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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출신자들은 정당 조직과 의원 보좌진에도 대거 포진해 있다. 민주당 곽윤석 보좌관(임종석 의원)에 따르면 민주당 보좌관과 당 간부 350여 명 중 절반이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민주당은 하부 구조로 갈수록 학생운동권 세력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연세대에서 지하서클활동을 이끌었던 최동규 당 기조국장, 최민식 당 정세분석국장(연세대), 김두수 정치개혁특위 사무국장(고려대 82학번) 등이 당내 운동권의 중심이다. 노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유수동 국가전략연구소 부장(국민대 88학번)은 안희정 부소장의 측근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중에도 곽윤석(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 전대협 선전국장), 권재철(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 정기남(고려대 83학번)씨 등 학생운동권 출신이 상당수다.
한나라당의 경우 민주당처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중심으로 386 출신들이 집결해 있다. 김덕수(서울대 77학번), 김범진(서총련 국장 출신), 박영필(숭실대 총학생회장)씨 등 20~30여 명에 이른다.
한나라당 개혁파의 고민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내 학생운동출신 의원들 사이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학생운동권 출신자들이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으로 갈라선 결정적 이유는 1987년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 논쟁이었다. 후보단일화에 찬성한 운동권 인사(김영춘 의원 등)는 1990년대 들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끈 한나라당 정치세력을 택했고 1987년 당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운동권 인사는 민주당 행을 택했던 것. “이때의 감정의 골이 깊어서인지 김대중 정권은 한나라당 의원 30여 명을 영입해올 때 한나라당 행을 택한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김덕수 보좌관)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 진영 운동권 출신의 갈등은 해소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또한 2002년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각계에 진출한 운동권 출신자들의 절대 다수가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게 된 것도 한나라당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2000년 총선 무렵 운동권 출신자들이 각각 반반씩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행을 택한 것과 비교했을 때 한나라당으로선 충격적인 변화인 셈이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이와 관련 “386세대 유권자 중 상당수가 ‘1980년대 운동권’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당으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 법조계의 무게중심은 보수성향의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에 7명의 장관, 청와대 수석, 국정원장을 배출한 민변은 운동권 출신 변호사의 산실이다. 198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운동권 출신 상당수가 사법고시에 도전, 변호사가 된 것이 지금의 민변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1984년 구속된 이정우 서울대 총학생회장(법대 81학번)은 이후 행정·사법·외무 등 3개 고시에 모두 합격했으며 현재 민변 회원이다. 이변호사는 노대통령 측근들이 중심이 된 ‘제3의 힘’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민변의 회원은 350여 명. 이 가운데 이재화 변호사(고려대 82학번), 문광명 변호사(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운동권 출신인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서울대 수석입학, 사법시험 수석합격), 지하서클활동 경력이 있는 김주현 변호사(서울대 81학번), 김인회 변호사(서울대 83학번) 등 학생운동 출신 변호사들이 상당수 가입해 있다. 김선수 민변 사무총장은 “민변은 사회변혁의식을 갖춘 법조인들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민변을 정권 엘리트 충원을 위한 인재풀로 활용하고 있는 대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노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민변 회원 자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민변과 함께 사회의 리더그룹으로 급부상한 곳이 참여연대다.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로 명명한 취지는 1994년 참여연대가 ‘참여’라는 단어를 쓰면서 내세운 ‘참여민주주의’의 취지 그대로다. 노무현 정부 들어 대기업들을 얼어붙게 했던 SK 최태원 회장의 구속,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150억원대 신주인수권부사채 소각은 모두 참여연대에서 발화된 일이었다.
참여연대측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전문가집단과 운동권 출신자들의 절묘한 결합체다. 이슈의 선택, 운동방식 결정, 대시민 홍보전략은 운동권 출신들이 맡고 변호사, 교수, 회계사 등 전문가집단은 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해당 분야 심층 조사연구 활동을 맡는 식이다. 김기식 사무처장(서울대 인류학과 85학번), 박영선 사무처장(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영문과 85학번), 이태호 정책실장(서울대 서양사학과 86학번,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출신),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서울대 인류학과 86학번,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출신),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서울대 금속공학과 88학번), 박근용 경제개혁팀장(서울대 외교학과 91학번) 등 현재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 대부분이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재계로 진출한 386 운동권 출신 인사 중엔 박규현 이네트 대표(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장영승 나눔기술 대표(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이의범 가로수닷컴 대표(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내에서 386 운동권 출신들은 주로 부장급. 정권 내부와 사적 채널을 갖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 차라리 잘됐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정권 핵심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예측이 안되어 불안하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 S사는 386 학생운동권 출신인 민주당 모 인사를 상무로 영입했다가 최근 방출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계속)
NL 계열이 주도한 전대협
학생운동 세력은 1960년 4·19세대를 기점으로 6·3세대(1965년 한일수교 반대 6·3시위의 주역), 긴급조치세대(1970년대 긴급조치 반대 세력), 민청학련세대(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국가전복 혐의사건 연루자들)을 거쳐 80년 서울의 봄 세력(1980년 5월15일 서울역 10만 시위 주역들)에 이어진다. 전두환 정부가 1980년대 초 각 대학 총학생회 조직을 폐쇄시키자 학생운동은 지하로 잠입했다. 그러다 다시 학원자율화조치가 내려져 1984년 가을부터 각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부활됐다. 1985년엔 각 대학 총학생회의 느슨한 전국단위연합체인 전학련과 그 산하조직인 삼민투가 설립됐다. 김민석 전 의원은 전학련의장을 역임했다. 허인회 민주당 동대문을 지구당 위원장은 삼민투 위원장이었다. 그러나 학생운동권은 1986년 들어 반미투쟁이냐 계급투쟁이냐를 놓고 이른바 자민련과 민민련으로 갈라졌다. 1986년 이를 다시 애학투련으로 합치자는 취지로 건국대에서 행사를 하는 과정에 공권력이 투입돼 건대 사태가 발생했다.
