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연유를 살펴보면 조선말엽 정사년 1917년에 금강산 유점사에 대 강백으로 계시던 동선(東宣)노사(老師)와 50여명의 스님들이 모여 법화회를 결사 하여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 제목을 염송하였다는 증언이 있으며, 이것은 천태지대사의 교리에 의거한 제목염송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3. 또한 충남 에산에 있는 고찰로써 향천사라는 사찰의 주련에 보면 실상묘법연화경이라고 써 있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4. 혹 자는 실상묘법연화경이라고 하면 묘법연화경을 두 번 부르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무묘법연화경이라 제목을 부르는 승려들이다.
5. 나무(南無)라 함은 의지함이며 귀의함을 뜻한다.
6. 나무묘법연화경이라 부르게 된 동기
나무 묘법연화경을 부르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해방 전에 일본인들이 남묘 호레엔게교라고 일본말로 부르게 하였다. 그러나 해방이 된 후에 일본이 밑에서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이 해방이 되어 일본말로 계속 할 수 없으므로 우리말로 나무 묘법연화경이라고 제목을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은 밀본말로 남묘호레엔게교를 일본말 그대로 불러야 성불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각국의 언어가 다른데 일본말로 해야 성불한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며 일본인들이 일본인을 위해서 일본말로 해야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시간에도 일본인드은 역사 마저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7.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으로부터 36년 동안이나 지배받아 왔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압박과 고통을 받았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좋은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을 위하여 라는 일련대사의 말씀을 세계를 위해여 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일본국과 일본인을 그렇게 까지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일본말로 해야 성불한다고 함은 일련대사의 뜻이 아니다.
8. 이제 우리는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나무 묘법연화경이라는 글자 속에는 일련대사의 원력이 들어 있으며, 일련대사의 나무묘법연화경 만다라에는 일본의 역대 천왕이 들어 있으며, 일본의 국조 신과 일본의 민족 신이 들어있다. 일련대사의 만다라에 경배를 한다면 일본의 천왕을 받들고 일본을 받드는 꼴이 될 것이니 각자가 생각해볼지어다.
9. 일련대사는 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네 가지 원력을 세웠다.
첫째. 일본을 위하여 안목이 되겠다. (빛이 되겠다는 뜻)
둘째. 일본의 기둥이 되겠다.
셋째. 일본을 위하여 전함이 되겠다. (주춧돌이 되겠다는 뜻)
넷째. 일련대사는 먹물을 흘려 나의 혼을 담겠다.(南無妙法蓮華經 의 글 속에 혼을 담겠다는 뜻이다.)
다섯째. 일련대사는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은혜를 갚아햐 한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지키기 위하여 원력을 세워 이를 성취하였음이다.
이렇게 일련대사는 자기의 나라를 위해서 원력을 세워 남묘호레엔게교를 온 국민에게 부르게 하였고 그 원력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으리라.
우리가 일본을 위하여 나무묘법연화경을 부른다면 우리민족의 주체성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일본인은 자기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나무묘법연화경을 부르게 하였는데 우리가 어찌 일본을 위해서 나무 묘법연화경이라 불러야 하는가.
물론 나무묘법연화경이 일본의 것만이 아니며 허물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허나 700년을 일본인이 불러왔고 우리말로 부르게 된 것은 해방 전에 일본인이 남묘호레엔게교라 부르든 덧을 해방후에 그대로 부를 수 없으므로 우리말로 나무묘법연화경이라 바꾸어 부른 것밖에 없다.
우리말과 일본말이 다를지라도 글자는 같다. (南無妙法蓮華經)
일련대사는 "내가 태어난 나라의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함을 강조하심이라, 허나 우리민족은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내가 작은 것을 성취하였다고 하여 나라의 안위도 안중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일본의 천왕을 받들고 일본의 국조신을 받든다면 이것은 결국 일본을 받들면서 성불하겠다는 것이 되며, 일련대사의 말씀에도 위배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고래로부터 불려져 온 실상묘법연화경이라 제목을 불러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10. 실상이라 함은 누차에 밝히지만.
