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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18) 교회의 ‘신앙 고백’인 ‘신경’
하느님의 일, 참된 믿음 고백하는 데서 시작
정신없이 살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덥다’와 ‘춥다’로 표현하는 단순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잠깐 멈추어 주변의 꽃과 나무,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참 이쁘다’라는 감탄,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백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렇게 감성에 열린 마음이면 인간 역사에 개입해 당신 사랑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깨닫고 그분에 대해 고백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라고 했지요.
신자들은 강론 후에 잠시 침묵을 하면서 막 들은 복음과 강론을 묵상하고 한 목소리로 ‘신앙 고백’(Professio fidei) 곧 ‘신경’(Symbolum)으로 하느님 말씀에 응답합니다. ‘신앙 고백’이 처음 행해진 곳은 ‘미사’가 아니라 ‘세례’입니다. 성 치프리아노(+258)가 처음으로 세례 때 행하는 신앙 고백에 ‘상징’을 뜻하는 ‘Symbolum’이라는 용어를 적용합니다. 특정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 간의 상호 식별과 인정 수단인 ‘Symbolum’을 신앙 고백에 사용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믿음이 다른 종교와 구분되게 하는 ‘상징’이라는 의미이지요
다양한 신경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경 예루살렘의 세례 고백문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 초엽 히폴리투스 교부가 저술한 「사도전승」에 수록된 세례 고백문입니다. 미사 중에 신앙 고백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5세기 후반이며, 안티오키아 교회가 가장 먼저 도입하였고, 6세기 말경에는 스페인의 톨레도 시노드(589년)를 시작으로 하여 갈리아 등 서방에도 번져갔습니다. 당시 교회가 미사에 신경을 도입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던 아리아니즘 이단을 막고 믿음의 기본 도리를 확고히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신경의 위치가 현재와 같이 복음 후로 변경된 시기는 8세기경이었으며, 1014년에 이르러 로마 전례에서는 신경이 미사에 들어왔습니다.
현행 로마 전례에서는 두 신경, 곧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을 바칩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예루살렘에서 사용하던 세례 신앙 고백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신경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거쳐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결정된 교회의 공식 신경입니다. ‘사도 신경’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의 세례 신앙 고백에서 발달했으며, 3세기경에 이미 기본 골격이 형성됐습니다. ‘사도 신경’이라는 명칭은 성 암브로시오가 393년에 성 시리치오 교황(재위 384~399년)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 및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미사 때에 사제와 교우들이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합니다. 신경을 바칠 때, 구원의 시작인 주님의 탄생과 관련된 구절에서 깊은 절을 하여 육화의 신비와 파스카 신비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5000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라고 묻는 군중처럼, 많은 신자들 경우 자신이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과 신앙생활을 동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라고 하시며, ‘먼저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답하십니다.
[기도하는 교회] 성체를 ‘성직자에게 받아서’ 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체는, 인간의 능력으로 대가를 지불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무상으로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교우가 스스로 성체를 집어 영하거나 다른 이에게 건네주지 못하게 하는 것은,(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0항; 구원의 성사 94항) 인간의 능력으로 대가를 지불하여 성체를 얻을 수 없음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반드시 성직자를 통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총지침 161항; 구원의 성사 92항) 성체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사랑의 선물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성직자(사제와 부제)는 ‘정규 성체분배자’로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합니다. 사제는 성체성사의 고유한 직무자로서 스스로 성체를 영하고 분배합니다.(구원의 성사 98항) 부제는 사제직에서 흘러나오는 성체성사의 직무를 받아 성체를 분배하기에 스스로 성체를 영하지 않고 사제에게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총지침 182항, 249항; 주교예절서 16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령 해석을 위한 교황청립위원회의 1968년 3월 26일자 답서)
‘비정규 성체분배자’는, 성직자만으로 성체를 분배하기가 곤란한 상황에 한정하여,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 사제의 요청에 의해 성체를 분배합니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합당한 이유 없이, 자신은 성체분배를 하지 않으면서, 그 직무를 비정규 성체분배자에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총지침 162항; 구원의 성사 88항, 157항)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79. 미사 해설 – 마침 예식 (2) 강복 (1)
마침 예식
140. 필요에 따라 사목 권고나 공지 사항을 짤막하게 한다.
