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비밀
(시 84:1-12)
찬송 491장
시편 84편은 이스라엘의 절기를 맞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 가운데 한 사람이 쓴 것을 성전에서 봉사하던 고라자손이 보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본 시편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토로한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믿음의 찬양시입니다.
본시는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어서 속히 성전에 도달하여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뵈옵기를 갈망하는 그 복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6절에 눈물 골짜기라고 했듯 예루살렘 시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산악으로 뒤덮인 거친 광야를 통과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능히 극복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시편기자의 마음을 봅니다.
특히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는 그 심정은 그 아름다운 믿음을 다 설명하고도 남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죄악과 고통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기도와 찬송으로 다 이기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천 날보다 나은 하루 : 손상률 목사
(시 84:1-12)
사람의 일생을 두고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고 하는 양적인 가치와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는 질적인 가치에 따라서 평가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역사적 평가는 나이 많도록 오래 사는 것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에다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거나 또는 그 목적 설정이 잘못되었을 경우 허망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솔로몬은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전 1:14). 시편 기자는 하루를 살더라도 천 날보다 나은 삶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1. 예배하는 삶입니다.
본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이것은 자기의 몸으로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적 삶을 의미합니다(롬 12:1).
1) 성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주의 궁정'은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뜻합니다.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인은 성전을 '주의 장막', '주의 궁정', '주의 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4절에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주의 집을 향하여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시 69:9). 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시 137:1). 고라의 자손들은 이와 같은 그들의 갈망을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시 42:3).
2)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시온의 대로'는 성소로 향하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롬 8:15). 곧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스러운 교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그곳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49). 집을 떠난 탕자가 극심한 고통에 처했을 때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고 하며 아버지 집을 그리워했습니다(눅 15: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마주대하는 삶의 특권이 있습니다.
3) 풍성한 축복이 있습니다.
3절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예배하며 신령한 교제를 가지는 사람은 마치 참새의 집과 제비의 보금자리처럼 사랑과 평화와 소망이 넘치는 삶을 즐기게 됩니다. 삭막하고 거친 세상에서도 남이 알지 못하는 영혼의 풍요로움을 맛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6절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눈물 골짜기'는 환난과 시련이 그침 없는 인간 세상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심으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床)을 차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 23:5).
2. 봉사하는 삶입니다.
섬기는 자의 삶을 의미합니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영광과 쾌락을 즐기기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종노릇하며 섬기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1) 섬김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6:24). 어차피 한 주인만을 섬겨야 된다면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주인을 모셔야 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을 주인으로 섬기며 아까운 인생을 허비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인의 경우 대부분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를 섬기고 있습니다(엡 2:2). 로마서 1:22-23에 보면 썩어질 동물이나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자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에는 돈에 얽매여 종노릇하다가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여기며 땅에 일만 생각하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빌 3:19). 하나님의 집에서 종노릇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2) 섬김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내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는 집안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자입니다(마 24:45-46). 또한 문지기는 집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핍니다. 자기 집 식구가 아닌 외인의 출입을 경계하며 통제합니다(요 10:8). 문지기는 모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집주인과 권속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라고 한 것을 보아 이는 주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분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에 종사하든지 다 주님을 섬기는 청지기입니다. 에베소서 4:12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3) 섬기는 자의 행복을 누려야 됩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섬기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밑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궂은일을 하는 것은 싫어하고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기를 선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막 10:45).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데서 오는 기쁨을 향유합니다. 옛날 모세는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마다하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능욕이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보다 더 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히 11:24-26).
3. 정직한 삶입니다.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하루가 거짓되게 사는 천 날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1) 예수님의 본성이 정직입니다.
마귀의 본성은 거짓입니다. 계시록 12:9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본성은 진실입니다. 계시록 3:7에는 예수님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을 ‘아멘’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3:14에는 예수님을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어떤 신(神)들도 다 거짓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시고 참된 신입니다(왕상 18:25-39). 로마서 3:4에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진실하신 예수님 앞에서 모든 거짓된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2)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어디에나 거짓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이 땅에 진실이 없다고 탄식하였습니다(호 4:1). 시편 116:11에 "내가 놀라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 거짓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정직한 삶이 요청됩니다. 빌립보서 2:15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밝은 생활은 진실한 마음 바탕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3) 정직한 자의 복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거짓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삶입니다. 시편 15:1-2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세상이지만(딤후 3:13), 하루를 살더라도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짓 없는 믿음과(딤후 1:5) 거짓 없는 사랑이(고후 6:6) 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일에나 진실(아멘)의 축복을 향유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