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복음 사가 축일 / 김찬선 신부님
성 마태오 사도축일 강론글입니다.
성 마태오 사도 축일-사랑이 배고픈 사람
아시다시피 저는 식당을 하고 있는데 제가 식당을 하는 것이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사랑이라면
저의 식당이 필요한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고
제일 필요한 사람은 제일 배고픈 사람일 것입니다.
실제로 배고프지 않은 사람은 저의 식당을 찾지 않을 것이고,
돈이 많아 제일 맛있는 것을 찾는 사람은 저의 식당을 찾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의 식당은 음식값이 3천 원으로 싸고 가짓수도 세 개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에게 음식값이 싼 식당은 자기 체면에 어울리지 않고,
세 개뿐인 음식으로는 그의 입맛을 다 채울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마태오 사도 축일에 왜 제 얘기를 길게 한 것일까요?
물론 마태오 사도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고,
주님께서는 왜 마태오 사도를 부르시고
마태오 사도는 왜 주님을 따랐는지 얘기하기 위해섭니다.
주님께서 마태오 사도를 부르신 것은, 그가 주님 사랑을 배고파했기 때문이고,
마태오 사도가 주님을 따른 것도, 그가 주님의 사랑을 배고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결론처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마태오 사도만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걸까요?
마태오 사도만 주님의 치유가 필요한 병자이고,
바리사이나 우린 치유가 필요 없는 사람인가요?
그럴 리 없습니다.
병자임에도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유 받으려고 하지 않듯
영혼의 병자 곧 죄인임에도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사람은
그 영혼의 병을 치유 받으려 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용서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이라는 인식은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의 인식입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죄인이 아니라는 사람은 하느님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느낄 것이고,
그의 죄가 크든 작든 큰 죄인이라고 느낄 텐데
율법 앞에 있을 때 나는 율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그러니 죄 없다고,
다른 사람 앞에 있을 때 나는 저 사람에 비해 죄 없다고 할 겁니다.
그러므로 병이 의사를 필요로 하고 만나게 하듯
우리의 병이 구원자를 필요로 하고 만나게 하고
우리의 죄가 은총 곧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만나게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또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주님을 따라나설 수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 죄만 보고 주님의 은총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하느님 자비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의 음습한 죄 안으로 숨습니다.
이는 더러운 빨래를 빨지 않고 구석에 처박고 햇빛에 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자기 죄를 보았고 주님의 사랑을 봤으며 은총에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뿐 아니라 다른 죄인들도 주님께로 데리고 와서 나아가게 했습니다.
오늘 영성체 후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복된 마태오가 구세주를 집에 모시고 잔치를 열었듯이
오늘 저희도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고 기뻐하오니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성체로
저희가 언제나 새로운 힘을 얻게 하소서.
우리도 마태오 사도처럼 주님 구원에 참여하고 있다면
우리의 집에서 구원의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우리와 함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가 언제나 새로운 힘을 얻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