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1-30
『파파(婆婆)와 함께 꽃을 캐러 나갔다가 가시나무 숲 속에서
상공을 발견하였습니다. 상세가 너무 엄하여 실례인줄 알면서도
저의 멋대로 제 처소로 모셨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용서를...』
목숨을 구해준 큰 은혜를 베풀고도 상대가 수행자라는 것을 잊
지 않고,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오히려 고개
를 숙이는 여인 앞에서 육초량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육초량은 눈이 부셨다. 이처럼 마음씀이 깊고 고운 여인을 바
라본다는 것이 피 냄새에 젖어 있는 자신에게는 도무지 과분한
일로 느껴졌다.
『소녀의 아버님께서도 강호의 무사이셨답니다.』
취국헌(聚菊軒)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소축(小築) 안이었다. 발
을 걷어올린 창가에 육초량은 옥소음(玉素音)이라고 스스로를 밝
힌 여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국화잎을 다려 빚었다는 차는 그 맑은 호박빛과 함께 그윽한
향기와 맛이 그만이었다.
강호의 이름 없는 무사 시절 그녀의 부친은 한 여인을 사랑하
게 되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름다운 딸 하나를 얻었다. 하북
성 획록현에서였다.
그녀의 부친은 그곳에 정착하여 석화무관(石火武關)이라는 이
름의 무도장을 열어 문하를 가르치며 살았다. 행복한 삶이었다.
그녀는 종종 부친을 따라 석읍산으로 약재를 찾아 떠나곤 했
다. 때로는 닷새 씩 걸리는 험한 산중 생활이었으나, 어린 그녀
는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만이 즐거움
이었고 행복이었을 뿐, 무서움도, 고달픔도 몰랐다.
그녀가 다섯 살 나던 해 여름, 사흘의 외출 끝에 부친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행복은 산산이 조각난 채 널려 있었
다.
석화무관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문하 제자들마저 모두 죽거
나 크게 다쳐 있었던 것이다. 그 참상은 그녀의 어머니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그녀는 벌거벗겨진 채 내실 한 가운데에서 눈도 감
지 못하고 숨져 있었다.
그녀의 부친은 거의 실성하다시피 이성을 잃고 통곡했다. 그
후, 그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다시 거친 강호로 나섰다.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다.
『강호를 주유하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악행을 자행하던 자 하
나를 죽인 적이 있었는데, 그 자는 흑호회라는 작은 방회의 소회
주였지요. 그 무리들이 줄곧 복수를 한다고 노리다가 결국 그 참
극을 저지른 것이었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담담히 자신의 신세 내력을 들려주
는 옥소음이었다.
강호의 공분을 두려워한 흉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 버렸고,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안고 하나 하나 그들을 찾아 다녔다. 거칠
고 험한 세월이었다.
『원흉인 다묘악이란 자를 찾았을 때가 아버지의 마지막이었어
요. 그 자는 아버지를 독살하였고, 어린 저마저 죽이려 하였지
요.』
『으음...』
육초량은 그 때의 험악했을 상황을 떠올리고 깊게 신음했다.
『그 때 한 은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그 광경을 보고 악인을 죽
여 저의 복수를 해 주었어요. 그 후 의지할 곳이 없는 저는 그
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지요.』
육초량이 가슴을 쓸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험한 세상에
도 역시 의인은 있는 것이다.
『이 장원도 그 분께서 저의 거처로 마련해 주신 것이에요.』
고개를 숙이고 한 동안 조용히 마음의 격동을 가라앉힌 옥소음
이 수줍게 볼을 붉혔다.
『산중에서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공자 님을 발견했
을 때 저는 문득 그 옛날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어
요.』
『......』
『저는 마치 아버님께서 중상을 입고 제 앞에 나타나신 것 같은
착각을 느꼈지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부(先夫)에 대한 깊은 그
리움과 안타까움이 자신으로 인해 되살아났던 것이다.
『부디 상처가 완쾌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주시기를...』
옥소음은 선부가 위험에 빠졌던 때, 그녀 자신이 너무 어려 부
친에게 오히려 짐이 되었을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
을 항상 한스럽게 생각해 오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그 때를 떠
올리며 육초량의 상처를 돌보고 시중들어 주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잊고 부친의 영혼에게 용서를 빌고자 하는 것
이다.
그녀의 그 안쓰러운 마음 앞에서 육초량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원에 머문지도 벌써 보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상처도 아물
었고, 기운도 다시 살아나 그를 들썩이게 했다.
