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재~황장산~큰재~귀내미고랭지밭~자암재~환선봉(지각산)~덕항산~구부시령~예수원 하사미동(14.7km, 5시간)
삼척시 미로면 산기슭 따라 이삼 십 분 꾸불꾸불 곡예하듯 현기증으로 오르면 댓재다. '대나무가 많아' 댓재(竹嶺/竹峙, 810m)라 하지만 이 북부 고지에 대나무가 자랄 리 없고 주변에 산죽이 많아 이름 붙인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하자 느닷없이 휘몰아치는 삭풍에 몸뚱아리 허우적거리고 볼태기와 손가락은 감각을 상실하여, 표지석만 간신히 인증하고 들머리 숲으로 얼른 몸을 피한다. 그곳도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황장산 급경사 오름길엔 산죽군락이 키를 잔뜩 낮춰 숨죽이고 있고, 워밍업 안 된 허벅지는 엄청 헐떡거린다. 정상부는 문경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짜릿한 황장산에 비하면 뭐 초라한 모습이다.
황장산에서 큰재까지는 오르내림이 그리 심하지 않은 별 특징 없는 평탄한 길을 낸다. 조망이 거의 없으나 이따금씩 보여주는 삼척 너머 동해바다는 뭉게구름 높이 피워 올려 하얀 하늘장막 치고 있고, 차렷자세로 고분고분 줄지어 서있는 이깔나무 군락은 그나마 볼만하다.
큰재 지나 임도따라 가다보면 오늘 산행 중 볼거리 중 하나인 거대한 풍차와 고랭지밭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행 내내 유령처럼 따라 붙는 성가신 찬바람보다 훨씬 더 큰 굉음을 내며 자기 임무에 충실한 풍력발전기들은 오늘만은 칭찬 많이 받을 것 같다.
이윽고 비정한 광동댐 건설로 정든 고향땅 서럽게 수장시키고 쫓겨나듯 이곳으로 이주해와서 척박한 산비탈을 굳은살로 아프게 깎아 개간한 고랭지 채소밭. 오랜 세월 푸르름 잃고 황토색 아픔으로 환자처럼 누워있었지만, 이젠 그 고통스런 땀을 어느 정도 보상 받고 있을지. 이 광활한 고랭지밭 아래 귀내미골엔 몇 채 안 되는 건물들이 세찬 바람을 피해 웅크리고 있다.
밭 사잇길 지나 능선 봉우리 넘으면 환선굴로 내려설 수 있는 자암재이다. 지난 이른 봄, 건의령을 출발해 가랑비에 자욱한 산안개 속을 잃어버린 시력으로 덕항산 지나 이곳에서 환선굴로 미끄럽게 내려 갔었지. 급한 내리막 바윗길은 아찔하지만 천연동굴과 주변 기암괴석 즐비한 환상적인 코스다.
자암재에서 환선봉 가는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지친 상태에서는 은근히 힘든 구간이다. 환선봉 정상석 너머 바위전망대에 서면 아찔한 절벽아래로 펼쳐진 환선골의 멋진 첨봉들이 쌓인 피로를 확 풀어준다.
환선봉에서 덕항산까지는 동쪽 깎아지른 낭떠러지 구간으로, 몇 백 년 늙은 세월 까마득히 지켜온 아름드리 노송 더불어 쫄깃한 심장으로 멋진 경관을 힐끗거리며 걸을 수 있다. 덕항산 정상은 키작은 표지석만큼이나 확트인 조망이 없어 좀 아쉽다.
정신 나간 구부시령 표지봉 지나면, '아홉 지아비 서럽게 섬긴' 어느 아낙네의 애절한 운명 서려 있는 구부시령(九夫侍嶺)이다. 그 서러움을 돌무더기로 쌓아 올려 놓고 있다.
여기에서 날머리 예수원 지나 하사미동 내림길은 넓직하고 평온하여 치열함을 떨쳐버리고 여유롭게 힐링할 수 있다.
아직도 이곳 외나무골 다리 위엔 진드기 황소바람이 유령처럼 달라붙는다.
첫댓글 글과 사진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산행 함께 이어가시죠
깊은바다님! 안녕하세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징검다리라서 자주 뵙지는 못하겠지만,
즐거운 산행길 함께 할 기회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새해엔 더욱 건강한 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닉이 넘 좋으네요
어느분인지 생각이 나질 않 네요
한장 의 사진 만이라도보여주심 바랄 뿐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림자a 감사합니다. 그림자a님!
모델이 좀 거시기해서~~~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리 해보겠습니다.
늘 건강한 산행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