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리몽전 - 3] 창궁무연(蒼穹武宴) “인아, 청하방도들은 모두 잘 돌아갔느냐?” 남궁민이 업무보고를 하러 온 남궁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 집안의 마차와 수레 여러 대를 내주어 우선 아픈 환자들부터 보내고 나머지는 청하방주께서 인솔하여 질서있게 돌아갔습니다.” “그래 네가 애썼구나. 청하방도들의 반응과 남궁세가 무사들과 가솔들의 반응은 알아보았느냐?” “예. 아버님. 청하방 무사들 모두 우리세가의 대인 대범한 조치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고 게다가 우리 집 밥과 술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상한 사람 없이 모두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믿어하지 않는 눈치들이었습니다.” “그렇겠지 지옥불에 한 발짝 발을 디뎠다가 용케 목숨을 건졌으니 얼마나 놀라움과 기쁨이 컸겠느냐. 그들 마음 구석에 늘 우리 남궁세가에 양보하는 마음 한 자락을 깔고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된 일이다. 우리 무사들과 가솔들의 분위기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완전히 잔치집 분위기입니다.” “이럴 때 교만한 마음과 지나친 살기를 키우기 쉬운 법이니 각 당주들과 상의하여 웃음소리가 남궁세가의 담을 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마음 쓰거라.” 남궁민이 여러모로 주의를 주고 남궁인도 고개를 충분히 살펴야 할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민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남궁혁 일행의 안위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그래, 혁이 일행의 거처는 어찌 마련 해 주었느냐?” “먼저 혁이가 한적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여 다래헌 뒤 쪽에 비어있던 조그마한 전각 두 채를 손 봐서 각각 혁이 내외와 그들 동생들을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부님은 산기슭 아래 초막에 머무시기를 고집하시여 대강 손을 보고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발을 들어줄 시비로 어르신께는 채송, 아우 내외에게는 채림 남매를 각각 보내어 우선 급한대로 필요한 것을 살피라 일렀습니다.” “그래 애썼구나, 먼 길 여행에 지친데다 오늘 새벽 그 난리를 치루었으니 네가 잘 좀 보살펴다오. 네 막내둥이가 예쁘지 않으냐.” 큰 아들 남궁인을 믿음직스런 눈길로 바로보며 남궁민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남궁인도 함께 웃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래 무사들 사이에서 창궁무연의 제한을 조금 완화하면 어떻게는가 하는 의논이 나와서 지금 총관과 재당, 무당 당주가 기준을 상의하고 있습니다. 정해지는 바가 있으면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이, 거주지, 무공과 무기의 종류 등 제한이 다양하여 참여의 폭이 넓을 수 없었지 않습니까. 아래의 논의는 무공과 무기의 종류에 대한 제한은 창궁무연의 근본취지와 정신과 직결되므로 논외로 하였고 나이, 거주지 제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하여 안을 만들라 하였으니 오늘 저녁에는 보실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남궁민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래 이제 네가 알아서 하거라. 더 이상 안휘에서는 우리 세가에 시비할 인물이나 가문, 세력은 없게 되었으니 한번 기운차게 일해 보거라. 나는 이제 좀 쉴테니 모든 것을 네게 잘 챙겨다오.” 청하방과의 새벽싸움 이후 소문이 나는 새 처럼 안휘는 물론 중원 곳곳으로 날아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휘에서 조금이라도 행세한다는 자들은 모두 선물과 지참금을 들고 찾아와서 참여의사를 밝혔다. 지금 접객당의 문턱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고 선물을 쌓아 둘 창고가 모자랄 정도였다. 재당의 모든 문사들과 일꾼들이 나서서 분류와 정리작업을 하고 있으나 분류되고 정리되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이 더 많은 노릇이니 남궁세가 여기저기에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알아서 자라서 찾아온 막내도련님 남궁혁과 그 동생들이라는 이들의 사람 같지도 않은 무공 때문이니 자연히 남궁혁 일행은 모든 세가사람의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며 일체 외인의 접근을 차단하는지라 그저 신비감만이 더 해갔다. 그들의 이름이며 나이, 무공내력, 좋아하는 여성취향까지 모든 것이 화제였고 단연 가장 인기는 무공도 강하면서 학문도 높고 잘 생긴 귀공자 모습의 셋째 이안과 넷째 진리가 으뜸이었다.
