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자면 말여/최재경
쑥국새가 울다가 슬며시 사라졌다면 말여
속앓이하던 깨구락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말여
어지간이 여름일 시작되었다는 얘기여
나절 가웃 자빠져서 민기작거리다가 뻔뻔하게끔
점심상 내오라고 성질부터 내는 꼬락서니 하고는
싸그랑 비가 내리다 말고
쨍볕이 내려 흐지부지 하루가 간다면
여름이 말여 솔찬히 익었다는 얘기여
찬물을 끼얹고도 끈적거리기는 매한가진디
옆댕이에 착 붙어서 수작을 부리는 거 하구
햇무리 구름이 뭉개졌다 새털처럼 흐트러지고
달개비가 피어나 어쩌자고 자꾸 피어나서
대추 같은 다래가 들큰하게 익어 간다면
이제 여름도 어쩌지를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여
억척으로 살다가도 걸핏하면 종일을 울거나
몇 날 며칠을 악을 쓰고 울다가
빈 껍질로 사라지는 매미 같다는 얘기여
얘를 들자면 말여
<시 읽기> 예를 들자면 말여/최재경
예를 들자면 말여. 뜬금없이 무슨 예를 든다는 말인가? 이 시는 그런 뜬금없음이 묘미. 그러한 못 갖춘마디 미완의 형식에 시의 자유로운 발상과 구성이 펄떡이며 전개된다. 최재경 시인 또한 그런 사람. 형식과 구속을 못견뎌하는 사내. 논산의 벌곡이라는 자연 속에 완전 자연이 되어 살다가 대전으로 나와 그 자연을 절대 잊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 이 시에도 그의 그러한 속내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그것들 하나하나 가까이 하고 마음 나누며 언제라도 그윽이 교감하곤 한다.
그에게는 자연의 미세한 변화도 그 자체로 머물지 않는다. 천행건天行建 우주를 움직여가는 힘은 필시 그 이치와 흐름이 있을 터. 쑥국새 울음이 사라진 줄 미천한 우리 어찌 알까마는 그는 계절의 흐름으로 익히 알고 있다. 이어서 개구리 소리가 사라지면 턱 하니 우리 앞에 여름이 와 았는 중. ‘깨구락지’, ‘나절 가웃’, ‘민기작거리다’, ‘솔찬히’, ‘싸그랑’, ‘들큰하게’ 등 시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충청도 사내의 육성은 이 시의 또 다른 자연의 생명력, 토박이 시인의 사투로 살아 오른 감성은 척척 붙임성이 된통 강하다. 예를 들자면 말여. 예를 들자면 말여. 이 시는 오래 묵은 토장국이란 말여.
―김완하, 『김완하의 시 속의 시 읽기2』, 맵시터, 2015.
첫댓글 이 시가 주는
입말과 토착어가 주는 펄덕거림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창밖에는 눈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