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가 되어버린 기독교의 실상.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목차
1장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미국 문화의 포로가 된 교회)
2장 찰스 피니의 펠라기우스 주의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도덕주의와 신비주의 영성 결합함, 좋은 모범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추구하다보니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됨, 심리치료적 기독교)
3장 조엘 오스틴의 형통복음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긍정의 힘, 잘되는 나, 내 꿈, 내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가 결정됨, 조용기 목사가 영향을 받음, 영광의 신학)
4장 이머징 교회운동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좋은 소식을 좋은 충고로 변질시킴, 세상 개혁, 사회 운동, 사회적 평화와 정의 추구, 사람의 행동에 의해 결과가 나타남을 추구함으로써 은혜 없는 기독교,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냄)
5장 영지주의 영성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당신만의 예수, 뉴에이지 운동, 미국의 영지주의, 사람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영성주의, 체험 중심, 사람이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함, 은혜와 정면 대치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없어짐,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는 영성주의)
6장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바르게 전하는 방법(복음의 메지지와 복음의 전달 매체)
7장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 저항하라(대안 제시, 교회가 다시 복음을 회복하는 길)
율법과 복음이 혼동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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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뺀 100%복음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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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는 대부분 율법과 복음이 혼동되는 교회이다. 율법과 은혜에 대한 깊은 상고함이 없다. 율법과 복음의 명확한 의미를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율법과 복음을 섞고 혼동되면 '다른 복음'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이며, 복음의 전달 매체는 선포와 성례이다. 그리스도를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가 실종될 우려가 있다.
1. 복음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교회 생활에서
복음적 교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죽이시고 살리신다. 복음적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역사가 선포된다. 하나님의 열심이 선포된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다. 성도는 은혜의 수혜자이며 하나님의 일을 밝히 드러내는 설교가 선포된다. 하나님의 적극성이 선포되며 사람은 항상 객체(목적어)이며 대상이다.
복음적 교회의 방향성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성도는 은혜를 받고 먹고 쉰다. 성도는 섬김을 끊임없이 받고, 성도는 짐을 지지 않는다. 성도는 은혜의 수혜자로서 짐을 지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좋은 섬김을 받고 세상의 자기 동료나 이웃에게 섬김을 베풀게 된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짐을 지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동료들과 이웃들을 섬길 여력이 있게 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누리고 즐거워하며, 감사와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승리를 선언하고, 하나님의 완성하심을 선언한다. 성도들은 죄인들을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증인으로서 즐거워한다. 올바른 복음이 선포된다면 사실 권면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복음이 성도들 속으로 들어가 그 말씀이 성도들의 행동을 촉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율법과 복음이 혼동된 율법이 선포되는 교회 생활에서
교회는 친구를 사귀는 곳, 봉사하는 곳, 사업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교회에 간다. 교회는 대안공동체가 된다. 교회는 세상의 하위 문화가 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동원된다. 성도들은 교회에 오면 계속 섬기는 일을 하게 된다. 성도들은 끊임없이 권면을 받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독려를 받으며 지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집중한다. 운동, 섬김, 노력에 집중하며 이것이 교회 생활이라고 착각한다. 성도들은 개인의 은사와 동기부여적 사역에 지친다. 성도들은 교회에 오면 계속 섬기며 고갈된다. 성도들은 섬기는 일에 몰두하느라 구속에 대한 광대한 일을 듣지 못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열성을 내는 것이 성숙한 성도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은 교회 생활에 너무 지쳐서 교회 밖 사람들과 의미심장한 교제를 전혀 갖지 못하며 시간이 없다. 교회는 사람들의 일만 가득하다. 성도들은 좀더 많은 헌신, 좀더 많은 결심, 좀더 많은 노력을 촉구받는다. 교회에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한 촉구와 권면이 가득하다. 사람의 영성은 개인의 실천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말을 듣는다. 기도, 묵상, 영적 일기쓰기, 성경연구와 더 많은 추구와 행위를 촉구하며, 자기 성장 중심으로 노력을 촉구받는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며 개선, 최선, 동기부여, 결심이 촉구된다. 교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성도들은 고갈되며, 더 많은 헌신과 노력을 촉구받기 때문에 성도들은 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율법과 복음을 섞으면 복음 없는 기독교(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던 '다른 복음'이 된다. 율법과 복음을 섞는 것은 타락한 아담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성향이 혼돈과 섞음이다. 우리는 율법과 복음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완성하신 일을 말씀한다.
율법과 복음이 혼동되어 섞이면 기독교는 율법적 기독교가 되며 성도들은 탈진하게 된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명확히 알고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율법은 복음이 아니며 율법을 복음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적그리스도와 이단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무엇이 복음인가를 아는 데 집중해야 한다.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아는 것은 성경을 아는 열쇠가 된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기가 이미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며 적용, 실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이 완성하신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영성 수행, 심리 요법, 도덕률, 자기 계발, 부흥,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사용하여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율법으로 바꾸어 버리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고 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