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내가 만든 여자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수권의 책을 펴내며 한국문학의 활기찬 동력이 된 소설가 설재인이 괴이하고 의문투성이인 미스터리의 세계, 《그 변기의 역학》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그간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종말 그 자체”(천선란 소설가), “변신과 함께 우리 마음을 파고드는 핏빛 내시경”(김창규 소설가)이라는 평과 함께 장르문학계의 믿음직한 신성으로 우뚝 선 작가는 ‘봉수 파괴’라는 파격적 소재와 ‘크리처(creature)의 등장’이라는 기이한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 보인다.
수많은 건물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 한가운데 몸 하나 누일 작은 방을 전전하던 소설가이자, 국가가 보증하는 ‘청년’의 마지노선 만 39세의 성아정은 어느 날 청년임대주택사업에 당첨된다. 보증금 6천만 원에 월세 6만 원, 최장 거주기간 10년인 투룸 머니빌의 입주 조건은 단 두 가지. 첫째, 등록된 세대원 이외에 거주할 수 없다. 둘째, 연간 시행되는 자체 평가에 의거해 불량입주자로 등록된 이는 즉시 퇴거한다.
아정은 벼락같이 찾아온 행운이 행여나 도망갈까 서둘러 입주를 마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내몰린 줄만 알았던 삶을 돌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아정은 듣게 된다. 아무도 없는 새벽 우르릉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변기 물 소리를. 변기가 저절로 마르는 ‘봉수 파괴 현상’과 마른 변기에서 풍기는 극심한 냄새에 큰 스트레스를 받던 소심한 이웃 아정은 대뜸 솟아오른 봉수로 자신의 오물을 뒤집어쓴 날 사건의 원흉인 윗집으로 돌진하고, 윗집의 현관을 열고 나오는 아주 작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 형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형체와 같이 사는 수상한 남자. 수리 업체 말로는 윗집에서 버려선 안 될 걸 버려 배관이 막혔다고 하는데…… 대체, 윗집 남자는 새벽마다 뭘 버려대는 걸까? 그 형체의 정체는 뭘까?
청년주택지원사업에 의한 임대주택에서의 삶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