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란 국호는 신해혁명 1911년 손문이후에 중화민국을 세울때 쓴거죠 중국의 中자를 풀이해보면 안內·중간을 뜻하는 글자이고 이것을 반대로보면 바깥外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이는 글자이며 역易으로는 땅이라는 뜻의 글자이다 사기사전에 나와있는 중국에 대한 풀이는 중토中土·중원中原·중주中州·중화中華·중방中邦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세종때지은 훈민정음에 나랏말이중국과달라(國之語音 異乎中國)에서 중국이란 어휘가 나오는데 많은사서들과 각종 문집류에서도 나옵니다 또한 중국이 만약 명이라면 국지어음 부호명국이라하지 왜 국지어음 부호중국이라햇을까요? 그것도의문이긴합니다
그러나 한국학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명나라라고만 치부하죠 신해혁명이후에 손문이 국호로 가져다쓴거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라고만하니 좀 안타깝다는생각도듭니다
본문 보니 엄청 길군요. 중간에 읽다 시간이 부족해 못 읽었는데 대강 세종때의 조선이 동국으로 불리우며 이제껏 알려진 사대주의와 달리 우리가 우위에 있었고 동북아를 관할한 대륙조선이었다는 거네요. 대륙조선설은 그렇다 쳐도 한자와 그 쓰임과 해석의 자세한 주해는 꽤 전문적으로 보입니다. 현대의 학자들이 어수룩하단점도 수긍이 가구요. 글쓴분의 근세조선이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줬다는 전제는 차라리 단군시대, 혹은 배달시대와 더 맞는게 아닌가 합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고대에 중국이란 우리 대륙조상님 나라를 일컬었다고도 하는데 선덕여왕시 당나라의 조언으로 황룡사9층석탑을 쌓으며 층마다 신라를 괴롭히는 국명을 새겨 넣는데 거기에 고구리를 중국이라 표현했다 합니다! 또 대륙을 넓게 차지한 천자국으로서 중원을 가리키는 의미가 되어 리조 세종조시 나랏말 쌈이 듕국과 달라 라고 말하기도 한거죠! 리성계가 여진족출신으로 조선을 대륙에서 건국했다고 추정하면 해석이 된다 보며 대륙삼국설에서 대륙고려로 거기서 대륙이조선으로 연구가 발전돼온것을 우리 삼태극님들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대륙삼국설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대륙에서 살았을 선덕여왕이 왜 경주에다 황룡사 9층 석탑을 쌓았는지와, 경순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왕건이 왜 한반도에다 수도를 정했는지와... 역시 대륙고려설을 주장하려면 대륙에 있었을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가 한반도에 도읍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문부터 제기할게 아니고 대륙사 관련서적을 찾아서 일단 공부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서 여태 알고있던 역사관과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음 절대 반도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경주는 경순왕때 고려태조 왕건이 살라고 떼어준 땅으로 대륙의 그넓이는 지금 경상도보다 훨 넓은 광역 행정지명이며 그전까지는 수도가 금성으로 대륙에 있음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댓글로 공방해봐야 별 의미없으니 정모나오시면 제가 아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럽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데 천삼백년이 걸렸다 합니다. 반도사관이 정사로 계속 지위를 누릴때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도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천겁님~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용석 선생님의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를 참고하면 되는데 그책이 절판돼 헌책방에서 구해보시고 제가 올린 그책 독후기가 있으니 참고해보세요! 조상님역사 열공에 무조건 꾸벅입니다! 지난 한해 정모에서 강의 맡아주신 성헌식 선생님 저 " 천년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 독후기도 같이 보심 더 좋습니다~~