이안은 정보 쪽에 특화된 공부를 한 자로서 문지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인물로도 누구에게 빠지지 않고, 기품도 뛰어난데다가, 말솜씨까지 막힘이 없으니 이보다 훌륭한 문지기는 다시 구하기 어려울 듯했다.
진리 또한 총관 이문송과 늘 함께 다니면서 잔치는 물론이고 재당까지 챙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가주내외와 남궁혁의 처소를 보이지 않게 호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참여인원을 천명으로 예상하고 음식, 술, 자리 등을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참여가 대폭 늘을 듯하니 준비가 빠듯할 듯싶었다. 진리는 청하방 부방주 정병철과의 협상을 단 두시진 만에 끝내고 딱 다섯 항목의 협정문에 함께 서명날인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쳤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이 신속한 협상이었으나 그 협정문의 내용은 남궁세가가 지켜오던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는 가풍을 그대로 담았고, 누가 보아도 남궁세가의 대인대덕을 칭송할 내용이었다. 협정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남궁세가와 청하방의 평화적 교류와 공존을 위한 협정 1. 청하방은 12월 초이틀 있었던 불미스러운 공격행위를 정중히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앞으로 남궁세가에 대한 어떠한 적대행위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공격에 대한 피해보상금으로 황금 오천 냥을 12월 10일까지 남궁세가의 재당에 납부한다. 2. 청하방은 사도련(邪道聯)을 즉시 탈퇴하고 남궁가는 물론 비롯한 안휘의 모든 가문들과의 분쟁을 삼가하고 교류와 친목을 늘려 나간다. 3. 기존 청하방의 영역이나 사업체 기타 권리관계에 대해서는 남궁세가에서는 일체 간섭하지 아니하며, 분쟁이 있을 때도 협상을 통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무력행사 철저히 배격한다. 4. 남궁세가는 청하방과 일부 영역이나 사업물품이 겹치는 사업에 대해서는 청하방의 요구에 우선 양보하고 협상과 토의로서 결정한다. 역시 무력행사는 철저히 배격한다. 5. 청하방과 남궁세가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어떠한 무력행사도 자제한다. 청하방주 정병국의 위임에 따라 쌍도무극 정병철(淸夏邦 部邦主) 남궁세가주 남궁민의 위임에 따라 남궁진리(南宮世家 財堂副堂主) 공증(公證) 반기종 안휘성(安輝城) 도지휘사(都指揮司諸) 여기서 피해보상금 황금 오천 냥은 남궁세가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돈벼락이었다. 그렇다고 몰살의 위기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사업기반마저 그대로 인정을 받았으니 청하방의 입장에서도 황금 오천 냥이 결코 비싸다 할 수 없는 액수였다. 황금 한 냥이 물경 은자 20냥을 호가하니 은자로 환산하면 물경 은자 10만냥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자금이었다. 남궁세가 본가의 한 달 예산이 예비비 까지 포함하여 월 평균 은자 일만 냥인 것을 보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액수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무인검 이문성과 소가주 남궁인은 얼싸 앉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였다. (화폐의 종류를 금전, 은전, 동전으로 하고 단위를 냥과 문을 쓰려고 합니다. 시대는 명 말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금 한 냥을 은 스무 냥으로, 은 한 냥을 동전 1000문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찾아보니 명 만력 연간에 은 한 냥으로 쌀을 두 섬을 살 수 있다는 기록이 있고, 그 값어치를 오늘로 계산해 보니 150,000원 쯤 되더군요. 