1987년 드디어 전국 총학생회장의 연합체인 전대협이 출범했다. 1기 전대협 의장은 이인영 고려대 총학생회장 (현 민주당 구로갑 지구당 위원장)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학생운동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일궈냈으나 민주세력 후보단일화가 실패하면서 대선 패배의 좌절을 겪었다. 전대협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이었으나 1993년 한총련으로 개명되면서 사라졌다. 전대협은 주로 반미투쟁 성향의 NL계열이 주도했다. 노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부소장도 이 시기 활동했던 주사파의 일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용식씨의 ‘깃발’, 조성오씨의 ‘철학에세이’, 김명인씨의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 등 감성을 자극하는 운동권의 명저들이 나왔다.
1980년대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들 모두를 ‘광의의 학생운동권’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전대협 출신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386 학생운동권은 1980~88년 사이 대학 총학생회에서 주요 간부직을 역임한 인사들을 일컫는다. 특히 정계에 진출한 386 운동권은 1980년대 전국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이른바 수도권 5개 대학과 지방의 전남대, 부산대, 경북대 총학생회 간부들 중에서 주로 배출되었다. 이럴 경우 386 학생운동권 출신자들의 실제 인재풀은 훨씬 좁아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청와대와 국회에 진출한 386 운동권도 거의 대부분 이들 8개 대학 총학생회에서 배출된 인사들이다.
‘운동권 주류론’ 논쟁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 들어 국회의원 공천을 받은 학생운동 출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유명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사실이다(송영길, 이성헌, 임종석, 김성호, 김영춘, 심재철 의원 등). 여기에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경우도 많다. 학생운동권 출신자들도 정계에 진출하려면 ‘간판’이라는 세속적 장벽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타이틀을 갖춘 학생운동 출신자들은 이미 1990년대 세 차례 총선 때 대부분 기성 정치권의 러브 콜을 받아 정계에 진출한 상태다. 따라서 학생운동권에서 ‘남은 인재풀’은 훨씬 적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권은 위축돼 90년대 학번에선 학생운동권 인맥이 거의 고사한 상황이다(1990년대 중반 이후 한총련 대의원 급감).
상당수 대학교수들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학생운동권이 사회의 주류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서울대 총학 출신인 참여연대 김민영 국장은 반대 견해를 내놓고 있다. 김국장은 “기존 정치권의 386 학생운동권 출신들은 신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동권의 인재풀이 협소한 데다 90년대 학번의 충원도 사실상 끊겼다. 학생운동 세력은 소수세력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이 사회주도세력의 지위를 잠시 동안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이내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1993년 10월 연세대 토론회에서 경실련의 서경석 당시 사무총장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념적 편향,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 합리적 대안부재가 비판의 이유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학생운동 세력을 권력의 중심부에 포진시켰다. 정치권과 사회 각 분야에서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의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그러나 주류가 된 운동권은 지금 또다시 ‘편향과 독단’의 논란에 직면해 있다. 여권 내부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운동권의 이념과 미래의 운명을 건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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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운동권 흐름도 60년 4·19운동세력 이우재(서울대 총학생회장) 김원길 김경재 의원, 이세기(4·18 고려대 시위 주도) 김중위 이기택 박정훈(시위주도) 전 의원, 박관용 국회의장(동아대 시위주도)
64년 6·3시위사건 (한일정상회담반대)세력 김덕룡 이부영 홍사덕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74년 민청학련사건 연루자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보,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 서경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유홍준 명지대교수, 이해찬 강삼재(경희대 총학생회장) 정동영 의원, 장기표 전 민중당 대표, 손학규 경기지사 *민청학련의 영향으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지학순 주교 구속),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동아투위, 조선투위 구성