첫째. 실상이란 나무묘법연화경의 이명이라 하였다. (일련대사의 어서 사전)
둘째. 일체제법의 실상이 그대로 묘법의 당체로 진실의 본체이니 불변의 진리를 말함이라.
셋째. 부처님께서 중생을 법화경에 인도함은 실상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넷째. 실상묘법연화경은 경지명합(境智冥合)으로써 드러냄이 강하다. 즉 실상은 묘법연화경을 더욱더 드러나게 함이라, 이것은 나와 더불어 한 사람이라도 법을 드러내어서 모두 다 성불코자 함이다.
11. 끝으로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과 묘법연화경의 삼보님께 간절히 바라옵건데 이제 우리는 석가여래의 비요지장이며 일체 제불의 비요지장인 묘법연화경을 우리 나라와 가깝게는 동양의 평화와 멀게는 세계 각국이 하나가 되어 일불 국토가 하루 빨리 이룩할 수 있도록 모든 중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실상묘법연화경 제목을 자국의 말로 불러 나의 국가와 다른 나라가 모두 화평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대자비심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중국의 천태대사. 우리나라의 현광대사. 일본의 일련대사. 세분의 대사께서는 화합항 일본과 같이 자기나라만을 위하여 악업을 짓지 말고 선업을 지어 삼국이 국태 안민하게 하여 묘법연화경이 꽃이 필 수 있는 실상묘법연화경을 모두가 염송하여 이 인연으로 각자 자기나라를 받들어 위함과 동시에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법화경의 핵심이 남묘호렌게쿄. 우리나라에서 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것이 묘법연화경 경전이랍니다.바로 법화경의 요체를 그 옛날 선조들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 그것을 일체중생이 모두 쉽고 바르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께서 가르쳐 주신 남묘호렌게쿄가 아닐까요?
제가 알고있기로는 우리나라도 독경을 언어(한국어)로 하였습니다.지금같이 체계가 안되었을때는 분명히 제목은 남묘 호렌게쿄 라고 했지만 독경은 한국어로 했었습니다.예를 들면 묘~호렌게쿄 방편품제2 이시세존 종삼매 안상위기 고사리불 이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외국사람과(일본인,중국인 인도인.등등
솔직히 이야기해서 일반회원이 세계각국의 회원과 같이 모여서 제목과 근행을 할 기회가 평생에 몇 번 있을까요? 아니 있기나 할까요. 어떻게 해서 한두번 있다고 합시다. 그 한 두번을 위해서 제 나라말 두고, 평생 뜻도 모르는 일본어로 근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도심, 즉 마음입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다스리면 부처이고, 그렇지 못하면 중생이지요. 그럴진데 일본어로 하면 마음(구도심)이 생기고 한국어로 하면 구도심을 깨뜨린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사유하고, 우리의 언어로 인식하는 것이 훨씬더 자연스럽고 조화롭습니다.
첫댓글 마지막 11번을 읽다보면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남묘호렌게쿄....
법화경의 핵심이 남묘호렌게쿄. 우리나라에서 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것이 묘법연화경 경전이랍니다.바로 법화경의 요체를 그 옛날 선조들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 그것을 일체중생이 모두 쉽고 바르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께서 가르쳐 주신 남묘호렌게쿄가 아닐까요?
제가 알고있기로는 우리나라도 독경을 언어(한국어)로 하였습니다.지금같이 체계가 안되었을때는 분명히 제목은 남묘 호렌게쿄 라고 했지만 독경은 한국어로 했었습니다.예를 들면 묘~호렌게쿄 방편품제2 이시세존 종삼매 안상위기 고사리불 이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외국사람과(일본인,중국인 인도인.등등
같이 제목을 한다면 다른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일본어로 하고 있는데 우리만 한국어로 하면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세계가 다 한가지로 하는데...,우리는 S G I 멤버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SGI멤버답게 일본어로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임신근님!!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생일날 잘 먹기 위해서 이레 굶는다'
속담을 찾아보니 요런 속담도 있네요 "삼년 가는 흉 없고, 석 달 가는 칭찬 없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일반회원이 세계각국의 회원과 같이 모여서 제목과 근행을 할 기회가 평생에 몇 번 있을까요? 아니 있기나 할까요. 어떻게 해서 한두번 있다고 합시다. 그 한 두번을 위해서 제 나라말 두고, 평생 뜻도 모르는 일본어로 근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논리를 세우려면 그럴듯한 논리를 세워야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지요. 시심시불, 시심작불이라고 했는데 일본어는 되고 한국어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입니다.