『아아, 따분하다.』
몇 번 팔을 휘둘러 본 육초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나 팽
팽한 긴장 속을 달리며 강인하게 단련된 그의 육신이었다. 그것
이 이 한가로운 평화 속에서 이제는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기 시
작한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팔다리를 놀리는 그였
다.
옥소음의 정성은 지극한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그의 상처를
돌보아 주는 외에 그를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했다. 차
를 끓여오고, 술시중을 들었으며 조용한 밤에는 비파를 탔다.
육초량은 그녀가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 또 언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육초량의 잠자리를 보아주고 나면 그녀는 그가 깊
은 잠에 들 때까지 지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육
초량이 눈을 뜨면 그녀는 어느새 와 있었는지 새 옷을 들고 기다
리고 있었다.
육초량은 묵묵히 옥소음의 그러한 정성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외로웠던 선부에게 하지 못했던 정성을 자신을 통하여 대신함으
로써 마음 속의 한을 풀고자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한 것이었으나, 하루 이틀이 지
나면서 그는 어느새 그녀의 지극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
었다. 육초량은 문득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어떻게 된 걸까, 나라는 놈은. 인간의 무기력함을 경멸하면서
그새 자고 먹는 일의 편안함을 즐기게 되다니.』
이렇게 스스로를 꾸짖으면서도 우수에 젖어 있는 옥소음의 눈
을 대하노라면 쉽게 떠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육초량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깜짝 놀라야 했다. 정이란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소리 없이 날아드는 비수 같아서 가슴을 찔리고 난
뒤라야 그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깨달은 육초량은 자신을 그 비수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모질게 가다듬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기심과 의혹이 그
를 붙드는 것이었다.
전각이 네 채나 되는 제법 큰 장원 안에 기거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에서 그것은 시작되었다. 옥소음과, 주방 일을 돌보며
그녀의 침모 노릇까지 하고 있는 노파와, 장원을 관리하는 중년
의 집사 한 명과 하인 셋. 그것이 장원에 딸린 식솔의 전부였다.
게다가 노파는 육초량이 장원에 든 이래 한 마디도 말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집사와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은 마치 벙어리들이기라도 한 듯 말을 하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가 할 일을 찾아 정확히 하면 그
뿐, 간섭하는 사람도, 거드는 사람도 없었다.
육초량은 비교적 자주 보게 되는 하인들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 세 명의 하인들은 모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자들이었는데, 특히 발걸음이 가볍고 몸이 민첩했
다.
여느 산골의 순박한 청년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일을
하다가 멀리서도 육초량의 기척을 느끼고 조심할 만큼 이목 또한
예민했다.
관심을 갖고 주의해 살펴보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늙
은 노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굴 껍질처럼 거칠고 단단한 노파의
주름진 손은 믿기 힘든 예민함으로 손끝에 닿는 모든 재료를 주
무르고 다듬어 훌륭한 음식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노파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바느질하고 있는 그녀를
얼핏 훔쳐보게 된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재빠르고 꼼꼼한 손놀림
은 그것이 눈이 짓무르고 수전증 증세를 보이는 노파의 솜씨라고
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육초량은 그러한 모든 사실을 관찰하고 나서 자신이 머물고 있
는 이 장원이 결코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옥소음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정숙하고 섬세한 규중의 여인에 불과했다. 순종
과 헌신, 겸양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교양 있는 처자였던 것이다.
섬세하고 다정다감하며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주변을 가꾸어 가는
여인에 지나지 않았다.
* * * *
학이 웅얼거리듯 맑고 청량한 소리였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
에 지그시 눌린 줄에서 뽑아져 나오는 비파의 음률은 세상의 것
이 아닌 듯했다.
가을도 밤이라 그리운 그대
거닐다 바라보면 머언 밤하늘
솔방울 떨어져 밤은 한결 고요한데
이 밤을 그댄들 잠을 이루리...
懷君屬秋夜
散步詠凉天
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
달빛 아래 취국헌의 옥난간을 어우르다 향목(香木) 기둥을 타
고 올라 서까래 끝에 맺힌 그녀의 노래 소리는 한숨으로 흩어져
달무리를 이루었다. 스스로의 감정에 취한 듯, 살포시 눈을 내리
고 홍조를 띄운 그녀의 두 볼을 보며 육초량은 숨이 막혔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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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소음 그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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