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2000년 부터 통신성서 공부를 했다.
6년 째 공부를 하는 도중 2005년 여주로 이사를 했는데
우리 집 가까이에 바오로 딸 '사도 모후의 집'이 있어
수녀님들과 가까이 지냈고
여주에서도 계속 공부를 하여 6년 수료를 했다.
바오로 영성 2년 과정은 잠시 중단했다.
여주에 계신 수녀님의 추천으로 바오로딸 교육원에서
평가자로 의뢰를 받아 2년간 평가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성서공부를 계기로 2막인생을 여주에서 시작하기도 했고
바오로딸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제주로 이사를 와서 바오로 영성을 마침으로서
총 8년의 성서공부를 마무리했다.
통신성서를 통해 맺어진 나의 인연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연수회에서 만난 수녀님
2002년 여름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연수회가 있었다.
그동안 배운 부분에 대해서 신부님의 종합적인 강의도 있고,
조별(10명 내외)로 그룹을 편성해서 2박 3일간 모임, 발표준비도 했다.
당시 우리 조에 속해 있던 수녀님이 본인을 소개할 때에
여주 우리집(소임지) 주변은
가을이면 앞산, 뒷산이 온통 빨갛고 공기도 맑아 좋다고 하셨다.
수녀님의 말씀이 한 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2005년 봄, 은퇴한 후 살 곳을 찾아 한 달 이상 헤메던 중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해 포기하려는 순간
문득 그 수녀님 말씀이 생각나서
그 동네로 찾아갔고 결국 그 곳에서 2막 인생을 펼쳤다.
이후 여주에서 가끔 뵙고
종신서원을 앞둔 시점에는 기도부탁도 하셨고
종신서원식에는 우리 부부가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영성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카톡을 주고 받고 지금까지 20년 이상 연락을 하고 있다.
매년 감귤을 보내고 수녀님은 공주산 밤을 보내주신다.
2. 평가자와의 만남
2001년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연수하고 있는데,
담당 수녀님께서 나를 찾았다.
부산에서 오신 한 형제님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가서 만나보니 그 형제님은 부산신학대학교 학생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답안지 평가자였다.
사연인즉, 청주부근에 올 기회가 있었는데
연수회에 와서 당신이 평가하는 학생들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에
부산으로 가지 않고 연수회에 오신 것이다.
매 답안지에서 평자자란, 학생란에서 소식을 주고 받았고
답안지에 정성스레 멘트를 달아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
사제품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대학원 학생이었는데
신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 평신도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들을
근처 찻집에서 1시간 가량 나누고 헤어졌다.
특히 나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당신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칭찬해 주셨다.
당신이 평가하는 학생을 격려해주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신 학생(신부님)은
주님께서 맺어주신 인격적 만남이지요.
지금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제서품 20년이 넘어 은경축을 앞두고 계시겠지요.
이제부터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 중에 기억해야겠다.
3. 성경 필사(신앙체험 1)
연수회 마지막 날 각 조별 발표회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극이 대부분이지만 신앙체험 발표도 합니다.
2명의 신앙체험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의 광야시절(1999년~2000년)을 겪으면서 성경필사를 시도했지만
완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연수회에서 70대의 자매님의 체험발표를 듣고는
다시 성경필사를 시도해서 3번의 완필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표하신 자매님은 60대에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저녁에 귀가하면 늘 집안에 불이 켜져있었는데
남편이 돌아가시고는 어두운 집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혼자서 밤을 보내는 것이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고 외로워서 우울증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녀님 한 분이 성경을 필사해 보라고 해서 시도했는데
필사하는 동안은 잡념이 없이 평화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필사를 발표 당시
7번을 완필했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 생활하시지만
주님과 함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나도 시도하고 싶은 마음에
성경필사를 하게 되었고
여주에서 1번, 제주에서 2번 완필을 하게 된 것입니다.
4. 하느님께 봉헌된 아들(신앙체험 2)
나는 미혼 때 수도자 성소의 부르심을 느꼈지만,
수도자는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티없이 깨끗한 영혼을 가져야만 되는 줄 알고,
자신의 성격이나 삶의 모습이
수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포기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에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뭔가 개운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마음이 편치 않아, 남편과 상의한 끝에
첫 번째 갖게 되는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하느님께 봉헌하자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첫 아이가 남자였는데 세례명을 요한이라고 짓고,
그 아이를 위해 모든 정성을 바쳤습니다.
보통의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성도
자신의 모든 희생을 바쳐가면서 하는데,
하느님의 자식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더욱 정성을 들였지요.
말을 할 때 쯤인 3살 때부터 아이와 함께
성모송을 서로 교송으로 할 정도였고,
아이를 잠재울 때나, 일어날 때 항상 안수 기도를 하고,
평상시에도 아이를 위해,
아니 하느님의 자식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요한이는 부모의 의도대로 착실하게 자라났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하느님의 말씀에 맞갖은 생활
즉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신.구약을 3번 통독하였고,
신약성서는 재미있다고 하면서 수시로 읽었습니다.
몇 년 전, 좀더 시골마을(강원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곳 성당에는 젊은 봉사자들이 부족하여
남편과 함께 본당의 일을 많이 맡아 하게 되었고,
요한이는 복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성당에서는
성가정의 모범으로 우리 가정을 생각하였고,
우리는 더욱 더 요한이에게 정성을 바치며
하느님 대하듯이 애지중지하며 키웠습니다.
2001년 요한이가 5학년 때 어느 날
저는 전례를 하였고 요한이는 복사를 하였습니다.
미사 후 요한이가 친구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했을 때
잘 다녀 오라고 하면서 보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요한이 이야기를 하면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 곳은
그 해에 몹시 가뭄이 들어서 강바닥이나 냇가가
모두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는데,
물이 고여있던 2 미터 깊이의 소에 빠졌던 것입니다.
5년 전 부부가 꾸르실료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남편이 갔다 와서는 피정 중에
주님께서 나에게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쳤듯이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칠 수 있겠느냐고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요한이의 죽음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지요.
사고 사실이 성당에 알려져
많은 교우들이 와서 연도를 해 주시는데,
연도 중에 부모나 형제에 대한 기도는 있지만
자식에 대한 기도는 없었지요.
그래서 자유 기도를 바치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그리고 입을 통해서
주님께 대한 찬미를 드리고 있었답니다.
즉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11년 동안 이나 요한이를 맡겨주시고,
저희에게 키우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께서 거두어 가셨으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하고 말하자
주위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깜짝 놀랐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셨고,
요한이의 장례식장에는
그동안 쉬었던 교우들이 많이 참례하였고,
요한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교장선생님과 전교생이
요한이가 가는 마지막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후 쉬는 교우들이 많이 회개하여 성당을 찾았고
학생들을 비롯한 비신자들도
많은 분들이 교리를 받게 되었으며,
그 당시 성당의 단체에서는 불협화음 등이 많이 있었는데
요한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주님 안에 하나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요한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 봉헌하여
사제의 길을 가는 뜻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사제의 길’ 보다도
더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쓰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나 시기는 달라도
꼭 우리의 기도에 대해
응답을 해 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더욱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서 원하실 때,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는
굳은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과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매님은 한 때 목이 메었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듣는 우리들은
모두 감동의 눈물을 내내 흘렸습니다.
자매님께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참 신앙이 무엇인지 배웠던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인연들은 주님을 통해서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경공부를 도구로 소중한 인연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도 저의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네...
참으로 편안하신
세잎 클로버 님의 인생길을 오늘도 가 봅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