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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위에 오른 '박근혜' 판단력
박근혜씨에게
김유미 재미 작가
1970년대 미국 학교에 교사로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70여명이 넘는 교사들 중에 오직 한 명인 동양인 선생이 자기 반 담임이 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싫은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면서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연필과 책을
바닥에 던지기도 하며 항의 했습니다.
그러면서 Chinese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Korean 이라 하니 Korea 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본다면서 도대체 어디 있는가 물었습니다.
지구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국 땅을 손가락으로 짚으면 안타깝게도 내 손가락에 가려 한국 땅이 아예 보이지 조차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연신 “어디요? 어디?” 하고
다그치고 나는 “여기, 여기” 하면서 손가락을 댔다 뗐다 하며 실랑이를 했습니다.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 땅덩어리에 비하면 정말 콩알만큼 작고 작은 나라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에도 수도가 여기 저기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세종시에 대한 장, 단점을 떠나 대한민국 같이 작고 작은 나라에서 왜 수도를 굳이 갈라놓아야 한다고 그리 아우성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씨가 “대국민 신뢰 상실” 운운하면서,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니까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박근혜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 1963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생전 처음으로 선거권이 주어져 박정희 대통령 후보자에 투표하고 한국을 떠나왔습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 후보는 국가를 안정시키고 군대로 복귀한다고, 절대로 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는다고 '혁명공약'으로 국민에게 철통같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국민과의 약속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원대복귀 대신 대통령에 출마하였고, 3선 개헌으로 장기 집권했던 이승만대통령을
비난하던 그가 재선, 삼선...
그리고 나중에는 유신까지 행해가며 영구 대통령직에
머무르려 했습니다.
박근혜씨.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은 아마 모르긴 해도 국가를 위해서는,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국민과의 철석같은 약속도 깨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재선, 삼선, 유신까지 감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국민과 세계로부터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2010년 현재, 그는 대한민국을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려놓은 대통령으로
전세계가 칭송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ABC TV 나이트 라인 시간에 나왔습니다. (2010.1.20)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건강 보험법 개정안이 많은 반대 의견에 부딪치고 있고 그의 인기가 50%이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Kennedy 가의 텃밭인 Massachusetts 주에서 공화당 의원이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민주당의 안전라인 60석이 무너지는 바람에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보험개정안이 더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는 기자에게,
오바마는 "대통령은 개인의 인기에 연연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국가 장래를 위해 무엇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답 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개인의 인기만을 생각한다면
세종시를 원안대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중대한 안건이 마치 세종시 뿐인 듯, 그것이 마치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인 듯,
저마다의 이득을 위해 싸움질 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무난하게
임기를 마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수도분할은 안된다'며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하고 수정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박근혜 씨의 “국민과의 약속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명분은
전혀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과연 ‘국민과의 약속’인지, 그 약속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대하는 국민들도 국민인데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역사 앞에 서서 겸허하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자신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자신과의 약속'을 깰 수 있는 용기를 기대합니다.
콩알만큼 작디 작은 땅, 그 땅도 반으로 갈라져 있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수도는 하나로 족합니다. 박근혜와 세종시, 그리고 李대통령 박근혜 전 대표가 명예롭게 후퇴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또한 대통령 몫이다. 최응표(뉴욕 거주) 지도자 복이 이렇게도 없는 나라가 지구상에 대한민국 말고 또 몇이나 될까. 그리고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처럼 저질인 나라가 지구상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해외에 살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경제인들마저 정치인들 같았으면 대한민국은 벌써 거덜났을 것이다. 그나마도 경제인들이 지켜줘서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게 느껴질수록 분노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노무현이 단물을 다 빨아먹고 버린 고깃덩이를 놓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x싸움이 한창이다. 다시 말해, 정글에서 사자가 살은 다 발라먹고 버린 뼈다귀를 놓고 싸우는 하이에나 떼와 같다는 말이다. 지금 나라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세계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정치적 양심으로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세종시가 왜 박근혜의 치마폭에 쌓여 초죽음을 해야 하고, 대한민국이 어째서 그 치맛바람에 널뛰듯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다. 막힌 길은 지혜와 소통으로 열어야 하고, 쌓인 벽은 신뢰와 이해로 뚫어야 하는데, 야심과 위선과 힘으로만 해대니 앞이 보일 리가 있는가. 