같은 생각 입니다 반도땅에 경산도와 전라도의 경계가 국경선이라면 그 국경선에서 말타고 도성까지는 하루면 도착 합니다 6,25때 저희 아버지가 서울 종로에서 충남 당진군 합덕까지 자전거로 하루에 왕복 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하여 밤늦게 돌아 오는 것이조 그럼 반도의 가로선이 400km 이상은 안 되는 곳이 많조 국경선이면 거의 절반이고 도성까지면 더 거리가 줄어들조 지금의 교통이면 반 나절에 왕복 여러번 합니다 삼국시대에 전쟁에 전투거리는 하루 이틀의 거리를 밀고 밀리고 하지요 반도땅에 삼국이 있다면 백성들은 일생동 피난다니다 인생 종치조 언제 군비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까요 천년 가는 삼국이면 절대로 반도땅에서는 공
->>간이 부족하여도 한참 부족 하지요 그러니 삼국이 반도 있음은 거짓이 됩니다 또 경산도와 전라도의 틈 사이에 가락국이 있다고 한다면 7 가야국이 있으려면 인구의 수가 어떻게 될까요 1 가야국에 도성국가라도 군인 동원 능력이 아무리 적어도 일만명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7 가야국이면 지금에 가야도가 생겨도 부족하지요 그러나 그틈을 시골구석을 찾아 가보세요 인구가 얼마나 있는지 적어도 큰 고을이 몇십개 이상 있습니까 없조 1개의 가야국도 있을 공간이 안 됩니다 신라의 마직막 경순왕이 대륙에서 밀리어 반도땅에 유배된 망국신라 제후족으로 반도에 신라역사에 옷을 입힌 흔적은 있더이다 그리이 혼선이 생기는 것이조 ,,,
중국은 대륙 중앙조정 명칭 입니다 대륙의 중앙 조정 명칭이 중조로 제후국에게도 조정이 있으니 중앙정부격인 중조를 격상하여 높여 부른 것이 중국이 됩니다 그리고 내국인 자국인에게 반포하는 서문이 왜 외국어와 비교가 필요한지 의문이들고 이상하지요 조선 백성이 중공과 무역하는데 애로 사항이 있어 공부하라고 반포는 이상하조 전 백성이 무역 한다는 것은 이상하니 조선땅에 적어도 두개 이상의 언어군이 있으니 그리 말한것으로 풀이가 되지만 좁은 한반도에 두개 이상의 말이 안통할정도의 아주 다른말은 현 실정에 부합이 안 되조 허구 반도설 때문에 풀이 고생 입니다 허구반도설을 버리고 해석 하면 대륙 대조선이 중앙조정에
->>관리들이 지방백성까지 언어소통을 하다보니 같은 글자 이지만 한문이 변형이되어 서로 알아보기 힘들고 같은 글이라도 지방마다 다르게 부릴는 말로 언어소통이 너무 안되어 지방에 어린 백성이 중앙(중국)관리 에게 제 뜻을 전하고 싶어도 뜻이 서로 통하지 않아 고생하니 세종대왕께서 친히 표준 음가를 만들어 사용케 하니 각지방에 백성들이 언어가 통하게 되더라 그 뜻 입니다
첫댓글 탑의 9개 층은 이웃국과 주변국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탑을 건립하면 불력이 작용하여 이들이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이라는주4) 자장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운 탑이기 때문이다. 안홍(安弘)이 지은「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의하면, 제1층 일본, 제2층 중화(중국), 제3층 오월, 제4층 탁라(탐라), 제5층 응유(중국 응유도, 혹은 백제), 제6층 말갈, 제7층 단국(거란), 제8층 여적(여진), 제9층 예맥(혹은 고구려)이라고 하였다
첫댓글 탑의 9개 층은 이웃국과 주변국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탑을 건립하면 불력이 작용하여 이들이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이라는주4) 자장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운 탑이기 때문이다.
안홍(安弘)이 지은「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의하면, 제1층 일본, 제2층 중화(중국), 제3층 오월, 제4층 탁라(탐라), 제5층 응유(중국
응유도, 혹은 백제), 제6층 말갈, 제7층 단국(거란), 제8층 여적(여진), 제9층 예맥(혹은 고구려)이라고 하였다
삼태기 수준하고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