강복
141. 그다음에 파견을 한다. 사제는 팔을 벌리고 교우들을 향하여 말한다.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사제는 교우들에게 강복한다.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교우들은 응답한다.
◎ 아멘.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통해 영육 간에 힘을 얻은 교우들은 미사의 마지막 부분인 마침 예식에 참여 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돌아감, 파견은 마침 예식의 일부로서 “강복”과 “파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강복에 앞서, 본당 소식이나 간단한 공지사항은 마침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하게 되는데, 공지사항이 길어 미사의 은총을 감소시키는 내용을 공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지사항의 길고 짧음의 판단보다는 우리 공동체에게 필요한 소식에 함께 귀를 기울이고, 많은 관심과 기도를 하는 것은 공동체에 소속된 이들로서 합당한 자세입니다.
이어서 사제의 강복이 이어집니다. 교황과 주교님들은 오래 전부터 미사 끝에 강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미사의 한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교우들이 퇴장할 때 그들 위에 십자 성호를 그음으로써 강복을 주었는데, 이는 현재도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의 행렬에서 유효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교우들에게 강복을 줄 주교가 없을 때도 강복받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11세기에 사제들을 통해 강복을 주게 되었는데, 주교처럼 퇴장하는 동안 반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딱 한 번만 제대 위에서 하는 것으로 형식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강복의 모습은 1604년에야 비로소 예식화되었습니다. 강복 안에서의 삼위일체적 구조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로부터 오는 거룩한 은총에 힘입어 교우들은 새로운 힘을 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을 받습니다. 강복을 받음으로써 신앙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지고, 평화로이 우리의 삶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강복의 특징입니다. 또한 세상을 위한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애정을 증명하는 표징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복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잘 살고, 부자가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힘을 받아, 주님과 함께, 주님을 드러내며 살아갈 힘을 준다는 측면에서 강복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2024년 5월 5일(나해)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부국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80. 미사 해설 – 마침 예식 (3) 강복 (2)
140. 특별한 날이나 상황에서는 예식 규정에 따라 이 강복 대신에 장엄 강복이나 백성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644-662면 참조).
① 장엄 강복 (Benedictiones sollemnes)
위에 소개해 드린 미사 예규 142항에서 “특별한 날이나 상황에서는 강복 대신 장엄 강복”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로마 미사 경본 “미사 끝 강복과 백성을 위한 기도” 부분에서는 장엄 강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미사 예규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강복은 미사, 말씀 전례, 성무일도, 성사 거행 끝에 사제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부제가,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다 함께 고개를 숙이고 강복을 받읍시다.” 하고 권고할 수 있다. 이어서 사제가 교우들을 향하여 팔을 펴 들고 강복을 하면, 모두 “아멘.” 하고 응답한다.
로마 미사 경본에서는 장엄 강복에 대해서 다음의 시기로 구분하여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제시된 시기에는 주례자의 권한에 따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림 시기, 주님 성탄, 새해, 주님 공현, 주님 수난, 부활 시기, 주님 승천, 성령 강림, 연중 시기 1~6,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 사도 축일, 모든 성인 축일, 성당 봉헌일,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장엄 강복을 이해할 때, 장엄 강복이 일반 강복보다 더 큰 복을 받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장엄 강복과 강복의 차이는 복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강복은 이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이 있기를 바라며 축복을 기원하는 것이고, 장엄 강복은 강복과 같은 개념에서의 청원이지만, 특별히 말씀이 삽입되어, 구체적인 기도 내용과 말씀을 통해 축복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② 백성을 위한 기도 (Oratio populum)
미사 끝이나 시간전례에서 사제의 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파견 축복입니다. 백성을 위한 기도는 장엄 강복에 지향이 3개 있는 것과 달리 지향이 1개만 있는 강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말한 다음, 부제나 사제가 “다 함께 고개를 숙이고 강복을 받읍시다.” 하고 말합니다. 이어서 사제가 교우들을 향해 팔을 펴들고 백성을 위한 기도를 하면 모두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기도가 끝나면,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하고 강복합니다. 2017년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새롭게 펴낸 미사 경본에 의하면, 사순 시기 주일에는 이 기도를 바쳐야 하고, 사순 시기 평일에는 “자유로이 바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로마 미사 경본에서는 28가지의 기도문을 제시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7) 성당에 ‘피엑스(PX)’가 있다?
