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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심리학 전공으로 미국에서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있는 더쿠야. 한동안 우영우에 정말 빠져 살다가 오늘 마지막회 보고 엄청 울었음 ㅠㅠㅠ 보내줄 준비가 안 됐다... 16화 내내 물개박수 치고 감탄하면서 봤는데 (박은빈 짱) 내가 적으려는 내용 관련해서 아직 글이 없는거 같아서 쓰던 페이퍼도 끝났겠다 처음으로 이렇게 긴 정보글 올려봐 ㅋㅋ 나는 자폐쪽 전공도 아니고 성인 환자들을 주로 다루는 트랙이라 전문적인 글은 못되겠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서 몇 년 공부하면서 약간이나마 배우고 느낀것들을 나누고 싶었음.
난 이 드라마가 참 좋은 기능이 많은 드라마고, 감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전국민이 자폐에 대해 알게된 계기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제작진들이 인정했듯 이 드라마는 다른 여느 드라마처럼 완벽하지 않고 여러 한계점이 있어 (또 서번트 이야기 라던가, 자폐인이 아닌 배우라던가).
그래도 개인적으로 자폐 탈부착이라는 단어로 우영우를 비판할 때마다 참 답답했어. 그리고 영미권 웹과 반응이 너무 달라서 흥미롭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이 이유로 욕을 먹는건 난 거의 못 본 거 같거든. 오히려 본인과 너무 똑같아서 너무 공감된다는 자폐인이나 가족이 정말정말 많았고, 심지어 남들이 보는 나를 거울로 보는거 같아서 보기 힘들다는 사람도 꽤 있었어.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본것이...
생각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자폐인의 존재를 인식하는게 어려운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었어. 우영우를 보면서 깨달은게, 미국에서 몇 년간 지내면서 주위에서 본인 혹은 누군가가 "스펙트럼에 있다 (on the spectrum)"는 표현을 꽤나 자주 들었거든? (보스턴 아님) 근데 우리나라에서 일상을 살다가 누군가가 "내가 자폐가 있잖아" 혹은 "걔가 꼭 악의가 있었던게 아니라 자폐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이런 말은 거의 듣기 힘들잖아? (갠적으론 한 번도 못 들어봄)
이런 존재 인식의 어려움은 다음 세 가지와 이어지는거 같아.
1.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사회적 이해
자폐 스펙트럼에서 '스펙트럼'을 생각할때 아래 그림의 막대기처럼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가 '더 심각한 자폐인이다' 라던가 '덜 심각한 자폐인이다' 라던가. 혹은 '고기능' 자폐, '저기능' 자폐라던가. 하지만 우리가 연구를 통해서 점점 이해하고 있는건 스펙트럼은 저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밑의 원에 더 가깝다는거야.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특성을 보여 수없이 많은 복합적 특성을 보이는.
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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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폐인 A씨: 영우처럼 언어 기능은 엄청난데 걷는 것이 약간 특이하고 소근육의 발달이 더뎌 병을 따는 것을 힘들어해. 이 사람의 아이큐는 120이라고 치자 (대략 절반 가량의 자폐인은 지능이 평균 혹은 그 이상임. 참고1). 수능도 잘 봐 명문대에 들어갔고 꽤나 좋은 기업에 다님.
2) 자폐인 B씨: 말씨가 어눌한 편이지만 운동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어. 이 사람의 아이큐는 95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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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텍스트만 봤을때 많은 사람들은 자폐인 A씨가 더 고기능 자폐고 B씨의 자폐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 A씨가 아이큐도 25나 높고, B씨보다 스펙도 좋고 연봉도 높으니까.
하지만 만약 상황이 달라진다면? 저 둘 다 무서운 상사와 밥을 먹게됐다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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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폐인 A씨: 사회적으로 많이 민감한 편이고 사회불안이 매우 높아. 그래서 이렇게 긴장되는 사회적 상황이 오면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엄청 더듬게 돼. 상사는 이 사람은 걷는 것도 특이하고, 물병도 혼자 못 열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뭐지? 라고 생각해
2) 자폐인 B씨: 분위기나 남의 눈치를 잘 읽는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편이지만 불안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그리고 부모님의 어릴적 교육 때문에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법을 잘 알아. 자주 미소를 띄고 있고, 미간을 봐서 눈을 마주치는 척 하는 법을 익혔고, 그렇게 궁금하지 않을지라도 남이 나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도 그 다음 문장에 물어보는 대화 기술을 익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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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보기엔 B씨가 덜 '이상하지' 않을까? 그럼 B씨가 고기능인가?
이런 이유로 '고기능' '저기능' 자폐라는 표현은 많이들 지양하는 분위기야. 기준도 애매하고 차별적일 수 있거든.
2. 마스킹에 대한 이해
위의 자폐인 B씨가 하는 '일반인'들처럼 행동하는 법을 마스킹 (masking) 이라고 해. 마스크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자폐적 특성을 감추는 거야. 하지만 그 특성이 사라지지는 않아. 이는 이번주 찬홍씨를 통해 잘 표현됐지 (물개박수).
감각적 민감함, 혹은 변화에 맞춰 전환하는 것이 어려워 공간을 옮길때 불편감을 느끼지만 안 보이게 꾹 참는 찬홍씨 (마스킹).