70년대 긴급조치 유신반대세대 신인령 이화여대총장(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 구속), 한명숙 여성부장관(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 구속), 김근태 이호웅 김문수(구로공단 위장취업, 서울노동운동연합 주도) 심재권 설훈(75년 고대시위) 이미경(73년 구속) 김태홍 서상섭 안영근 이호웅 이창복 장영달 의원,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열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장명국 내일신문사장, 정수용 빙그레 사장, 장준영 김용석 청와대 비서관
80년 5월 서울역 시위 주도세력 문재인 청와대민정수석, 신계륜 이해찬 심재철(서울대 총학생회장) 김부겸(서울대 복학생대표) 의원,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 유종일 KDI 교수, 형난옥 현암사 전무(숙명여대 총학생회장)
80년대 학생운동세력 (80~93년) 。지하학생운동서클세대 : 백태웅씨(마지막 서울대 학도호국단장, 사노맹사건 연루), 윤태영 곽해곤 청와대 비서관 81년 부림사건, 학림사건(불온서적 소지, 노동-학생운동연계 혐의) 연루자 : 이호철 청와대비서관(부산대 총학생회장, 부림사건때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김재규 노무현 후보 부산국민참여운동본부장(부림 사건때 노대통령과 인연), 설동일 부산민주항쟁기념관장(부림사건 때 노대통령과 인연), 이선근 민노당 본부장, 박문식 회계사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연루자 : 문부식 시인(고신대생, 사형선고)
。84년 학원자율화 조치로 대학 총학생회 부활 (평화협정 . 낮은단계 연방제. 고려연방제 .군무장해제 .전면남침 이런것은 과연 우려일까??)가상시나리오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
민정당사 점거농성사건 연루자 :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농성주도) 김범진 정병국 의원보좌관(농성주도, 구속)
。84년 서울대 프락치사건 연루자 : 이정우 변호사(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구속, 현 민변 변호사)
。85년 전학련(최초의 전국 대학 학생회 조직)-삼민투(전학련내 투쟁조직) 결성 세대 : 김민석 전 의원(전학련 초대의장, 서울대 총학생회장), 오수진씨(성균관대, 전학련 의장), 허인회 민주당 위원장(초대 삼민투 위원장, 고려대 총학생회장), 함운경씨(서울대 83학번, 총학생회장, 삼민투 위원장), 김연형 벤처기업대표(서울대, 삼민투 사건), 이재화 변호사(삼민투사건으로 구속, 현 민변 변호사), 신정훈 나주시장(삼민투 위원), 송영길(연세대 총학생회장, 민변 변호사) 원희룡(서울대, 위장취업활동) 이성헌 (연세대총학생회장, 연세대 학도호국단 해체) 의원, 문광명(서울대 총학생회장, 현재 민변 변호사) *82년부터 운동권 내부에서 시작된 민족해방 대 민중민주 노선논쟁은 85~86년 자민투, 민민투를 거쳐 NL과 PD로 나눠지고 전대협 결성으로 통합이 모색됨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연루자 : 한나라당 고진화(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삼민투 위원장) 정태근(연세대 총학생회장) 위원장, 민주당 이인영 위원장, 장영승 나눔기술 대표
。86년 건대 사태(NL 주도 전국 조직인 애국학생투쟁연합결성 위한 건대 집회를 경찰이 해산, 1287명 구속된 사건)
。86년 구국학생연맹사건 연루자 :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서울대, 구속), 김만수 청와대 비서관(구속) ,이왕준 인천사랑병원장(구속)
。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 개헌 :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환실장(87년 구속), 천호선 청와대 비서관(87년 구속)
。87년 주사파 세력 :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주사파, 전대협의 모태가 된 전국 점조직구성, 고대 애국학생회-반미청년회 연루 구속), 김영환씨(주사파 리더), 조유식 알라딘대표(주사파 리더, 90년대 중반 친북에서 반북으로 전환), 하영옥씨(주사파 리더, 현재 복역중)
。87년 11월 전국조직인 전대협 결성 : 이인영 민주당 지구당위원장(고려대 총학생회장, 1기 전대협 의장), 오영식 민주당 의원(고려대 총학생회장, 2기 전대협 의장), 임종석 민주당 의원(한양대 총학생회장, 3기 전대협 의장, 89년 임수경씨 방북주도), 송갑석 미디어메써드 대표이사(전남대 총학생회장, 4기 전대협 의장, 17대 총선 출마 거론), 김종식씨(한양대 총학생회장, 5기 전대히벼 의장, 현재 직장인), 태재준씨(서울대 총학생회장, 6기 전대협 의장, 민주노동당 활동, 현재 미국유학)
。87년 통추(민주세력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한 모임)결성 : 노무현 대통령, 김원기 민주당 고문, 박계동 전 의원, 원혜영 부천시장, 박석무 김정길 이철 전 의원, 김원웅 국민개혁당 대표, 이부영 김홍신 의원, 유인태 정무수석
。87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범
。89년 임수경씨 방북
。91년 강경대군 치사사건 : 박영필 원희룡 의원보좌관(2년 구속)
。93년 한총련 촐범(전대협의 후신) : 김재용씨(한양대 총학생회장, 1기 한총련 의장, 현재 생태학습관련 시민운동), 정태홍씨(고려대 총학생회장, 3기 한총련 의장, 현재 민주노동당 청년위원장)
94년 참여연대출범
96년 한총련 연세대 점거 사건
97년 한총련 대의원 1600여 명 중 1100여 명 한총련 탈퇴
98년 대법원, 한총련 이적단체 판결(96년 연세대 사건 재판)
2003년4월 정재욱(연세대) 한총련 11기 의장 선출. 한총련 합법화 및 발전적 해체 계획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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