그때 명 황실 일 년 재정이 대략 은 200만 냥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금 한 냥은 삼백만 원, 은 한 냥은 15만원, 동전 하나는 150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될 듯합니다.) 사실 창궁무연은 특별회계로 관리되고 지출되고 있으나 늘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예산이었다. 무사들 무복 한 벌이라도 철에 맞게 갖추어 통일시키려면 1인당 은 다섯 냥은 들어가니 본가무사 만하더라도 은 이삼천 냥이 금방 훌쩍 넘어가니 늘 집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복장을 일시에 통일되게 지급하지 못하고 낡아서 떨어지면 그때그때 지급하니 비용은 비용대로 더 들고, 생색도 않나는 그야말로 귀찮은 심부름에 불과했다. 게다가 검은 고가의 고급무기인지라 한 자루에 은 열 냥은 주어야 쓸 만한 것을 살 수 있으니 한꺼번에 지급하는 것은 지금까지 꿈도 못 꾸어 온 일이었다. 알뜰하고 투명하여 이문성이 가져오는 장부는 보지도 않고 인가해준다는 말을 듣는 총관 이문성도 늘 무사들과 식솔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잔치를 열었으니 잘 먹고 잘 놀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 그 음식 값이며 술 값이 만만치가 않아 1인분 단위로 세밀하게 계산하여도 구색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한꺼번에 은자 십만 냥이라는 생각도 않았던 거금이 들어오자 총관 이문성과 남궁인은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안 마셔도 저절로 흥취가 날 만큼 기쁜 사람들이 되었다. 본가무사는 물론 입촌무사들까지 신속하게 신체치수며 필요한 물목을 보고하게 하여 무사 일인당 열냥 한도에서 무복과 훈련복, 생활복, 신발 따위 복장 일체를 단 열흘 만에 만들어내는 솜씨를 부리기도 하였다. 천과 실, 가죽 따위의 재료들도 최고급으로 하여 산하의 모든 바느질 잘하는 여인네를 총동원한 것은 물론이다. 옷이 날개라고 모두 최고급 천에 최고급 가죽으로 된 복장으로 통일되게 갖추어 입자 청룡 현무 주작 백호 4당의 무사들은 물론 입촌무사들까지 그 기개가 더욱 늠름하고 돋보여서 무인검 이문성은 어깨를 잔뜩 부풀리고 다니면서 세가를 활보하였다. 검만은 제작에 시간이 걸리는지라 다음 해로 미루기로 한 것이 아쉽지만 검보다는 우선 사람의 차림새를 살피기 마련이니 그 정도로 만족하여야 했다. 우선 간부급부터 교체를 시작했다. 그리고 잔치상 비용도 대폭 늘려서 일인당 동전 100문을 기준으로 했던 것을 두 배로 늘리니 상차림에 모자람이 없었다. 본가 안에 있는 음식터가 부족하여 연무장 한쪽에 대형 음식터를 가설하고 산하의 솜씨 좋은 숙수들과 아낙들을 총동원하여 하루 종일 지지고 볶는 음식 내음이 온 세가를 진동시킬 정도였다. 손님 상은 일 인상 기본 상차림이 차 한 주전자, 홍주 1병, 안주상(고기, 탕국, 과일, 나물, 생선, 부침 등), 돌아갈 때 들려서 보낼 선물용 음식과 술까지 모두 부족함이 없이 챙겼다. 어느 잔치보다 푸짐한 잔치였다. 그리고 여흥을 위한 악사들과 재주꾼들도 종류별로 분야별로 모두 불러 들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차례와 내용을 정하도록 하였다. 이 모든 것을 남궁인과 이문성이 도맡아서 신바람이 나서 해나가니 남궁의와 4개 무당 당주들은 비무준비에만 심혈을 기울 일 수가 있었다. 아래 무사들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여 창궁무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조건을 반 이상 없애서 남궁세가 휘하의 촌락에서 대거 신청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전에는 나이제한이 엄격하여 15세 이상 20세 이하 했으나 이번에는 나이제한 자체를 없앴다. 남궁세가의 기본무공을 익혔다면 간난쟁이이든 꼬부랑 할아버지든 상관없이 창궁무연에 참가자격을 준다는 소문이 나자 남궁세가 휘하 대소 200여개 촌락에서 그동안 많아야 한두 명 있을까 말까하던 신청자들이 세 배, 네 배로 늘어나 다시 제한을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기본무공을 익혔다면 남궁세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무사들에게도 참가자격을 주자 역시 두 배 이상 참가자가 늘어 어쨌든 평소 보다 열배는 그 신청자가 늘었다. 그러나 촌장과 촌무의 추천만은 반드시 받도록 하여 요즈음 촌장과 촌무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고 심지어는 돈으로 추천장을 사고 팔려는 시도가 발각되어 치도곤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럴 경우 촌장이나 촌무의 경우 그 직위를 해제하고 서로 주고 받은 바의 10배를 벌금으로 내도록 강력하게 처벌하고 단속함으로 해서 차츰 사그라 들었다. 