인철씨는 사회적 맥락에 맞지 않는 찬홍을 지적하며 예전과 똑같다고 얘기해 (자폐 특성은 발달 기간에 거쳐 지속적으로 나타남). 찬홍이 계속 왼쪽 가슴에 곤충 뱃지를 달고 나오던데 이것도 아마 의도한 거겠지?
이래서 자폐 '탈부착'이라는 말은 정말 차별적일 수 있어. 사회적 상황 특성이나 그 순간 교류하는 타인과의 관계, 본인의 정서 상태, 마스킹을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 여부에 따라 정말 달라질 수 있는게 자폐의 '증상'인데, 누군가가 자폐가 있었다 없었다 한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마스킹은 자폐인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쓰는 전략인데?
3.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에 대한 이해. 하지만....
자폐인 A씨, B씨, 내가넷플로키운영우, 4095만 4173명 개인정보 빼돌리면서 영우보고 용감하다고 하는 찬홍, 펭수 좋아하는 정훈이 등 정말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 한 장애로 묶여.
그리고 제비를 사랑한 혜영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발달장애로 묶이기에, 신경다양성 (neurodiversity)라는 용어와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로 표현돼. 성소수자처럼. 이들은 신경다양인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음 neurodivergent, ND)이라 불리고 이런 특성이 없는 '정상인'들은 신경전형인 (neurotypical, NT)이라고 불려.
그리고 이번주 회차에서 영우의 동생은 무지개 색깔의 여러 물건들이나 감각 장난감을 (sensory toy,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장난감... 피짓스피너나 큐브나 뭐 방울 터트리기등 엄청 많음) 여러개 가지고 있는걸 볼 수 있어. 그리고 귀마개와 안대를 끼고 자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영우와 같이 감각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줘. 그리고 큐브나 게임기 같이 특정 물체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걸 볼 수 있지. 이는 신경다양인의 대표적인 특성들이야 (특히 자폐나 ADHD). 하지만 진단을 받을 만큼 기능에 지장이 있는것 같지는 않지?
자폐와 같은 발달 장애는 같이 DSM에 있는 우울이나 불안 장애처럼 걸렸다가 나았다가 할 수 있는 병의 개념은 아니야. 본인이 갖고 태어난 특성에 가깝지. 이것이 자폐 권리 향상을 외치는 사람들이 자폐가 있는 사람 (person with autism) 이 아니라 자폐인 (autistic person)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자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신경전형인들은 신경다양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이 세상이 다 똑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배우게 돼. 우리가 영우를 통해 16화 동안 느껴왔던 것처럼...
그래서 자폐 권리 향상 운동가들은 신경다양인들이 신경전형인의 세상에 맞춰 마스킹을 배우고 응용행동분석 (ABA, 많은 자폐 아이들이 받는 치료/교정/학습 기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신경다양인들을 포용할 수 있게 바뀌어야한다고 외쳐. 회사에서 헤드폰이나 자극이 적은 장소를 제공한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런 신경다양성 운동에는 비판도 존재해. '저기능' 자폐인들의 보호자들이 대표적인데, 정훈이 엄마가 말한 것처럼 정훈이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말 보호자 없이는 아무 생활도 하지 못하는 자폐인들이 많지.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폭력성이나 성욕이 많은 등의... 이들 입장에선 신경다양성 운동은 기만일 수 있어.
하지만 영우와 같이 흰고래들과 살아가는 외뿔고래들이 실제 세상에도 정말 많고, 이들에게는 신경다양성 운동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인권 운동이기도 해. 미국에 나와서 정말 피부로 느끼는듯.... 세상엔 정말 자폐스펙트럼, ADHD, 학습장애등을 가진 사람이 많고, 자신이 그런 특성을 가진줄도 모르고 본인이 마스킹이나 여러 적응 기법을 익혀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정말정말정말 많음. 이 글을 읽고 있는 덬들일 수도 있음.
장애나 신경다양성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가 아직 많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마스킹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자폐 진단명을 일상이나 방송에서 쉽게 드러낸다던가, 어른이 되어 자신이 자폐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진단을 받는다던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편의 제공을 당연하게 요구한다던가 하는 경우는 참 어려울거 같아.
그렇기에 우리 눈에 보이는 자폐인이 정말 적고, 우리 사회가 상상하는 자폐인의 모습은 많이 정형화 된 모습이 많지 않을까 싶어.
음 결론을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몇 달 간 참 행복했고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찬사, 그리고 더불어 살아감을 외치는 드라마라 느꼈어.
그래서 마지막에 영우가 흰고래들 속에서 살아가기를 택하는 모습이 짠하고 존경스럽기도 했고, 아버지의 품에서 나와 사랑하고 사랑받는 흰고래들을 만난 것이 기뻤고, 숙련된 감정조절 기술을 통해 출근길 감각 부하 상황에서 한강을 같이 건너는 수많은 고래들을 상상하며 미소짓는 것, 새로운 감정을 배우고 이를 나누고 같이 기뻐해줄 준호가 있다는 것이 참 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이 났음 ㅠㅠㅠㅠ
마무리 못하겠다 안녕... 틀린거 있어도 부드럽게 고쳐주세여... 박은빈 짱... 태수미 한선영도 짱...
첫댓글 정독했다 너무 좋은 글이다!! 우영우 드라마가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자폐인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하고 더불어살아감에 대해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드라마임
좋은 글이다 글 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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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 지느러미 말하는거야? 그 고래는 9화에 나온 고래야 좁은 수족관에서 지내서 그렇게 된거
북마크 시간날 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