예수님 이름 나타내는 '크리스토그램'
- 키로 십자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ⅩΡⅠΣΤΟΣ)의 앞 두 글자를 따서 만든 기호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모노그램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모노그램을 크리스토그램이라고 한다.
형제님들이 모이면 하는 군대 이야기 중에 종종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성당에 ‘피엑스’가 있는 줄 착각하고 일어난 사연입니다. 이등병 시절에 성당에 피엑스가 있는 줄 알고 선임병 몰래 성당에 갔다던가, 같은 이유로 천주교 종교행사에 참가했다가 실망했다던가 하는 이야기지요.
피엑스(Post eXchange)는 군대에 있는 일종의 매점입니다. ‘어떻게 성당에 피엑스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라며 우스갯소리로 여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건의 발단은 교회에서 아주 자주 쓰이는 기호에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떠올리셨을 것 같은데요. 바로 기다란 P의 기둥 아래에 작은 x모양이 합쳐진 형태의 기호입니다. 힘든 군 생활 중 마음을 달랠 군것질이 간절한 장병들이기에 이 기호를 보고 오해하게 된 것이지요.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일단 이 기호는 ‘피엑스’(PX)라고 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엑스피(XP)도 아닙니다. 그리스어 ‘크리스토스’(ⅩΡⅠΣΤΟΣ)의 앞에 두 글자를 따서 만든 기호지요. 바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글자라기보다는 기호다보니 ‘그리스도’라 불러도 되고, 사용한 글자대로 읽자면 ‘키’(Ⅹ)와 ‘로’(Ρ)를 합친 것이기에 ‘키로’라 읽을 수 있습니다. ‘키로 십자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합친 기호를 모노그램이라 하는데요. 특별히 ‘키로’처럼 ‘예수 그리스도’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모노그램을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이라 합니다.
크리스토그램에는 ‘키로’ 외에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IHS’ 혹은 ‘IHC’는 예수(ΙΗΣΟΥΣ)의 그리스어 표기의 첫 3글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시그마(Σ)가 발음을 따른 S와 모양을 따른 C로 변형된 것이지요. 그리고 ‘IC XC’는 이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크리스토그램입니다. 그리스어 ‘예수 그리스도’(ΙΗΣΟΥΣ ⅩΡⅠΣΤΟΣ)의 약자입니다. 이콘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동방교회에서 널리 쓰인 크리스토그램입니다.
교회는 예로부터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 불렀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예수님의 이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예언자,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는데,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공경하는 고유한 칭호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임금이요, 사제이며, 예언자이시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자 메시아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하신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어딘가에서 크리스토그램을 발견하셨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17) 파스카 초의 상징
'파스카 초'가 되어 세상 비추는 신앙인 되길
제단 위에서 빛을 밝히는 파스카 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옛 추억이 있습니다. 하얀 눈이 덮인 설악산을 보좌 신부님과 선배 신학생들과 함께 등산하면서, 전날 내린 눈으로 인해서 없어진 길을 헤치며 오르다가 해가 떨어지며 어두워지는 즈음에 만난 ‘산장의 불빛’이 파스카 초 촛불에 오버랩됩니다. ‘어둠의 골짜기’(시편 23,4)에서 만난 희망의 빛이었지요.
