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다시 봄” 에 토론하면서 옛 기억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고향이 저 충청도 산골에 있다. 여름에 날씨가 무더워 내 또래들과 냇가에 갔다. 집에서 10분에누구 말없이 냇가에 갔다.
일단 누가 오나 상관없이 ‘발가벗은’ 다음 개 수영하러 갔다.
처음에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모래 위에서 천천히 하자. 좀 더 깊은 물속에 들어가 헤엄을 친다. 1M ~~자꾸 멀리 간다. 자연 유치원이다. 개구리 잡고, 수영하고 ‘발가벗은’ 장난치고 시간이 모르게 지냈다. 옷은 위쪽에 있고, 개구쟁이 심하고 큰 붕어잡고 우리는 신났다. 고추가 뭐 야. 그냥 남자지. 우리는 ‘벌거벗은’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 지금 생각하면 ‘발가벗은’그 세월이 그립다.
과부는 종이를 한 장 꺼내 들었다. 분명히 토레 상표의 산수 공책 종이였다. 과부는 재판 속기록을 읽듯 그 종이를 읽으면서 탐정처럼 신랄하게 ‘벌거벗은’
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벌거벗은’ 당신은 그 대 손만큼이나 단아합니다.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
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빛납니다.
당신 머릿결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름날 황금 성전처럼.
과부는 부르르 떨며 종이를 구겨 앞치마에 다시 쑤셔 넣으면서
결론지었다.
“네루다 씨 즉 우체부 그 작자가 내 딸이 홀딱 벗은 걸 보았다고요”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우석균 옮김.
* 글감은 찾으면 안 나옵니다.
이야기 하다보면 그 속에 글감이 있고, 글 감속에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글감은 풍부하고, 글은 잘 못 서 창피합니다.
시장가서, 산에서, 집 안에서 사람을 만나서 글감은 무진장 있습니다.
첫댓글 벌거벗으면 예술적으로
좋은 점이 많군요 ~ㅎ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