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김옥전
도배를 했습니다 벽에 묻은 커피 자국이 아직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버린 대답은 더 이상 냄새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던 의자마저 다리를 절며 떠나자 벽은 덩그러니 혼자 남았습니다
못을 박았습니다 못을 박는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사진도 걸고 시계도 걸고 고단한 외투도 걸려면 상처는 각오해야 합니다
당신이 내게 목숨을 걸었다고 했을 때 사랑의 본질은 상처라는 걸 알았습니다 못과 벽 사이가 아득합니다
문고리를 달았습니다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에 쥘 명분이라도 있어야지 싶어섭니다 거실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돌아서곤 하던 슬리퍼에게 없었던 것은 당신과 내가 나란해야 할 명분이었습니다
오천 원짜리 화분도 창틀에 앉혔습니다 화분은 외향적이라 안보다는 밖을 좋아해 온종일 혼자서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누군가의 정원을 꿈꾸기도 하지만 이내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고는 곁눈질로 세상을 구경합니다
윗집과 옆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 헤어질 수 없다는 여자의 말이 벽을 열고 나와 계단을 내려갑니다 어디로 가는
지 걱정인 화분이 여자 쪽으로 꽃망울을 돌립니다 여자는 골목을 막 도는 중입니다 할 말 있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말하라
했지만, 오랜 세월 빙빙 돌던, 여자가 사라진 골목도 저 혼자 리모델링 중입니다
나에게 리모델링이란 생각하나 바꾸고 대못 하나 가슴에 박아두는 것이겠지만 한동안은 살아 볼 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