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환상(幻想)을 깨라
<최철주 컬럼니스트>
멋있는 죽음에 대한 환상(幻想) 이 깨진 것은 아주 오래 전
"내가 호스피스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였다. 실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 이후 죽음교육 강의를 할 때는 "환상(幻想) 을
부수라" 는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들이 허다(許多)했다.
말기 암(癌)환자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주인공」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얼굴이 쪼그라들도록 쇠약한 모습으로
분장한 「주인공」이 간신히 입을 열며 짤막한 유언(遺言)을 남긴다.
그가 드디어 고개를 떨어뜨린다.
침대 옆에 있던 가족들이 일제히 오열(嗚咽)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장중한 음악이 흐르고, "그가 눈을 감은 뒤…"라는 내용의
'내레이션(Naration)'이 시작된다.
'Well Dying'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이나, 나이 지긋한 중년의
수강생들 조차 그런 모습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인생 최후의 장면으로 그리고 있는 이미지는 별개의
세상이었다. 더 의외의 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죽음을 맞는
장면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 본 서울의 5대 종합병원 중환자실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말기(末期) 환자들 가운데 고통과 비명, 분노와 앙탈,
끝없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듯한 그러나, 아주 무생물(無生物)에
가까운 환자들이 거기에 누워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 슬픈 모습으로 숨을 거둔다.
죽음의 표정은 가족들 가슴에 깊이 파고 든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잔상(殘像)으로 늘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픔이 오래도록 남아, 유가족이 버텨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말기 환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중환자실은 그토록 살벌하기만 하다.
나와 함께 호스피스교육을 받았던 중환자실의 한 수석 간호사와
드라마의 『멋진 죽음』을 화제(話題)로 올린 적이 있었다.
그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이랬다.
“세상을 곧 떠나게 된 환자가 가볍게 미소를 흘리며, 몇 마디 유언
(遺言)을 남길 틈이 어디 있어요? 온몸이 아프고 탈진(脫盡)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데 뭐 살짝 웃어요? 유언은 무슨 유언이에요?
말도 안 되는 환상(幻想) 이지요. 당사자라면 그게 가능하겠어요?
어디 한 번 해 보세요.”그렇게 속사포로 대꾸하며 나를 놀렸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