)가 된 것이지요.
기 자 스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스 님 한국불교의 정신적인 보물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처처(處處)의 문화 장인들을 만나게 해
주는 것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프로젝트는 Just Be! 히말라야입니다.
부처님 탄생지인 안나푸르나 (8091m) 산기슭 아래, ‘포카라’라는 호수도시에 대한민국 최초의 선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 순례(巡禮)길을 (Siddhartha Road) 만들어 전 세계 많은 불자들이 ‘참나’를 화두로 길을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기 자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 님 묻는 그 놈은 무엇입니까?
인터뷰한 날: 4월 30일
인터뷰한 곳: 홍대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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