청하방에서도 방주는 물론 모든 간부들까지 상주하다 시피하며 잔치준비를 거들었다. 청하방은 청하표국이라는 빠른 기동력과 운반수단이 있고, 안휘 제일 기루인 만화루를 비롯하여 안휘성내 음식점, 술집의 8할을 청하방에서 운영하고 있으므로 잔치 사흘 전부터는 임시휴업까지 해가면서 모든 점원들을 남궁세가 잔치 준비에 동원하였다. 음식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것은 만화루주이자 청하방의 장로이기도 한 문소금(汶素琴)이었다. 안팎으로 백여 개의 화덕에 솥을 걸고 한 화덕에 두 사람 세 사람씩 달라붙어 음식을 해대니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였다. 드디어 창궁무연의 날이 밝았다.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모두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반질반질한 새까만 비단에 국화무늬를 촘촘히 수놓은 비단화의를 화사하게 차려 입고 남궁강, 남궁민, 남궁인, 남궁소까지 직계 4대와 그 부인들과 자식들이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잔치석상에 나타나 잔치자리의 가장 윗 자리에 노가주 남궁강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잔치와 창궁무연이 시작되었다. 크게 1부는 8순을 축하하는 잔치마당이고, 2부는 인품(人品), 지품(地品), 천품(天品), 무품(武品)으로 이루어진 네 단계의 승급시험과 절차였다. 진정한 창궁무연인 것이다. 창궁무연의 역사는 남궁세가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창궁무연을 통해 수많은 기개 높은 인재들이 배출되었고 그들이 남궁세가의 두리에 뭉쳐 강고한 결속으로 남궁세가의 모든 독문무공을 차별없이(물론 등급과 적서의 차별은 있었다) 배워서 지난 300여 년 동안 남궁세가의 강력한 무력기반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올해 열리는 창궁무연이 187회 무연이니 그 역사를 짐작할 만하게 한다. 게다가 남궁세가는 다른 세가와는 달리 적손의 수가 늘 극히 적어 많아야 두세 명에 불과한지라 문호를 크게 개방하여 적서와 성씨의 차별 없이 촌장과 촌무의 추천으로 제일 첫 품계인 무품(無品) 무사들의 연공관인 창궁무관 제1관부터 다른 가문은 한글자도 밖으로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독문의 기본무공을 그 무공을 대성한 천품 이상의 교관들로 가르침에 따라 배우게 되니 거의 한 식구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연무하는 바탕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각 품계는 각각 2년간의 기본교육과정으로 하고 있지만 재질과 노력, 끈기, 기백등의 차이로 성취만 인정받으면 언제든 다음 품계로 승급을 신청하여 심사받을 수 있어 무품의 애송이(대개는 12살부터 17살정도까지)들부터 천품의 늙수구레한 40대 장년무사들까지 창궁무관 1, 2, 3, 4관에서 하루 반 나절 이상 팥죽땀을 흘리며 수련에 힘을 쏟고 있었다. 천품을 넘어 무품(武品)에 이른 경우에는 남궁세가의 대표적인 독문검법인 창궁무애검법과 답청검법을 대성의 경지까지 닦으면 보직이 없더라도 무보직 상태로도 남궁세가 근방에 집과 일정한 토지 그리고 천품 무사의 배가 되는 은 삼십 냥을 월 녹봉으로 받으니 누구나 불을 켜고 무품에 들려 애를 쓰니 날로 무공실력이 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심지어는 남궁세가의 강아지도 창궁검법 한 초식은 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백년전부터 17대 가주 검성 남궁기(南宮基) 대에 이르러서는 성별의 차별마저 철폐하여 남녀노소를 묻지 않고 그 재질과 무공을 익히려 하는 기백만으로 사람을 뽑고 가르치니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숙수도, 간부들과 수발을 드는 시비들도 식칼을 들고 창궁검법을 시전할 지경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티껌불은 채로 털어내고 통통한 알곡만 가득한 형상이었다. 이 힘으로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황조 또는 새로운 세력이나 무림맹 들과 합종연횡하여 안휘제일세가의 이름과 긍지, 그리고 실질적인 무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이 창궁무연은 안휘남궁세가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그리고 22대 남궁엄 가주의 엄명으로 창궁학관을 열고 문무를 병행하니 남궁세가의 가솔들 가운데 천자문 하나 줄줄 외우지 못하는 자가 없을 정도로 학풍이 드높았다. 