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며칠 전 평신도 관련 모임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교회 관련 이야기로 이어졌고,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주교님을 뵈었더니, 교회가 바뀌려면 사제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데요.” 그러자 다른 분이 말을 받았다. “그런데 신부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주교님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분이 말을 계속 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분이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요즘 주교님들에게 압박을 아주 많이 가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하는 말도 나왔다.
그러던 중 대화를 나누던 분 가운데 한 분이 예전에 모시던 본당 신부 이야기를 꺼냈다. 그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정리하면 이랬다.
성전 신축이 눈앞의 과제이던 본당에 주임신부가 새로 부임했다. 주임신부는 사목위원 중 한 분에게 교육과 영성 부분을 담당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자신은 성전 신축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신자들은 대부분 14~15평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신부는 신자들이 전세로 마련해 준 사제관 전세금을 빼서 성전신축기금으로 봉헌하고 자신은 제의실을 숙소로 이용하면서 성전 건립에 열중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신자들은 한마음이 돼 성전 짓는 일에 동참했다. 평일 새벽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벽돌 몇 장이라도 나른 후에 집으로 가고, 일터로 출근했다.
그런데 성당을 처음 계획한 설계 도면대로 짓지 못할 일이 생겼다. 성당이 들어설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집이 있었는데 아무리 집을 팔라고 요청해도 집 주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흔히 하는 말로 ‘알박기’라고나 할까. 본당은 할 수 없이 설계 도면을 바꿔 크기를 줄여 성당을 짓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성당 신축이 계속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집 주인이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집을 팔겠다고 나왔다.
본당 건축위원들은 처음 집 주인에게 제안했을 때의 반값으로 계약했다. 그리고 기뻐하면서(?) 주임신부님에게 이를 보고했다. 하지만 함께 기뻐할 줄 알았던 주임신부님의 반응은 그 정반대였다. “아닙니다. 처음 본당에서 제안했을 때의 값을 다 드리도록 하세요.” 계약을 하면서 집 주인은 울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집 주인은 신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신자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에 수많은 이가 감동한다. 하지만 이 땅의 우리 목자들 가운데도 이런 사제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 사는 사제 모습을 전하기보다는 잘 못하는 사제의 험담을 늘어놓는 데 더 익숙한 것 같다. 그 신부 이야기를 꺼내신 분은 예전의 여러 경험을 토대로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못한다고 지적하고 질타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낸다”고 강조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책도 있지 않은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는 복음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이 더욱 잘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야 한다”(42항)고 강조한다. 그러고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이 힘이 있는 것도, 앞에서 이야기한 그 신부님의 일화가 감동을 주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 아닌가.
“우리는 모든 종교적 가르침이 복음 선포자의 생활방식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친교와 사랑과 증언으로 마음의 동의를 일깨울 수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4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