근행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습니다. 일본어라 낮추지 말고 한국어라 높이지 않는 마음에서 불법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어로 경문의 뜻을 정확히 배우려는 노력도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근행의 한자어의 뜻 풀이와 해석은 '법화경 방편품 수량품 강의'라는 책자를 통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시심시불 시심작불,,, 이 말은 ??? 어디에 나오는 말씀인가요???? 혹시 육조단경? 아니면 관무량수경? 인가요??
노력을 하는데 안해도 될 노력을 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일본어를 낮추고 한국어를 높이자는게 아니라 어떤 언어이든 언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굳이 일본어야만 한다는 것은 법화경의 가르침도 아니고, 니치렌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학회원의 이체동심의 단결이고 법화경에 대한 구도심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을 깨뜨리는 방향인가 아니면 조화롭게 지켜나가는 방향인가로 이해하시는게 어떨까요?
해도 될 노력과 안 해도 될 노력이란 구별을 누가 정의내릴까요? 스쟈타님의 기심의 일념이 그렇게 정할 뿐이겠지요. 저의 생각으로는 그런 일념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도심, 즉 마음입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다스리면 부처이고, 그렇지 못하면 중생이지요. 그럴진데 일본어로 하면 마음(구도심)이 생기고 한국어로 하면 구도심을 깨뜨린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사유하고, 우리의 언어로 인식하는 것이 훨씬더 자연스럽고 조화롭습니다.
<해도 될 노력과 안 해도 될 노력이란 구별을 누가 정의내릴까요?> >>>간단합니다. 그건 상식이고, 보편성이고, 타당성입니다. 그것에 바탕한 것이 조화로움이고, 자연스러움 아닐까요?
스쟈타님께서 제 말을 이해하시지 못한 것 같아 덧붙입니다.말법의 법화경은 남묘호렌게쿄입니다. 구도심이란 법을 받은 사람이 아닌, 수지하는 사람의 일념인 구도심을 말한 것입니다.
종교상의 보편성과 타당성은 이미 신심의 현증으로 실감하는 사람의 몫이지 머리로만 교리를 판단하는 이의 몫은 아닐꺼라 생각합니다.
독경을 한국어로 하느냐 일본어로 하느냐는 논리의 문제가 아닐 듯 싶습니다. 일본어로 해도 퇴전하는 이가 있고 , 한국어로 잠시 읽어도 환희하는 이가 있으니까요... 법화경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 여설수행의 마음이 중요하지요.
그 이외는 모두 지엽적인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지엽에 집착함은 과거의 자신의 숙습이거나 마의 작용이라고 이해됩니다.
상식과 보편성 그리고 타당성이라는 개념에 어떤 조건을 붙이면 그게 상식이며 보편성이 되겠습니까? "신심의 현증으로 실감하는 사람"이든 "머리로만 교리를 판단하는 이"이든 누구나 그러하다고 생각하는것이 상식이고, 보편성이 있는것이고, 타당한 것이지요.
여설수행의 마음이 중요하지요. 제 예기가 그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지엽적인(일본어로만 해야한다는) 사실에 집착한 것이 누구입니까?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논리에 맞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되지요.
스쟈타님과 저의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같군요 ^^ 이렇게 가다가는 스탸타님과 저의 글만 도배되는 건 아닐까 쪼금... 걱정됩니다. 정말 쪼~~금 걱정되네요
저는 좀 더 지혜를 쌓으러 물러가겠습니다. 스쟈타님...남묘호렌게쿄라고 꼭 한번 불러 보세요. 제가 님에게 드리고픈 말은 그것입니다. 그럼 담에 뵙기로 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