그런 학풍을 바탕으로 간간히 성시와 대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여 중앙과 지방의 벼슬자리를 무수히 차지하고 앉으니 이 또한 남궁세가의 든든한 권력기반이 되었다. 지금 일부를 진행하고 있는 남궁가의 사위 무인검 이문성만 하더라도 그 학문의 성취에서 황궁의 대학사에 못지않다는 평을 듣고 안휘에서는 당할 자가 없을 정도라고 모두 공인하는 바이니 남궁세가의 저력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문송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저희 집안 잔치에 이토록 많이 참여 해주셔 자리를 빛내주시는 만장하신 어르신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187회 창궁무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잔치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특색있는 것은 신분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하객들에게 주어지는 잔치상이 통일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팔순을 맞은 노가주 내외의 잔치상만이 다소 푸짐했으나 그다지 특색 있지도 않았다. 상하의 구분이 없이 모든 이를 귀히 여기는 남궁세가의 가풍이 보이는 잔치모습이었다. 잔치의 절정은 남궁혁의 탄금 소리에 맞추어 운리몽이 고운 목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노래를 부르자 장내는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남궁노가주의 내외의 생일 상 앞에서 남궁혁의 동생이라는 자들 탄금 소리와 노래소리에 맞추어 창궁검법을 풀어내는데 이것이 과연 창궁검법이 맞는가 싶게 아름답고 천의무봉하였다. 남궁세가의 모든 식솔들과 무사들은 입을 딱 벌리고 저게 창궁검법이 맞느냐 놀라고 있었다. 어쨌든 밤이 이슥해지도록 잔치는 흥겹게 무르익어 갔고 남궁세가의 모든 식솔들과 무사들은 대취해갔다. 그러나 청하방은 물론이고 안휘의 모든 세력들을 대표해서 온 이들의 얼굴은 함께 기뻐하지만 못하였다. 유시(酉時:하오6시)가 넘어서자 청하방주를 비롯한 안휘의 대표되는 가문의 인물들이 다시금 축하인사를 거듭하고는 썰물 빠지듯이 물러갔다. 창궁무연 2부는 어차피 내일부터 닷새 동안 열리고 어차피 외부에는 공개도 안 되니 잔치는 이제 집안 식구끼리 만의 잔치인 것이다.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여보시오 정방주. 내가 술 한잔 낼터이니 만화루로 갑시다. 궁금한 것도 너무 많고 술도 부족하지 싶소.” 목소리 걸걸한 철기보 보주인 철기단창(鐵騎短槍) 배기환이었다. 청하방과 함께 안휘성에서 대표가 되는 가문들인 이가장, 명가장, 성가장, 철기보 등의 가주들과 나름대로 실세가 되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나도 안그래도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해서 피가 다 보탈 지경이었다오. 갑시다.” 청하방주 정병국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 섰다. 금새 만화루로 자리를 옮긴 청하방주 정병국, 철기보주 배기환, 이가장주 이문결, 명가장주 명세록, 성가장주 성인무, 화가장주 화천성, 금준방주 조명길, 홍의당주 강상명, 안휘성 도지휘사 반기종, 청린학관주 유홍철까지 남궁세가를 내놓고는 안휘성의 9할을 움직이는 인물들이었다. 역시 성질 급한 배기환이 나서서 술을 권하며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방주 내가 둘이 되어 방주에게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하는 정방주가 도데체 어찌된 일인지 속 좀 시원하게 말씀 좀 해주시오. 이 배모는 이번에는 남궁세가를 완전히 뭉게고 안휘를 그야말로 일통하실 줄 만 알았소.” 정병국은 씁쓸하게 술 만 거듭 들이켰고, 남은 사람들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정병국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좋소. 이제 와서 내가 무얼 감추겠소. 자. 한 번 돌려보시오. 남궁세가가 우리에게 내려준 구명줄이요.” 정병국은 남궁세가와 맺은 협정문 원본을 탁자에 올려 놓았다. 모두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협정문을 살펴보았다. “이대로라면 청하방이 손해봤다고 할 것도 별 반 없는 것 아니오. 황금 오천 냥 쯤이야 이 만화루 일 년 벌어들이는 돈에 불과하니 그저 잔치 축하금으로 던져 버렸다 해도 정방주 체면에 그리 크다고 하지 않을 것이요.” 