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전 총장 김형태 장로님이 한교선 단톡방에 공유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첫 기적/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신년사 / 조병화 ]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무한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대지의 나무들 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일월의 영원한
이 회전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약속된 여로를 동행하는
유한한 생명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 더
가까이 이어져라.
[ 사랑이 아닙니다/양광모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니라
조금 밖에 주지 못한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랑은
아무것도 남은게 없는 사랑이 아니라
아무것도 나눈게 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랑은
이별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후회로 끝나는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초라하고
가장 불행한 사랑.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새해의 노래/정인보■
온 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면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세월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쳐 보리라.
■신년 기원/ 이성부■
시인들이 노래했던
그 어느 아름다운 새해보다도
올해는
움츠린 사람들의 한 해가
더욱 아름답도록 하소서
차지한 자와 영화와
그 모든 빛나는 사람들의 메세지 보다도
올해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소망이
더욱 열매 맺도록 하소서
세계의 모든 강력한 사람들 보다도
쇠붙이보다도
올해는
바위틈에 솟는 풀 한 포기
나목을 흔드는 바람 한 점
새 한 마리
억울하게 사라져가는 한 사람
또 한 사람
이런 하잘것 없는 얼굴들에게
터져 넘치는 힘을 갖추도록 하소서.
죽음을 태어남으로
속박을 해방으로
단절을 가슴 뜨거운 만남으로
고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모든 우리들의 한 해가 되도록 하소서
역사 속에 그리움 속에
한 점 진하디진한 언어를 찍는
한 해가 되도록 하소서.
(* 시 102:25~27 / 사 43: 18~19 /엡4: 22~24 /요 13:34 /엡 1: 3~9 / 엡 1:10~12 )
■시간의 넓이와 깊이■
새해(2022년/임인년)라는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도 시간은 귀중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저축할 수도 없다. 은행에서 현금이나 수표는 받아도 시간은 받지 않는다.
시간은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도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을 살 수 있는 백화점은 없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제 인생을 알기 시작한 사람이다.
시간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터득한 사람이다.
우리 삶의 길이는 하나님 마음대로지만 그 넓이와 깊이는 우리가 힘쓴 대로이다.
18세기 미국의 감리교 복음 전도자 조지 화이트필드는 이렇게 외쳤다.
" 녹이 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편이 더 낫다"
그는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녹슬지 않게 그리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한 해가 되도 록 노력해보자.
(임 준택 목사)
** 유대인들은 세가지 기준을 통해 사람을 분별한다고 한다
1. 키소 (돈지갑)
2. 코소 (술잔)
3. 카소 (분노)
즉, * 돈을 거래해보거나 돈 대하는 모습을 보라.
또 * 술에 취했을 때 어떻게 하는가를 보라
그 다음엔 *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가를 살펴보라
** 호랑이 띠의 인물들 중에는 베토벤 (1770년생), 쑨원 (7866년생), 안창호 (1878년생), 유관순 (1902년생), 박경리 (1926년생), 조용필(1950년생), 디캐프리오(1974년생), 등이 있다. 역사와 예술에 굵은 획을 그은 '혁명가' 들이 많다.
"봄철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씨앗은 우리가 뿌려야 한다."
[겉(1/8) 과 속(7/8) ]
헤밍웨이의 작품 속 문장들은 쉽고 간결하여 읽기가 아주 편하다. 윌리엄 포크너가 헤밍웨이의 이런 문체를 비판해 '그의 책에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고 하자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감동이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언어와 절제된 묘사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응수했다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이다 (마치 듣기 쉬운 설교가 가장 고급 설교이듯이)
한번은 그의 친구들이 단어 6개만 사용해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볼 수 있겠느냐고 장난 삼아 내기를 건 적이 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금방 타자기를 두드리더니 채 1분도 되지 않아 종이를 펼쳐보였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한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아기 신발 팝니다 !)
6개 단어로 된 이 짧은 문장으로 헤밍웨이는 독자들을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귀여운 딸이 태어났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뽀얀 피부.,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건강하게 자란다. 남편은 야간근무까지 자청할 정도로 아기를 잘 키우고 싶은 열망에 빠져든다. 엄마는 젖을 물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꿈을 꾸는 듯하다. 하루는 수당을 듬뿍 받은 남편이 아기의 예쁜 신발을 사갖고 귀가한다 부부는 아기가 어서 자라 이 신발을 신고 공원에서 함께 산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가 이상하다."
헤밍웨이는 말한다. "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그것들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빙산의 위험은 오직 1/8 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있다는 데 있다"
이것이 그의 '빙산 이론' (Iceberg theory)이다.
작가는 1/8 즉 물 위에 드러난 부분만을 간결하게 서술한채 7/8은 물 속에 감추어 둔 채로 남겨둔다. 이 공간은 독자들이 누려야 할 몫으로 내주는 것이다.
문학 작품이나 설교(강의)는 표현된 말과 글 아래 숨겨진 7/8을 독자(청자)의 상상에 남겨 두어야 한다.
2022년도 새해가 밝았다. 1년 동안 우리를 통해 드러날 1/8 과 물 아래 감춰진 7/8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는가 ? 보이지 않는 7/8 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가?
사람들은 나의 1/8 만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7/8 을 눈여겨보고 계실것이다. 1/8의 겉사람은 점점 낡아(늙어)가지만 7/8의 속사람은 점점 더 익어가고 싶다.(고후 5:17~19 )
■크로노스 vs 카이로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 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였다.
크로노스는 연속되는 양적 시간을 말하며,(연대기/chronology 등) 카이로스는 질적 시간으로 '바로 그때'(the right time), 또는 의미있는 시간(meaningful time) 을 말하는데, 단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고 풍요롭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가 카이로스적 시간일까?
작게는 개인이 태어날 때, 꿈을 이루었을 때, 어떤것을 성취했을 때 등이며, 크게는 문명사적 전환기나 사회 정치적 혁명기 등이 될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시간은 결국 덧없는 순간, 순간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시간과 달리 절대적 의미의 시간, 또는 시간 중에서 가장 지고한 가치를 지닌 시간이 있다면 아마도 영원의 시간일 것이다.
'영원'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또한 변하지 않는 초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진리의 속성을 지닌다.
우리들 인간의 삶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의 세계에만 있을 법한 시간이 바로 '영원'인 것이다 (정 태식 /사회학자 :경북대 교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 Don't overlook the obvious here, friends. With God, one day is as good as a thousand years, a thousand years as a day.)
기독교는 공간보다 시간을 더 중시한다 ( 요 4: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