예전에는 ‘파스카 초’를 ‘부활 초’라고 했었는데, 현재 전례서에서는 ‘파스카 초’라고 합니다. 이유는 라틴어 ‘Cereus paschalis’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파스카 신비에서 하나의 사건인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의 파스카 신비’(「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7항) 전체를 드러내는 초의 상징성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파스카 초의 유래는 어떤가요? 이 초는 파스카 성야를 많은 횃불로 밝히던 초대교회에 널리 알려진 관습에서 유래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 크기의 초로 파스카 성야 동안 하느님의 집에 필요한 빛을 밝히던 로마 관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를 축복하는 관습은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로마 바실리카에서만 국한된 관습이었으며, 5세기까지는 교회 전체에 퍼지지 않았습니다. 갈리아 전례에서 파스카 초는 단 하나의 큰 초로 제한했으며, 갈리아의 신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한 상징성을 지닌 우의적인 요소들로 초는 장식됐습니다. 그 요소들로써 다섯 개의 향 덩이로 이루어진 십자가와 알파와 오메가와 당해 연도는 자유재량으로 남았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께서 ‘모든 거룩한 밤샘 전례의 어머니’라고 칭송한 거룩한 밤인 파스카 성야에 봉사자들은 성당 앞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에 불을 지피고, 주례자는 그 불을 축복하여 파스카 초에 옮겨 붙임으로써 전례가 시작됩니다. 이 파스카 초는 칠흑같이 어두운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행렬 맨 앞에서 행렬을 이끕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하시고 밤새 앞장서 이끄시며 자유를 향해 밝혀주셨던 불기둥을 연상시킵니다.(탈출 13,21 참조) 다른 한편으로 파스카 초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전에는 자연적으로 불을 얻기 위해 부싯돌의 불꽃으로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 불꽃은 돌무덤의 어둠에서 부활하시어 걸어 나오는 그리스도를 연상시킵니다. 파스카 초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파스카 초를 선두로 제대를 향해 들어가는 행렬은 세 차례에 걸쳐 멈추어 서고, 그때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독서대 옆이나 제단 안에 마련된 촛대에 파스카 초를 놓은 다음, 빛의 예식을 마무리하는 ‘파스카 찬송’(Exsultet)을 독서대에서 노래합니다. 곧 파스카 초를 옆에 놓은 독서대는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전례 공간입니다.
부활 시기 동안에 독서대 옆이나 제단에 마련된 촛대에 놓여있는 파스카 초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지난 후에는 성당에 세례대가 있으면 그 옆에 둡니다. 세례식에서 세례자에게 촛불을 켜줄 때, 파스카 초에서 불을 당겨주고, 장례미사 때에는 파스카 초를 고인의 머리맡에 놓는 까닭은 신앙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곧 교회는 신앙인 모두가 세상에서 ‘파스카 초’가 되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이길 기원하지요.
[기도하는 교회] 손으로 영성체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손 영성체의 방법에 대해서는, 1985년 4월 3일자 경신성 지침(De Comunione eucharistica)이 당부한 주의점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합장한 자세로 행렬하여 성체께 다가와 앞사람이 성체를 받을 때 ‘깊은 절’로 미리 성체께 흠숭을 표합니다.
2. 왼손바닥을 위로하여 펼치고 오른손바닥으로 왼손 등을 받쳐 듭니다. 성체 분배자가 성체를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아멘”이라고 분명히 말하며 성체께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아멘”이라고 응답할 때 절하지 않습니다.(손이 움직여 성체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3. 오른손으로 받친 왼손바닥 위에 성체를 받은 후 뒷사람을 배려하여 한걸음 비켜서되 제대를 향해 섭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에 놓인 성체를 집은 후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아 왼손이 오른손을 받치게 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성체를 영합니다. 이때 성체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경건하게 영합니다.
4. 성체는 제대 앞에서 즉시 영해야 하며 영하지 않은 채 이동해서는 안 됩니다.
5. 성체를 영한 후에는, 행렬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제대나 감실에 절하지 않고,(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4항) 합장한 자세로 행렬하여 자리로 돌아옵니다.
6. 성체 분배자는 입으로 영성체하기를 바라는 교우를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7. 성체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므로 반드시 성체 분배자를 통해 받아야 하며, 성합이나 성반에 놓인 성체를 교우가 스스로 집어서 영할 수 없습니다. 양형으로 성체를 영할 때에도 교우는 반드시 성체 분배자를 통해 성작을 건네받아 성혈을 영하고, 영한 후에는 성작을 다시 되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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