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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자연과 문화재,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등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전라남도. 다채로운 매력 중 으뜸은 단연 음식이다. 맛깔나는 남도 별미로 늦가을을 채우자. 차가운 날씨 뒤로 웅크린 일상에 호랑이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굴비
영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법성포 굴비다. 조기를 소금에 절인 후 말려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굴비는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밥도둑.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을 먹었다는 자린고비의 마음이 슬며시 이해가 된다. 법성포는 굴비 만들기에 딱 맞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예로부터 이어진 건조 기술과 전통 염장 방식이 더해져 지금까지도 최고의 굴비라는 명성을 지키고 있다.
법성포 포구 주위로 형성된 굴비 거리에는 굴비 식당이 즐비하다. 대표 메뉴는 굴비 정식. 잘 구워진 굴비와 간장게장, 피조개 무침, 간자미찜. 생굴 등 남도의 인심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특유의 고릿한 맛이 중독적인 보리굴비와 고추장 굴비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가짓수가 많다고 해서 수준이 고만고만할 것이란 판단은 금물이다. 놓을 수 없는 젓가락질에 여기저기서 ‘한 공기 더’를 외친다. 후식으로 모싯잎 송편까지 먹어줘야 제대로 영광을 먹었다 할 수 있다. 모싯잎의 향긋함이 깔끔하게 퍼진다.
굴비의 고장 법성포(法聖浦)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을 뜻한다. 즉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다. 384년 인도 간다라 출신의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을 거쳐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발을 디뎠고,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것을 기념해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를 조성했다. 이곳에 들어서면 이색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일반적인 사찰 모습이 아닌 마라난타의 고향인 인도 간다라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108개 계단을 오르면 부용루라는 법당에 닿는다.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열반에 들기까지의 과정이 석조물로 표현되었다. 부용루 뒤로 23.7m 높이의 사면대불상이 인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불갑사는 마라난타가 모악산 중턱에 처음 세운 사찰이다. 1600년 역사를 자랑하며 웅장한 전각이 영화로웠던 시절을 말해준다. 우리네 전통 사찰의 모습이지만 곳곳에 간다라 양식의 흔적이 묻어 있다. 대웅전 기와지붕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스투파(탑), 화려한 문양의 창살, 서쪽에 위치한 삼불상 등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바람에 풍경 소리가 묻어난다. 잠시나마 속세를 잊게 하는 고즈넉한 순간이 마치 마라난타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어언 121년, 목포는 항구다
“유달산에 오르면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한 시내가 미니어처처럼 펼쳐진다.“ 남도 식도락 여행에 목포가 빠질 수 없다. 1897년에 개항한 목포항은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섬들과 육지를 이어주는 발판이다. 한반도 남서쪽에 위치해 위로는 무안, 서쪽으로 는 신안군, 동남쪽으로 영암과 해남이 둘러싸고 있다. 자연스레 무안 낙지, 신안 홍어와 민어, 영산강의 풍요로운 먹거리가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먼저 찾아갈 곳은 유달산이다. 높이 228m로 높지 않지만 산세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우락부락하기까지 한데 마치 설악산이 장군이라면 유달산은 골목대장 같다. 유달산 산책의 시작은 노적봉이다. 남녀노소 쉽게 오를 만큼 산책로가 잘되어 있어 부담 없다. 계단을 따라가자 어디선가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이난영의 노래비가 바다를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애절한 노래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한 맺힌 목포의 역사를 관통 하는 노래, 일제강점기의 설움이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가라는 생각도 잠시, 어느덧 소요정이다.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한 시내가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멀리 목포대교 건너편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바람이 금세 차가워지더니 해는 곧 붉은빛을 내며 바다 너머로 사라진다. 이제야 목포에 왔음이 실감 난다. 어둠이 오면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보는 맛을 즐겼으니 먹는 맛을 즐길 차례. 목포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너무 많다. 목포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목포 5미(味)가 9미(味)로 확장되었을 정도다. 회 정식은 싱싱한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다. 이맘때 맛이 좋은 농어회에 홍어삼합, 간장게장, 낙지호롱, 꼬막무침이 줄줄이 상에 차려진다. 매운탕 대신 병어조림이 나오자 환호성이 터진다. 여기에서 제육볶음이나 갈비찜은 일찌감치 하대를 받는다. 향기로운 바다 별미를 음미할수록 남도 음식의 남다른 정갈함이 느껴진다. 남도 인심으로 힐링한다. 해남
목포에서 누런 들판을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땅 끝’으로 잘 알려진 해남이다. 해남 여행 1번지로 꼽히는 두륜산에 오르니 울창한 녹음과 파란 바다 위 흩뿌려진 섬들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케이블카가 있어 훨씬 수월하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에 내려 15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가면 두륜산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계봉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종이비행기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전망대 중심에 있다. 전망대는 360도 뷰를 가졌다. 먼저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두륜산과 북평면, 북일면 일대의 누렇게 익은 들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고흥과 완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반대편에 서면 해남읍과 멀리 영암과 목포까지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쾌청하면 한라산까지 보이는 전망대. 정말 막힘없이 펼쳐지는 해남을 만날 수 있다.
고계봉에서 내려와 대흥사로 향한다. 깊은 산속에 있어 전쟁의 화를 입지 않아 천년사찰의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대흥사로 가는 길이 싱그럽다. 원시림처럼 짙은 숲이 이어지며 그야말로 마음을 녹인다. 언제 창건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사찰에서는 신라 진흥왕 5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13분의 대종사와 13분의 대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대흥사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 전각마다 붙어 있는 현판이다. 현판은 건물의 특징과 성격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명함과 비슷하다. 자신의 모습을 현판 하나로 보여준다니. 그래서 현판은 글씨 좀 쓴다는 사람들이 주로 썼다. 대흥사 현판은 바로 그들의 각축장이다. 먼저 대웅보전과 천불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다. 바로 옆 건물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 수각 현판이 있다. 발걸음을 옮겨 표충사의 편액은 정조대왕이, 가허루는 창암 이삼만이 썼다. 가히 대가들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대흥사를 나와 찾아간 곳은 보리밥집. 어려운 시절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지금은 보리밥이 건강을 위한 웰빙 음식으로 통한다. 두륜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채소들과 약초, 보리밥으로 차려낸 산채정식이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보리밥에 나물을 얹고 직접 담근 강된장과 참기름을 둘러 비벼먹는다. 쌈 채소와 석쇠 돼지불고기가 곁들여져 풍성한 한 끼가 완성된다. 맛보기로 나온 차조밥에 여기저기 추억 보따리가 펼쳐진다. 함께 나오는 토하젓을 넣은 된장도 별미다.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밥상이다. 꼭꼭 씹을수록 힘이 나는 해남과 꼭 어울리는 맛이다.
글 박애진 사진 유정열 |
첫댓글 유달산에 오르면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한 시내가 미니어처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