저들의 마음이 온통 잿밥에만 있는데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거기에 한 몫을 더하는 것 같아, 정말 대한민국이 너무 안쓰럽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모두 대통령에게 있다. 처음부터가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그것을 제대로 고쳐 끼우고 왔어야 했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에 양심은 물론 자신까지 속여가며 계속 끼워 오다 그만 자기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대통령 제일의 덕목은 도덕과 신뢰, 그리고 양심과 인격을 바탕으로 한 뚜렷한 정치신념인데, 그런 면에선 미안하지만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낙제점이다. 한 마디 더 한다면, 지금 나라가 온통 김대중과 노무현이 파놓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밖으로만 나도는 인상을 주는 것도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물론 국익을 위한 나들이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특수 상황으로 보아,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과거 10년 동안 박아 놓은 대못들을 그대로 둔 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리라고 믿는가? 사법부 파동으로 한 쪽 기둥이 무너지고 있는데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기회주의적 회색정치로는 안 된다. 지금 나라가 온통 뒤틀리고 있는 근본 원인은 바로 대통령의 그런 색깔 없는 회색정치가 가져온 결과다. 대통령의 안보의식?, 솔직히 실망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강력한 권력을 부여받은 지도자의 존재 이유는, 언젠가 올 비에 대비해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우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처지는 언젠가 올 비가 아니라, 지금 퍼붓고 있는 장대비를 막을 우산을 준비해야 할 대통령이 어디로 숨었는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국민의 원성을 듣는 대통령은 되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정말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 문제 앞에서 그처럼 당당할 수 있는가? 지금 그녀의 정치행태가, 온 국민의 추앙을 한 몸에 지니고 다시 살아나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 앞에서 정말 양심에 부끄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원칙과 신뢰'를 정치신념으로 부끄럼 없이 살아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국민들에게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과의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엔 더욱 화가 난다. '세종시법'이란, 원래 노무현이라는 돌연변이가 선거에서 재미 좀 보기 위해 뿌려 놓은 사기성 씨앗 아닌가. 박근혜는 앞으로 이 사기성 유지(遺志?)를 붙들고 유훈(遺訓政治)정치라도 해보겠다는 것인가? 과거를 붙들고 현재와 미래가 싸우면 그 집안은 결딴나는 법이다. 과거의 명분이 아무리 값지다고 해도 국익이라는 현실을 넘어설 수는 없다. 더욱이 정치인의 야심이 깔린 과거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노무현이 '세종시법'이라는 대못을 박을 때, 박근혜가 이끌던 그 당시 한나라당의 투표상황을 보면 이렇다. 총 120명 의원 가운데 98명은 불참했고, 반대가 12, 기권이 2, 그리고 찬성은 겨우 8명이었다. 그러니까 120명 가운데 8명만이 찬성했고 112명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치적 야심이나 표를 위한 어떤 꼼수가 아니라면 8명이 어떻게 120명을 대표한다는 말인가. 원칙과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는 박근혜가 말이다. 정말 '원칙과 신뢰'의 당대표라면 그때, 세종시 법의 폐기를 선언했어야 했다. 8표를 가지고 당론을 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잘못된 정치적 대못인 줄 알면서도 찬성표를 던지게 한 저의가 무엇이었는지를 국민 앞에 떳떳이 밝히고, 원안고수(原案固守)를 주장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 어느 길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를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의 양심에 비추어 후세에 부끄럼 없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그러면 어느 논설에서 말한 것처럼, 지고도 이기는 大승리자가 되지 않겠는가. '원칙과 신뢰와 통합'의 정치지도자로서, 2012년의 길도 환하게 열릴 것이다. 사즉생(死卽生),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과거의 잘못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용서를 빈 그 용기로 문제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다. 문제의 씨앗을 뿌린 자가 거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시 말하면, 박근혜 전 대표로 하여금 '세종시법 원안고수'를 고집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때, 세종시법 원안고수에 대한 충청도민 설득에 자신이 없던 이명박 후보, 결국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을 빌려 충청도의 표를 얻은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 때의 이명박과 지금의 이명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정치적 배신, 도덕과 양심과 신뢰의 문제다. 결국 인격의 문제다. 이용하고 버리는 부도덕한 정치행태로는 오늘의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없다. 대선승리를 위해 박근혜의 힘이 필요했던 것처럼, 세종시를 위해 그녀의 힘이 필요한 것, 또한 오늘의 현실 아닌가. 그렇다면, 대선 때 박근혜의 손을 붙잡고 도움을 청하던 그때의 이명박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오만을 버리고 겸손을, 독선을 버리고 포용을, 갈등을 버리고 화해와 신뢰의 통치를 한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의지는 中道에서가 아니라 확고한 정치신념에서 나오고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에서 나온다. 이제, 대통령이 혁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익을 위해서 말이다.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같이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 박근혜 전 대표가 명예롭게 후퇴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또한 대통령 몫이다. 그러면 길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럴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겸손한 대통령, 신뢰받는 대통령, 그리고 인격적인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것은 쉽게 풀릴 것이다. 인격은 양심의 힘에서 나오고 믿음에서 나온다. 얼음이 녹아 봄이 되는 것처럼, 겨울이 막바지에 오면 봄은 온다. 이런 자연의 섭리에 따라 대한민국의 봄도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봄을 앞당겨 가져오길 하늘에 빈다. 2010. 2. 1.
[ 2010-02-03, 08: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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