명가장주 명세록이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무언가 숨기는 것이 라도 없는지 거듭 물었다. “그렇소. 내 사도련에서 탈혼삼마 일행은 물론이고 사도련 정예무사 50명까지 지원받아서 이번에야 지긋지긋한 남궁가를 끝장내려 하였소. 그야말로 남궁가의 주춧돌을 뽑을 각오였소.” 정병국은 목이 타는지 술을 벌컥 벌컥 들이킨 뒤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날 나는 천외천의 무공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천군만마의 무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 속 깊게 깨닫고 좌절하고 절망했소. 내 비록 화경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니 근래 크게 깨달은 바가 있고, 그동안 무수한 실전으로 갈고 닦은 쌍칼만 있다면 누구도 무섭지 않다고 자부하며 내심 안휘제일을 생각했었다오. 하지만 도저히 어찌해 볼 수가 없습디다. 내가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웬만한 아이들도 아는 육합권으로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면 믿으시겠소. 더도 덜도 아니고 어린 아이들이 무관에 가면 처음 배워는 딱 그 육합권입디다. 그런데 아무리 용을 써도 그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 번을 피하지 못했소. 나는 탈혼삼마가 진을 짜지 못하도록 빈틈을 노려 속전속결로 각개격파 한다면 겨우 득수할 있을 것이오. 그 탈혼삼마는 물론이고 그 제자들까지 단 일검에 무슨 포탄이라도 맞은 듯 우수수 나가 떨어지더이다. 무려 삼 장 너머에서 그저 아무 철방에나 파는 싸구려 철검으로 그저 옆으로 한 번 휘둘렀을 뿐이오. 나중에 들어보니 모두 미간에 콩알 같은 칼자욱만 남았다더구려. 나는 물론 살기등등하게 남궁세가의 대문을 넘었던 모든 이들은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소. 나는 이미 그 남궁혁 무어라는 애송이의 일수도 막지 못하고 제압되어 개 맞듯이 맞고 있었고, 우리 무사단 천 명도 모두 그놈 동생놈들이라는 단 열 놈들에게 제압되어 개처럼 두들겨 맞고 있었으니 반항은 고사하고 그저 그만 때리고 깨끗하게 죽여라 하는 심정이었다오. 그 꼴을 보고 오줌을 지린 자들도 부지기수고 무서워서 신음 소리도 못냅디다.” 다시 정병국이 술잔을 연거퍼 들이키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으면서 이들이 우리를 죽이려 마음 먹었다면 정말로 두 수도 필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그래서 더 무서웠소이다. 내가 지랄염병이라고 지옥굴에 제발로 기어 들어왔나 뼈저리게 후회했소. 그들의 무공은 사람의 무공이 아닌게요.” 술자리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정병국이 스스로 잔에 술을 채우고는 마시기를 거듭하다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남궁가주가 괜히 대인대덕하다는 칭송을 듣는 것이 아닙디다. 남궁가가 괜스레 의기천추라는 소리를 듣는 가문이 아닙디다. 그저 죽기만 기다리는 우리들을 건져 준 이가 바로 창궁검 남궁인 대협이었소. 정말 대인대협이란 칭호가 너무도 부족하더이다. 막내아들을 슬그머니 말리더니 나와 내 형제들에게 어떠한 모욕도 주지 않고 그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청합디다. 우리 무사들에게도 어떤 모욕도 주지 않고 오히려 치료를 해주고, 거하게 아침상까지 차려 줍디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소. 남궁세가에서 피해보상금은 애초에 요구도 안했소. 내가 우겨서 준 것이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후환이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니 자손만대로 남궁세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울 생각이오. 무조건 양보할 생각이란 말이오.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들 마시오. 내가 비록 남궁가의 무력에 굴복은 했지만 지녔던 세력이나 무력이나 털끝만치도 잃지 않고 보존하고 있으니 괜한 헛된 꿈들 꾸어 서로 피 보는 일 없도록 합시다. 이것이 내 숨김없는 진심이오.” 나머지 세가의 장들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출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원문보기 글쓴이: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